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후엔 ‘우두 바이러스’로 간암 잡는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6.0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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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항체로 재발 위험 줄여…사람 간암 세포 이식한 아바타 쥐 연구 기대

7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던 최태식씨(가명·63)의 명(命)은 7년째를 넘기고 있다. 2006년 신장에 생긴 암이 간으로 퍼진 모습이 발견됐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 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병원은 당시 시험 중인 새로운 치료법을 그에게 제안했다. 3주마다 바이러스 주사를 간에 투여하는 것이다. 암 환자는 대부분 면역력이 바닥에 떨어진 상태여서 감기에도 위협을 느낀다. 그런 환자에게 바이러스 10억개를 투여하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는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바이러스 주사를 맞은 후 암세포가 사라졌다. 최씨의 사례는 외국 의학 저널에 실릴 정도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에게 투여된 바이러스는 우두 바이러스다. 물집이 잡히는 전염병에 걸린 소에서 뽑아낸 이 바이러스는 천연두 백신에 사용돼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한 일등 공신이다. 부산대병원 연구진은 이 바이러스 유전자를 조작해 암 치료제로 만들었다. 바이러스는 증식하기 위해 효소(TK효소)를 분비한다. 유전자를 변형해서 이 효소를 분비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최씨의 몸에 들어간 이 바이러스는 효소가 필요해 효소를 분비하는 세포를 찾기 시작했다. 정상 세포에서는 이 효소가 분비되지 않는다. 그러나 암세포는 성장하기 위해 효소를 분비한다. 바이러스는 암세포를 찾아 기생하기 시작했다. 증식을 위해 암세포가 내뿜는 효소를 빨아들였다. 결국 암세포는 자라지 못하고 죽었다. 암세포를 죽이는 효과도 큰 장점인데, 정상 세포를 손상하지 않는 점이 더 큰 매력이다. 기존 항암제는 암세포와 함께 멀쩡한 세포까지 죽여서 암 환자가 받는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첫 번째 임상시험이 성공적이어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두 번째 임상시험을 했다. 한국·미국·캐나다 공동 연구팀은 수술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 30명에게 한 달 동안 유전자 변형 바이러스를 투여했다. 바이러스 치료제가 기존 항암제보다 암 환자의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환자 30명을 반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1억개, 다른 그룹에는 10억개의 바이러스를 주사했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환자는 평균 7개월, 두 번째 그룹에 있는 환자는 평균 14개월 생존했다.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도 있다. 기존 항암제의 평균 생존 기간 3개월에 비하면 수명을 2~3배 연장한 것이다. 또 바이러스를 많이 투여할수록 효과가 좋다는 점도 새롭게 얻어낸 결과였다. 이 내용은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의 의학 분야 자매지인 <네이처 메디신>에 실렸다.

몇 해 전 유익현씨(66)는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간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자신의 사례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B형 간염 보균자였던 그는 황달이 심해진 2000년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 판정을 받았다. 혈소판이 적은 탓에 지혈이 되지 않아 수술은 위험했다. 혈관에 화학물질을 주입해 암세포로 가는 영양분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색전술)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그 치료를 세 차례나 받았지만 암세포는 오히려 폐와 늑골로 전이됐다. 유씨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암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기로 했다”며 “현미 등 암이 싫어하는 식사만 했고,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언제나 바보처럼 웃었다”고 말했다. 2005년 거짓말처럼 암이 사라졌고, 지금도 건강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면역력을 키워 암을 이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약 대신 면역으로 암 치료

요즘 몸의 면역력을 키워 간암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이른바 항암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도 암 환자에게 암 항체가 생겼다는 점이다. 환자 30명 중 18명(60%)에게서 암 항체가 발견됐다. 투여한 바이러스가 암세포에서 증식하자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가동되면서 항체를 만든 것이다. 백신을 접종하면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실제로 배양 중인 암세포에 최씨의 혈액을 투입하자 암세포가 죽는 것으로 관찰됐다. 항체가 있는 사람의 혈액을 다른 암 환자에게 주입해 암을 치료할 길이 열린 것이다.

돼지 간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시대

항암 바이러스는 미국 제네렉스 사가 개발했다. 이 신약 개발에 국내외 연구진이 참여했고, 중요한 과정인 임상시험은 한국이 주도했다. 발표된 연구 논문에 등장하는 환자 30명 가운데 13명이 한국 환자다. 제네렉스와 10년째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황태호 양산부산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이 바이러스는 현재 7개국 120명의 간암 환자뿐만 아니라 대장암과 신장암 등 다른 암 환자를 대상으로도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르면 4~5년 안에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암 바이러스 성공의 관건은 암세포까지 접근할 수 있느냐 여부다. 항암 바이러스도 바이러스라서 우리 몸에 들어가는 순간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는다. 이 공격을 받은 바이러스는 암세포에 도달하기 전에 소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이 개발하고, 중국 제약사가 2006년부터 판매한 유일한 항암 바이러스제가 이런 약점 때문에 큰 치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요즘 개발하는 항암 바이러스제가 대부분 혈관이 아니라 암 부위에 바로 투여하는 방식을 취하는 이유다.

