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따라 하다 늪에 빠진다
  • 예루살렘=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6.0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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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창조경제는 우리와 달라…한국적 대안 찾아야

기자는 5월17일부터 19일까지 예루살렘을 취재했다. 이곳 시민들의 일요일 출근길 풍경을 보고 놀랐다. 여행사 가이드 말이 유대교 풍습을 따라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까지 안식일로 삼는다고 했다. 우리와는 달리 일하는 시간은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잘 모르고 갔다가 뜻밖의 풍경을 본 것인데, 시내 곳곳에서 맞닥뜨린 훈련 중인 군인들의 모습도 의외였다. 그들은 마치 야유회라도 나온 듯 긴장감이 없어 보였다. 상하 관계가 분명한 군대인데도 수평적인 조직처럼 보였다.

얼마 전 창조경제에 대해 한 수 배워오겠다며 우리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경제 단체, 기자들로 구성된 ‘창조경제탐방단’이 이스라엘 현지를 다녀갔다. 그리고는 많은 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한국의 공통점을 크게 두 가지로 봤다. 1948년 건국 동기라는 것과 수출로써 먹고살아야 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를 내세워 창조경제의 선진국인 이스라엘을 배워 위기를 돌파하자는 것이 핵심 골자다.

토요일인 5월18일 낮 이스라엘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유대인은 남보다 뛰어난 것보다 남과 다른 것을 창의성의 핵심으로 여긴다. ⓒ 시사저널 조철
혁신 있는 곳에 지원 있고, 관리·감독도 철저

이후 창업-성장-자금 회수-재투자가 물 흐르듯 하는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대안이 쏟아져 나오고, 이스라엘처럼 ‘똑똑한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자는 이스라엘 현지에서 정부가 발표한 ‘이스라엘 창조경제’가 제대로 번지수를 찾은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텔아비브 시 관계자 등을 수소문했다.

어렵사리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는 현지 기업인을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바이오 제약 기업 싸이젠은 바이오 의약품 제조, 공급 및 유통에 관한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으며 소화기·내분비·면역계통 질환 예방과 치료에 역점을 두고 있다. 도브 메라메드 싸이젠 대표(35)에게 어떤 지원을 받았는지, 창업 환경이 왜 좋은지, 리스크는 없는지 등을 물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창업하는 젊은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물론 여기엔 혁신이 동반돼야 한다. 우리는 백신을 생산하는 회사로, 보건부의 설립 인증이 우선 필요하다. 승인 과정이 매우 편리하고 간소하다.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도와줬고, 해외 판매 등 사후 관리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스타트업(신규 창업 단계)에서는 산업노동부로부터 경제적 지원도 받았다.”

도브 메라메드는 러시아 레닌그라드의 유대인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늘 좋은 기술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가 이스라엘로 이민 가도록 권유해 메라메드 형제는 이곳에 와 창업했다. 이스라엘에는 20% 넘는 러시안 유대인들이 있는데,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메라메드 대표는 “이곳을 고향처럼 느낀다. 특히 이스라엘은 과학자들에게 매우 편안한 나라다. 지원이나 대우도 좋은 편이다”라고 흡족해했다.

창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전폭적 지원을 받지만 선정되기까지 매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또, 운영 과정에서도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는다고 밝혔다. “정부는 스타트업 단계에서 필요 예산의 절반 정도 투자금을 지원한다. 우리는 나머지 절반을 투자했다. 매칭 그란트 방식이다. 사후에도 관리·감독이 철저하다. 최소 매출액을 정부와 협의해 결정하고 이를 달성해야 한다. 정부 평가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오면 모든 지원이 끊긴다.”

지원이 끊긴다고 해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엄격한 평가를 통해 선정됐기 때문에 돈을 회수하지는 않는다. 까다롭게 선정한 만큼 정부도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이다. 많은 회사가 정부 지원금을 신청하지만 5%가량만 지원을 받는다고 한다. ‘창업 국가’라고 하지만 아무나 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메라메드 대표는 “우리의 경우에도 한 차례 실패를 한 후 지원금 획득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제약회사인 테라가 우리 회사의 제품을 보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고 말했다.

창조경제 관련 기사에 요즈마 펀드가 자주 등장한다. 메라메드 대표에게 요즈마 펀드에 대해 물었다. 혹시 그런 종류의 펀드에서 투자받은 게 없는지 궁금했다. 그는 “정부 지원금으로, 샤담(Tsadam) 펀드라고 한다. 제조업을 지원하는 펀드다. 정부는 바이오텍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백신 회사로 이 펀드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기 투자금으로 100만 달러를 지원받았고, 이후 사업을 키워가면서 총 5000만 달러가량을 투자받았다고 했다. 그 결과 크게 성장해 올해 말 상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이스라엘 펀드 시스템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다. 석유 등 자원도 없다. 신기술 개발이나 과학자 등 인적 자원의 부가가치 창출이 중요하다. 그래서 창업을 장려하고 이를 적극 지원한다. 정부와 회사와의 소통도 잘된다.”

