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회, 그 절정의 고소함
  •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6.0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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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구이는 회 다음에 먹는 게 맞는 순서

고춧가루에 고추장 더하고 다진 마늘과 식초, 설탕, 청주, 참깨, 참기름 등을 넣어 양념을 만든다. 미나리·풋고추·당근·오이·양파·쑥갓 등 채소를 잘게 썬다. 이 양념과 채소를 생선회에다 넣고 버무린다. 회 무침이다. 막회라고도 한다. 참 무지막지한 조리법이다. 이 복잡한 맛의 양념과 채소에 생선회가 버틸 수 없다. 오직 양념과 채소 맛으로 먹는 음식이다. 거기다가 생선회는 왜 넣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선회는 오직 치아에 씹히는 촉각에만 기여할 뿐이다.

이 무지막지한 회 무침 조리법에도 버티는 봄 생선이 있는데 밴댕이다(가을에는 전어 정도가 버틴다). 밴댕이의 고소한 기름내 덕이다. 고소한 기름내라고 하니 전어·꽁치·고등어 같은 등 푸른 생선을 떠올릴 텐데, 이들 생선의 기름내와는 다소 느낌이 다르다.

밴댕이는 입안 가득 기름내를 채운 후 짧게 멈춘다. 등 푸른 생선의 기름내는 대체로 길게 여운을 남긴다. 등 푸른 생선은 바다의 상층부를 회유하며 자신의 몸에 기름을 채우는 데 반해 밴댕이는 황해의 펄 바닥을 기면서 플랑크톤을 흡입해 기름을 얻는다. 생선 기름이라 해도 똑같은 기름이 아닐 것이다.

강화풍물시장의 밴댕이비빔밥. 보통의 생선은 양념과 채소 때문에 생선 맛을 느낄 수 없다. 밴댕이는 고소한 기름내로 양념장을 이겨낸다. ⓒ 황교익 제공
밴댕이 활어회가 없어 다행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밴댕이라는 이름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보통 밴댕이라 부르는 생선은, 즉 이 칼럼에 실려 있는 밴댕이는 어류 분류상 반지라고 불러야 옳다. 반지는 청어목(靑魚目) 멸칫과 생선이다. 밴댕이는 반지를 이르는 경기도 일대의 사투리다. 밴댕이가 정식 명칭인 어류는 따로 있다. 청어목 청어과 생선이다. 이를 경상도 등지에서는 디포리라고 부른다. 멸치 대신 국물을 내는 용도로 쓰이는 그 생선이다. 여기까지 읽고도 무슨 소리인지 헷갈릴 것이다. 쓰임새에 따라 정리해보겠다.

반지: 청어목 멸칫과. 경기도 일대에서는 밴댕이라는 사투리로 부른다. 주로 서해안에서 봄과 여름 사이에 잡힌다. 회와 젓갈로 해서 먹으며 말리지 않는다. 몸 전체가 은색이다.

밴댕이: 청어목 청어과. 디포리라는 사투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로 남해안에서 가을에 잡힌다. 회와 젓갈로는 쓰지 않으며, 말려서 국물을 내는 데 사용한다. 전체적으로 은색이고 등쪽이 푸른데, 그래서 ‘디포리’(뒤가 파랗다)라 부른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다루는 생선은 정확히 말해 ‘반지’다. 그럼에도 밴댕이라는 사투리를 그냥 쓰기로 했다. 이 사투리가 군산 등 일부 지역 외에는 워낙 강하게 힘을 얻고 있어 어쩔 수가 없다. 반지를 어쩔 수 없이 밴댕이라 하지만, 밴댕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생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밴댕이는 7월 중순에 산란한다. 알에서 깬 어린 밴댕이는 여름내 연안에 붙어 있다가 찬바람이 불면 깊은 바다로 들어간다. 5월 들어 바닷물이 따뜻해지면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연안으로 몰려든다. 이때부터 밴댕이는 산란을 준비하느라 먹이 활동을 왕성히 하고 몸에 살과 기름을 올린다. 어부들은 이때를 맞춰 조업을 하는데, 산란에 들어가는 7월 중순이면 어자원 보호를 위해 밴댕이 잡이를 멈춘다. 그러니까 5월부터 7월 초까지 맛있는 밴댕이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①밴댕이 ‘소갈딱지’. 간과 알을 빼고 나면 창자는 가느다란 실 같다. 아주 적은 양을 먹고도 살을 많이 찌우는 효율적인 생리 구조를 지니고 있다. ②밴댕이 한 마리에 두 장의 회가 나온다. 밴댕이는 겉모양과 달리 연한 속살이 섹시하다. ⓒ 황교익 제공
냉장고에서 하루 이상 숙성해야 더 맛있다