간암이 생겨도 간 이식을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간암이 많이 진행된 말기 환자는 이미 암세포가 혈액 속으로 퍼진 상태다. 이런 환자에게는 간 이식도 소용이 없다. 혈액 속에 있던 암세포가 이식된 새 간에 다시 자리를 잡고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간 이식은 오히려 조기 간암 치료에 적합하다. 또 이식할 만큼 건강한 간을 구하기가 어렵다. 설사 간이 있어도 이식 후 효과가 나타날 사람에게 먼저 제공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간 이식을 받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돼지의 간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방법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돼지는 생리적 특성이 사람과 비슷해 인간에게 장기를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동물로 꼽힌다. 게다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이라서 원하는 시기에 장기를 이식할 수 있다. 돼지의 간 이식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되면 “옛날에는 사람 간을 이식했다”며 신기해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다른 사람의 간은 자신의 장기가 아니라서 면역체계는 간을 이물질로 보고 계속 공격한다. 돼지 간은 사람의 간보다 더 많은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면역 거부 반응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가 연구자들의 고민거리다. 또 돼지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바이러스에 사람이 감염될 수도 있다. 백승운 삼성서울병원 간암센터장은 “면역 억제는 약이나 유전자 조작으로 가능할 텐데, 바이러스 감염 문제가 조금 까다롭다”면서 “그러나 현재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우리 세대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간은 수술에 제한이 많은 장기다. 간암에 걸리면 이미 간 기능이 떨어진 상태여서 수술로 간을 너무 많이 절제하면 간 기능에 문제가 생겨 환자가 수술 도중에 쇼크로 사망할 수 있다. 따라서 간은 최소한 30% 정도는 남겨둬야 한다. 수술받을 수 있는 환자가 10명 가운데 3명뿐인 것도 이 때문이다. 나머지 7명은 색전술이나 고주파 치료를 받는다.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에 항암제를 투여해 암을 죽이는 방법(색전술)은 알레르기, 혈관 손상, 복통, 구토 등의 부작용이 따른다. 고주파 열치료는 고열로 암세포를 태워 없애는 방법인데 인근 장기가 고열로 손상될 수 있고, 감염이나 출혈 위험도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극초단파(마이크로파)를 이용한 치료 연구가 진행 중이다.

방사선 치료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방사선을 암에 조준해서 쏘면 방사선은 우리 몸을 관통한다. 따라서 암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단점이다. 양성자 치료기가 이 단점을 보완해줄 것으로 보인다. 양성자는 정상 조직에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에 도달했을 때만 효과를 나타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치료기는 현재 미국 하버드 대학 부속병원, MD앤더슨 암센터, 일본 국립암센터 등 세계 32개 기관만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국립암센터가 유일하게 이 장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2017년부터 치료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여러 치료법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암은 유전자 결함으로 생긴다. 정상 유전자를 투여해 암을 치료하려는 시도도 있다. 이런 연구는 1990년대 초반부터 활발했지만 아직 내놓을 만한 결과는 없다. 또 암은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혈관을 만드는데, 이를 억제하는 약이 미국에서 개발됐다. 그러나 간암 치료에 대한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해 더 두고 봐야 한다.

ⓒ 국립암센터 제공
한국인 간암 주원인은 B형 간염

한국인 간암의 주원인은 B형 간염이다. 국내 간암 환자를 살펴보면 90%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B형 간염은 현재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생후 2개월 이후에는 B형 간염 예방 접종을 받으면 된다. 성인도 혈액검사로 B형 간염을 확인한 후 필요에 따라 백신 주사를 맞으면 된다. 과거보다 백신 접종이 늘어나면서 간암 발생은 앞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조기 검진 증가 덕에 생존율도 1995년 11%에서 현재 20%대로 상승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인 간암 원인에 변화가 생겼다. 서양처럼 C형 간염이 늘어나고 있다. 수혈, 마약 주사, 문신 등이 대표적인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 경로다. 여성은 귀를 뚫을 때 불결한 기구를 사용하다 간염에 걸리기도 한다. 박중원 국립암센터 박사는 “C형 간염이 늘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는 변이가 심해 백신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술은 간암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20~30년 지속해서 술을 마시면 간세포가 손상되고 딱딱해지는 간경화로 진행한다. 간 기능이 떨어져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간은 하루에 160g의 알코올을 분해한다. 2홉짜리 소주 2병, 맥주 4000cc, 양주 3분의 2병 정도의 양이다. 이보다 적은 양이라도 장기간 술을 마시면 간경화에 걸리기 쉽다. 알코올 도수와 무관하게 꾸준한 알코올 섭취만으로 간경화는 발생한다. 특히 간염 보균자가 폭음하는 것은 간경화와 간암을 자초하는 행위다.

