이륜차 빙하기에 한국 도심 질주하는 ‘혼다’
  • 최홍준│<스쿠터N스타일> 기자 ()
  • 승인 2013.05.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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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품질 경쟁력 앞세워 국내 시장 공략…7월엔 배달용 출시

2000년대 이후 국내 경제 현상을 함축하는 단어는 양극화다. 빈익빈 부익부. 모터사이클 시장도 어김없이 이에 해당한다. 125cc 이하 배달용 소형 모터사이클 시장은 위축되고 125cc 이상 고가 외국산 모터사이클 시장은 연 20% 이상씩 커지고 있다. 최근엔 엔저(低)를 등에 업은 일본산 혼다가 중저가 시장에 본격 진출을 선언하고 나서 국내 업체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008년 이후 125cc 이하의 소형 모터사이클을 만드는 국산 업체의 판매량은 반 토막이 난 반면, 고가 모터사이클의 대명사인 BMW모토라드와 할리데이비슨은 지난해 국내 진출 이후 처음으로 연 1000대 판매 고지를 밟았다. 고가와 저가 브랜드를 함께 수입하는 혼다코리아는 올해 1만대 판매가 목표다.

혼다코리아는 지난 5월15일 주로 배달용으로 쓰이는 비즈니스용 모터사이클 ‘슈퍼 커브’를 공개하고 7월부터 국내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혼다코리아는 슈퍼커브를 올해 2000대, 내년부터 연간 5000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커브 시리즈는 전 세계 150여 개 국가에서 7600만대 이상 판매된 월드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50cc 엔진의 리틀 커브와 110cc 엔진의 슈퍼 커브가 있고, 우리에게 ‘시티백’으로 알려진 배달용 모터사이클의 원형이다.

5월15일 혼다코리아는 슈퍼 커브 발표회를 열고 국내 시장 본격 진출을 알렸다. ⓒ 최홍준 제공
내수 침체로 양극화되는 이륜차 시장

커브는 ‘국숫집 꼬마가 한 손에는 국수통을 들고 멀리까지 배달할 수 있도록 만들라’는 혼다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구체적인 지시를 구현한 모델이다. 원심 클러치 시스템을 채용해 왼발만 사용해 기어를 변속할 수 있다. 한손에 배달통을 들고 운전할 수 있어 상용 모델로 최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국내에서는 대림자동차가 1980년대부터 혼다와 기술을 제휴해 2004년까지 커브 시리즈를 라이선스 생산했다. 이후 대림은 독자 모델을 발전시켜왔다. 대림은 배달용 모터사이클의 대명사처럼 돼버린 ‘시티 100’을 탄생시킨 후 시티 플러스, 시티 에이스1·2 등의 이름으로 국내 상용 모터사이클 시장의 80%를 점유했다. 대림은 과거 경제 위기 이전에는 연간 15만대, 경제 위기 직후에는 23만대까지 판매한 적도 있었지만 지난해 4만4000여 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에서는 110cc 이하 모터사이클이 총 등록 대수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대림의 총 판매 대수 중 60% 이상이 시티백으로 통하는 배달용 모터사이클로 2012년 기준, 시티 시리즈는 2만대가량 팔렸다. 대림의 시티 시리즈는 국내 상용 모터사이클 시장의 80%를 차지했지만 최근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혼다·야마하·스즈키 등 일본 브랜드의 중국 공장에서 고품질·저가격의 상용 스쿠터를 대거 출시했고 킴코·SYM 등 타이완 스쿠터 브랜드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대림의 점유율을 갉아먹은 것.

이제는 배달용 스쿠터도 안 팔려

1997년 경제 위기 때 대림의 시티백 판매고가 23만대 가까이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주 고객층인 치킨·짜장면 가게가 증가하고 저렴한 이동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3만대 중 60%는 소자본 창업자가 구입한 배달용 모델이다. 하지만 내수 침체가 이어지고 단기간에 크게 늘어난 프랜차이즈 점포가 줄줄이 문을 닫자 소형 배달용 모터사이클 판매는 2008년 이후 반 토막이 나면서 빙하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혼다가 배달용 모터사이클의 원조 격인 슈퍼 커브를 국내 시장에 도입하면 대림의 지배력은 더욱 위협받을 전망이다. 대림은 대응 수단으로 지난해부터 품질 보증 기간을 기존 2년 2만km에서 2년 3만km로 늘리는 등 이미지 쇄신에 나서고 있다.

혼다코리아의 슈퍼 커브 출시는 대림에게 치명적이다. 현재 대림 시티 에이스2의 판매가는 195만원대. 혼다는 200만원 초반대에 슈퍼 커브를 판매할 예정이다. 슈퍼 커브는 경제성과 내구성, 동력 성능 등이 뛰어나다. 중국 공장에서 만들지만 관리를 잘해 품질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부품값도 저렴해 출시된다면 빠른 시간 내에 국내 상용 모터사이클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혼다가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이륜차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내수 침체와 상관없이 커지고 있는 게 500cc 이상의 레저용 중대형 모터사이클 시장이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1000만원대였던 혼다·야마하·스즈키의 1000cc 스포츠 모터사이클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이후 엔고(高) 현상으로 2000만원대 초반 가격표를 달고 있다. 반면 지명도가 더 높은 할리데이비슨이나 BMW, 두카티 등 프리미엄 모터사이클 브랜드 역시 2000만원대 초반 가격을 형성하면서 일본제 모터사이클의 수요가 급감했다. 최근 엔저 현상에도 일본제 중대형 모터사이클의 가격은 낮아질 수 없다. 수요가 적어 소량 수입된 탓도 있고, 엔고 시절에 수입돼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재고로 쌓여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수입사들은 수입 원가 때문에 기존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 판매량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

현지법인 설립 형식으로 국내에 진출한 것은 혼다코리아뿐이다. 스즈키, 야마하, 가와사키는 개인 사업자의 딜러십 형태로 들어와 있어 환율 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수입량 자체가 적고 물량 주문도 1년에 서너 차례 소량으로 하기 때문이다.


 

고가 브랜드인 할리데이비슨의 스트리트 글라이드 모델. ⓒ 할리데이비슨 제공
국내에 등록된 모터사이클의 숫자는 209만대이지만, 미등록 상태까지 합하면 300만대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이륜차산업협회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연간 30만대 이상이던 국내 모터사이클 판매 대수는 2008년에는 14만대로 감소했다. 2009년 8만7000대까지 떨어진 이후 계속 정체를 보였다. 총 판매 대수는 줄었지만 125cc 이상 중대형 모터사이클 판매는 늘어나고 있다. 2009년 4만3000대였던 125cc 이상의 중대형 모터사이클은 3년 새 6만1000대로 늘어났다.

2012년 판매된 8만7000대의 모터사이클 중 125cc 이상은 6100대다. 이 중 할리데이비슨이나 BMW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각각 1000대가량 팔리며 연간 20% 이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나머지 8만여 대는 125cc 미만이다. 이 중 5만4000대가 배달용으로 3만1000대는 스쿠터, 나머지 2만3000대가 이른바 ‘시티백’으로 불리는 110cc의 커브형 모터사이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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