이스라엘에서 어떤 창업 분야가 지원을 많이 받을까. 메라메드 대표에 따르면 특별한 분야는 없다. 하지만 혁신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현재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는 지원금을 받기 힘들다.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메라메드 대표는 싸이젠이 만드는 제품도 매우 독특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스라엘 현지 기업인 도브 메라메드 씨. ⓒ 시사저널 조철
유대인에 의한, 유대인을 위한 창업 인프라

박근혜정부는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바꾸려고 이스라엘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우리 기업인들은 ‘창조경제’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조경제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자 대국민 소통 창구로 ‘창조경제 종합 포털’을 구축해 5월22일부터 시범 서비스에 들어갔다.

포털에 따르면 ‘창조경제란 창의적 아이디어, 상상력과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된 창의적 자산이 활발하게 창업 또는 기존 산업과 융합하고,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생겨나게 함으로써 양질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다.

창조경제 종합 포털을 구성하는 데 이스라엘의 성과를 집약해 보고한 책 <창업 국가>를 많이 참고했다. 이 책은 창조경제의 교과서 같은 책인데, 이를 번역해 한국에 알린 윤종록씨가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에 올랐다.

<창업 국가>는 유대인의 홍보물로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이스라엘의 특성에 맞춘 것이라 우리가 바이블처럼 여기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스라엘 창조경제가 가능한 것은 유대계 글로벌 자본과 미국 시장 접근이 용이한 창업 인프라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델을 무작정 따라 하기에 앞서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한 단계 한 단계 준비할 건 준비하고 뜯어 고칠 건 뜯어 고치는 것이 선결 과제라는 지적이다.

이민화 벤처기업협의회 명예회장은 한 칼럼을 통해 ‘이스라엘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하지만 현상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우리의 창조경제를 설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회장의 말에 공감한다는 박대진 코이스라 대표는 “무분별한 이스라엘 배우기는 좀 아닌 것 같다. 한국에 더 많은 창업 자금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식 방법으로 당장 그 자금을 창업 현장에 끌어들일 수는 없다. 우리만의 노하우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같은 창업 환경이 주어져,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젊은이가 많아지는 것을 누가 말릴까. 하지만 경제 위기의 대안으로 탁상공론만 하는 것이라면 국민을 맥 빠지게 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창조경제의 모델을 구축해 ‘창업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스라엘에서 배울 건 배워야 하지만, 철저히 한국의 환경을 고려한 현실적 대안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도브 메라메드 싸이젠 대표는 한국 창업자들에게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기도 하다”며 좋은 날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고등학생 때부터 이스라엘 학교에 다녀 ‘이스라엘 조기 유학 1호’라는 박대진 코이스라 대표(34). 그는 외환위기 때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져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생 끝에 이스라엘 최고 대학인 히브리 대학교와 텔아비브 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 후 한국과 이스라엘의 접점을 찾는 사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두 나라를 오가며 양국 기업의 파트너십 컨설팅과 계약을 이끌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전경련 창조경제탐방단의 일원으로 이스라엘에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에 이스라엘 창조경제를 접목하려는 움직임을 어떻게 보나.

중소기업청에서 진행하는 테크놀로지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이 있다. 이것은 정부 지원 85%, 민간 지원 15%로 이뤄진다. 이건 이스라엘과 너무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보이는데, 급하게 추진해 걱정된다. 한국형 요즈마 펀드를 만든다는 기사도 봤다. 요즈마그룹 관계자가 자문을 하고 간 것 같다. 7월 중순쯤에 결과물이 나온다고 들었다. 그런데 요즈마 펀드가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었다. 인발(inbal) 펀드라는 채권형 펀드로 시작된 것인데, 투기를 하는 투자자가 끼어드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자 정부가 대책을 세워 만든 것이 요즈마 펀드다. 정부와 민간이 공동 노력 끝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민간 부문 노력을 끌어내면 되지 않을까.

요즈마 펀드는 이스라엘 실정에 맞게 외국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건강한 투자 환경을 만들자면 외국 자본에 눈치 볼 것 없이 우선 국내 투자자만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창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시급한 일은 뭔가.

한국은 실패에 대해 용인하는 폭이 적은데, 이스라엘에서는 실패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 이런 문화는 1~2년 안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창조경제를 1~2년 안에 하겠다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

후발 주자가 서두르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돈을 먼저 쓰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남의 돈을 끌어다 쓸 수 있다. 스타트업을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돼 있지만, 한국에는 그런 것이 거의 없다. 이스라엘에서 20년 걸려 만든 환경인데, 2년 만에 그걸 하겠다고 하니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스라엘에서 배울 건 배워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 단기간에 프로그램들을 내놓아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이스라엘의 어떤 점을 배워야 한다고 보는가.

이스라엘의 토론 교육, 아이디어와 기술에 대한 전폭적 지원, 글로벌 기업가 정신 등 배울 건 배워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따라 하기는 지양해야 한다. 유대인 중 유대교인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 나라는 유대교 풍습을 따른다. 한국인과 사고방식이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이런 것을 간과하고 무분별하게 따라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할 수는 없었나. 왜 뒤늦게 이스라엘인가.

미국은 한국과 사이즈 자체가 다른 나라다. 유럽 국가 중에 있을 수 있겠지만 유로 위기를 보면 거기도 아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경제 상황에서 비슷하다 보니 배우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해 좀 더 공부해야 한다. 이스라엘에서 배울 점은 있지만 <창업 국가>라는 책을 교과서처럼 봐서는 안 된다. 그 책에는 픽션도 있으니 팩트만 잘 걸러서 참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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