알코올성 지방간도 문제다. 국민 10명 중 3명은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데,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하다. 술을 끊어도 지방간은 계속 진행한다. 국내에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간암 환자의 30%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원인이다. 한국인도 비만해지고 당뇨·고지혈증 등으로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잠재적인 간암 환자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간은 몸무게의 2%를 차지하는 가장 무거운 장기다. 표면이 매끈하고 선홍색을 띠지만 딱딱해지거나(간경화) 암에 걸리면 울퉁불퉁하고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 간암은 남성의 병이라고 하는데, 여성보다 4배나 많이 발생한다. 그것도 한창 일할 나이인 40~50대에 생긴다. 간은 70~80%가 암세포로 덮여도 아무런 증세를 느끼지 못해 이른바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정상적인 간이 간암 직전 단계인 간경화로 갈 때까지 20~30년 걸리지만 그때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라고 해야 가슴이 조금 뻐근할 정도다. 상복부 통증, 복부 팽만, 체중 감소, 심한 피로, 소화불량 등이 느껴지는데 무심코 지나칠 만한 증상들이다. 증세가 심해지면 황달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이쯤 되면 간암 환자는 건강 보조 식품이나 한약을 복용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간 기능이 떨어진 간암 환자에게 민간요법은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아무리 좋은 식품이라도 독성이 있어서 간암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민간요법을 택한 사람의 일부는 임상시험에 거부감을 느낀다. 사람을 시험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때문이다. 임상시험에 사용하는 신약은 최소한 동물 실험에서 안전성이 입증됐다.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보다 안전하다.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음식을 먹고 자칫 암을 악화시켜 수명을 단축하는 것과 임상시험에 참여해 새로운 치료를 받아보는 것의 이해득실을 따져 결정할 일이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아바타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됐나.

암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를 발견하면 그 유전자를 고칠 치료제를 개발해서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간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표적 항암제를 모든 간암 환자에게 사용해볼 수는 없지 않은가. 표적 항암제의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쥐를 이용한다. 환자의 암세포를 쥐에 이식하면 환자의 분신처럼 된다. 즉, 아바타 쥐가 생기는데 이 쥐에 표적 항암제를 사용해보면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내가) 아바타를 만드는 데 성공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표적 항암제 개발 현황은 어떤가.

유전자를 검사하고 그 항암제가 효과를 보일 만한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이 표적 치료제의 장점이다. 수술할 수 없는 환자에게 대안으로는 표적 항암제(넥사바)가 유일하다. 이전부터 표적 항암제에 관한 연구는 많았지만 모두 암세포를 이기지 못했다. 올해 새로운 표적 치료제가 최종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결과가 좋다면 5년 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적 항암제와 다른 치료법을 병행하면 효과가 더 좋지 않을까.

넥사바와 색전술(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을 차단하는 치료법)을 함께 해보려는 연구가 많았는데 전부 실패했다. 나도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는 병행 치료를 연구 중이다. 2009~11년 수술할 수 없는 간암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했다. 암이 커지지 않거나 새로운 암이 생기지 않는 기간이 4개월에서 7개월로 늘어났다. 결과가 좋아 현재 최종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2~5년 후 결과가 나올 텐데 표적 항암제만 단독으로 사용했을 때보다 생명을 평균 반년이라도 연장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 평균이 6개월이라면 최대로는 몇 년 동안 생존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다(수술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3개월만 연장해도 신약으로 인정받을 만큼 큰 성과다).

혈액에서 암세포를 찾는 진단기 연구도 하고 있다는데.

혈액을 떠돌아다니는 암세포를 발견하는 진단기를 미국에서 개발했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 나도 정부 연구 과제로 혈액에서 돌아다니는 암을 포착하는 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성과를 종합하면, 혈액에서 암세포를 찾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 암의 성질이 무엇인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3년 후 이 문제가 풀리면 어떤 성질의 암인지 알 수 있고, 그에 따른 정확한 치료법을 택할 수 있게 된다. 특정 암에 맞는 항암제를 사용하는 것은 치료 성적을 높이기도 하지만 환자가 받는 고통과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치료 이후 환자의 삶의 질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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