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괜찮지만 미성년은 안 돼?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6.0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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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과 여중생 성관계 사법 처리 두고 시끄러운 미국

미국에서 동성애 문제는 합법화 여부를 떠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동성 결혼 합법화에 찬성했고, 미국의 여러 주들은 동성 결혼의 법 정비에 나섰다.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 최고 스포츠 스타들의 커밍아웃이 봇물을 이루자 “인기몰이의 한 방법으로 동성애를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미국 사회의 첨예한 쟁점 하나가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성년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동성애 문제다. 동성애 자체가 성적인 자기 결정권과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 미성년 시절의 동성애는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가 미성년자 사이의 문제로 불거질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애매하다. 해당 법률이 모순점을 가지고 있는 데다 미성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동성애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극한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2월 미국 플로리다 주의 세바스찬 리버 고등학교에 다니는 18세의 여학생 캐슬린 헌트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네 살 아래 소녀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 퇴학 처분을 받았다. 게다가 외설 음란 행위와 준(準)강간 등 중범죄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헌트는 혐의가 인정될 경우 최장 15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헌트는 “나와 그 소녀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이며 합의에 의해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플로리다 주 법에 따르면 헌트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성적인 합의가 자기 의사로 인정될 수 있는 연령을 플로리다는 16세 이상으로 규정했다.

가혹한 처사라며 여론이 들끓자 검찰측은 “유죄를 인정하면 가택 연금 2년, 보호 관찰 1년을 받게 해주겠다”며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헌트의 부모는 “내 딸은 동성애자일 뿐, 똑같은 사랑을 한 것”이라며 유죄 협상을 거부했다.

헌트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죄 인정은 나의 앞길을 완전히 가로막는 것”이라며 검찰의 기소 자체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헌트측 변호사는 “만일 이 사건이 헌트가 성인인 18세가 되기 몇 달 전에 발생했더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현실을 도외시한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헌트의 부모는 검찰의 기소를 막아달라며 인터넷 청원 운동을 펼쳤고, 여기에 서명한 사람이 30만명을 돌파했다. 동성애 지지 단체들까지 나서 담당 검사가 기소를 취하하지 않을 경우 사퇴 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박 중이다.

14세 소녀의 부모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헌트를 고발했다며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부모는 “오직 어린 딸을 보호하고 싶을 뿐이다. 기소 등 법률적 절차가 진행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어린 딸이 다시 증언에 나서야 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라며 빨리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5월23일 미국 보이스카우트연맹이 청소년 동성애 단원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날, 한 동성애 단원이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AP 연합
BSA, 보수 단체 지원 끊길까 염려

5월23일 103년 전통을 가진 미국보이스카우트연맹(BSA)은 텍사스 주 그레이프바인에서 대표자 1400여 명이 모여 연례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의 주요 안건 중 하나는 동성애자 단원의 가입 문제였다. 대표자들은 찬반 투표를 실시했는데 60%가 넘는 찬성으로 청소년 동성애자의 단원 가입 허용을 결정했다. 성인 단원은 동성애자의 가입을 금지하는 현 방침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세계 최대의 유소년 단체가 미성년 동성애자의 가입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앞선 헌트 사건과 맞물렸다.

BSA는 그동안 동성애 단체 및 인권 단체들의 가입 허용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던 곳이다. 이 문제는 법원에도 간 적이 있는데 2000년 미국 대법원은 “동성애자의 가입 금지는 보이스카우트연맹의 정당한 권리”라며 BSA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 최대 물류업체인 UPS를 비롯해 많은 기업이 BSA의 방침이 전환되지 않을 경우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압력 행사에 나섰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는 오바마를 비롯해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까지 BSA의 방침 전환을 촉구하며 코너로 몰았다.

동성애 합법화 바람이 불수록 반대파의 반발도 거세다. 보수적 종교 지도자들은 망언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 독립침례교(WBC)의 지도자인 프레드 펠프스 주니어는 자신의 트위터에 5월20일 오클라호마 주를 강타한 토네이도의 공습도 동성애 탓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4월에 커밍아웃한 미국 프로농구(NBA) 워싱턴 위저즈의 제이슨 콜린스와 그를 지지한 오클라호마 선더스의 케빈 듀런트 때문에 토네이도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의 행동에 하나님이 열을 받아 오클라호마를 박살냈다”는 것. 이 교회는 지난 4월에도 보스턴 폭탄 테러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오바마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정통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반발이 얼마나 거센지, 그리고 동성애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논쟁이 얼마나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런 단면을 걱정하고 있는 곳이 바로 BSA다. BSA가 동성애자 청소년의 단원 가입을 허용한 뒤 대표적 보수 단체인 미국 가족연구위원회(FRC)는 “수십만 명의 보이스카우트 단원과 학부모가 돌아설 것”이라고 비난 성명을 냈다. 역사적으로 BSA는 조직 내에서 보수파의 비중이 훨씬 큰 곳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BSA 관계자는 “동성애자 청소년의 단원 가입이 시작되면 보수 성향의 단체와 종교 단체가 보이스카우트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아예 중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회가 찬반 양쪽으로 갈리면서 서로 상처를 입고 있지만 사실 가장 상처를 받는 쪽은 동성애자 자신들이다. 특히 미성년 동성애 문제는 당사자들에게 더 많은 상처를 남긴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수년간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을 맡아온 데이비드 라반 미국 지방검사협회장은 플로리다 주의 헌트 사건과 관련해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이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유사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에 따라 중범죄로 다스릴 수밖에 없지만, 전과가 남게 될 헌트의 미래 피해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헌트측 변호사도 검찰에 경범죄로 처리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말하며 “고등학교 때의 관계는 일순간일 수도 있지만 중범죄 혐의는 영원하다”며 미국 법의 불합리한 부분을 지적하고 나섰다. 동성애 합법화라는 대세적 흐름에 올라탄 미국 사회는 지금 미성년자들의 동성애 처리 문제를 놓고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속앓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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