밴댕이는 성질이 급하다. 그물에 걸려 배 위에 오르자마자 죽는다. 얼마나 빨리 죽는지 어부들도 살아 있는 밴댕이 꼴을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밴댕이는 활어회가 없다. 나는 오히려 밴댕이가 빨리 죽어 다행이라 여긴다. 밴댕이를 수조에 살려 활어회로 판다면 그 맛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생선은 죽은 후 일정 시간 숙성을 해야 맛있다. 생선살 속의 효소에 의해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돼 감칠맛이 더해지고 살의 조직도 연해진다. 밴댕이는 적어도 냉장고에서 하루 이상 숙성해야 맛있다.

밴댕이는 작은 생선치고는 비늘이 억센 편이다. 살이 연해 칼로 비늘을 긁으면 상할 수 있으므로 물에 씻어 털어낸다. 큰 놈은 한 마리로 두 점, 작은 놈은 한 점의 회를 발라낸다. 회로 먹을 것은 10cm 정도의 작은 것이 좋으며, 구울 것은 큼직할수록 살이 깊어 맛있다.

밴댕이회 맛은 고소하고 연하다는 특징이 있다.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부드럽다. 보통은 상추에다 밴댕이회를 올리고 초장 또는 된장, 마늘, 풋고추를 올려 먹는데 밴댕이의 그 연한 조직을 고려한다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고추냉이간장도 밴댕이의 기름내와 부딪혀 좋지 않으며 된장도 밴댕이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듯하다. 최소한의 초고추장에 찍은 밴댕이회에 입가심용 생강 초절임 또는 소주 한 잔이면 더없이 맛있다.

밴댕이구이는 회를 다 먹고 나서 먹는 것이 바른 순서다. ‘꼬순내’가 워낙 강해 밴댕이구이를 먹고 난 다음에는 어떤 음식도 즐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굵은 소금을 뿌려 구우면 따로 간을 할 필요가 없다. 기름내와 비린내를 줄이자면 레몬즙이 좋을 것이나 음식점에서 이를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이고, 식탁에 으레 오르는 고추냉이간장에 식초를 첨가해 찍어 먹으면 잘 어울린다.

봄날 밴댕이를 먹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연하고 고소한 밴댕이로 초밥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초밥을 하기에는 너무 허접한 생선이 아니냐고? 아직 절정의 맛을 내는 밴댕이를 만나보지 못했다면 그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철 변함없는 재료의 초밥을 내는 요리사라면 뭔 소리인가 할 것이고.

수도권에서 밴댕이를 먹겠다면 강화도가 좋다. 외포리나 후포항에 가면 어부들이 하는 횟집이 있어 싸고 싱싱하다. 강화 읍내의 풍물시장도 괜찮다. 현대식 2층짜리 대형 건물이지만 그 안의 시장 사람들이나 파는 물건들은 수십 년 전 강화 재래시장 그때 그대로다. 1층 한 귀퉁이에는 어물전이 있고, 2층에는 식당가가 있어 여기서도 밴댕이를 맛볼 수 있다. 보통은 냉동 밴댕이로 요리해 내는데 이맘때면 생물 밴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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