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교과서가 온다
  • 이규대 기자·양창희 인턴기자 ()
  • 승인 2013.06.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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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뉴라이트 역사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 검정 심의를 통과했다는 논란이 확산되면서다. 그 중심에 한국현대사학회가 있다. 2011년 창설 당시부터 뉴라이트 세력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의혹에 휩싸였던 곳이다. 문제는 여기에 감정적인 반응과 각종 억측이 뒤섞이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은 다시 불거진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논란 이면을 집중 조명했다. 거기에는 더욱 집요해진 보수의 ‘역사 전쟁’이 있다.


뉴라이트라고 했다. 여론은 그들을 그렇게 지목했다. 보수 성향 학술단체로 알려진 한국현대사학회 얘기다. 지난 5월 말 한국현대사학회의 일부 필진이 참여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검정 심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제 곧 ‘뉴라이트 역사교과서’가 고등학교 교실에 등장할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했다. 6월3일 한국현대사학회가 내놓은 공식 성명이다. ‘본 학회는 뉴라이트 계열도 아니고, 그 세력도 아니다. 또한 2011년 5월에 창립된 우리 학회는 그 이전의 뉴라이트에 의해 이루어진 어느 활동과도 관련성이 없다’고 밝혔다.

말이 엇갈린다. 주변에서는 맞다고 하는데 정작 한국현대사학회는 부인한다. 애초 논란은 뉴라이트 역사교과서의 탄생을 둘러싼 우려 때문에 발생했다. 그런데 논란의 당사자들은 뉴라이트라는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심의에 통과한 교과서 내용은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최종 검정 절차가 마무리되는 8월30일 이후 공개될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교과서 내용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논란이 확대될수록 의문도 따라 커진다.

논란의 중심에 선 한국현대사학회는 어떤 단체일까. 이들과 뉴라이트 세력과의 관계는 무엇일까. 세간의 추측대로, 과연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는 탄생하는 것일까.

6월6일 현충일 서울 장충동 자유총연맹 광장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너머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상민
가치관 답습하고도 “뉴라이트 아니다”

한국현대사학회의 역사는 길지 않다. 2011년 5월 설립된 신생 학회다. 회원은 200여 명이다. 학회 창립과 운영 과정에서 김용직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이명희 충남대 사학과 교수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요 임원과 고문 명단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한국사 학술단체에 비해 비전공자의 비율이 높다. 무엇보다 뉴라이트 세력으로 분류됐던 인사가 대거 눈에 띈다. 안병직 전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교과서포럼에 참여했던 인사도 많다. 회장을 맡았던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를 포함해 유영익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차상철 충남대 사학과 교수 등이다.

한국현대사학회는 기존 한국 현대사 연구가 21세기에 격상된 국제적 지위에 걸맞지 않게 이뤄졌다고 본다.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달성한 자랑스러운 역사임에도 ‘구시대의 부정적 유산인 자폐적 또는 자조적인 관점’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특히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적 정체성의 정립, 대한민국의 발전과 역사에 관한 다양한 학문적 연구를 진작시키는 데 힘쓰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뉴라이트 담론의 주요 진원지 중 하나였던 교과서포럼의 창립 취지와 거의 일치한다. 교과서포럼은 “물론 굴곡과 좌절 및 아픔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가늠해보아도 대한민국은 ‘미션 임파서블’을 이뤄냈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밝힐 만큼 한국 현대사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교과서에는 ‘독재와 억압, 자본주의의 참담한 모순’만이 있으므로 균형을 잃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교과서포럼이 펴낸 ‘대안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태어나는 역사적 과정에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 그것은 이 국가가 인간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기에 적합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현대사학회의 연구 철학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한국현대사학회는 설립 취지와 목적부터 뉴라이트 세력의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입각한 건국을 신성시하는 것은 뉴라이트가 공유해온 기본 가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현대사학회는 자신들이 뉴라이트 세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총무이사로 일하며 학회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김용직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 학회는) 정치사뿐 아니라 과학사·문화사·예술사 등 다양한 (시각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학회가 ‘순수한 연구단체’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연결되는 것을 경계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생겨난 뉴라이트 운동은 정치·사회 운동, 역사 운동 등이 총체적으로 진행되는 형태를 띠었다. 뉴라이트는 200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실용 보수를 표방하며 등장한 정치·사회적 세력을 가리키는 한편,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요약하는 이중의 개념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 교수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한국현대사학회는 전자의 의미에만 초점을 맞춘다. 학술적인 것 이외의 목적이 없다며 뉴라이트 세력과 선을 긋는다. 공식 성명에서는 ‘2011년 5월에 창립된 우리 학회는 그 이전의 뉴라이트에 의하여 이뤄진 어느 활동과도 관련성이 없다’며 연속성을 부정했다.

학계의 일반적 인식은 다르다. 그들이 표방하는 가치와 이념이 뉴라이트 세력의 판박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해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뉴라이트는 분명 하나의 이념적 입장이라 할 수 있다. 한국현대사학회는 교과서포럼과 거의 같은 논리를 구사한다. 떳떳하게 자기의 정체성을 얘기하면 된다. 왜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하나”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뉴라이트 교과서’라는 딱지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심지어 한국현대사학회는 창립 목적에서 ‘최근 표류하고 있는 근현대사 교육을 바로잡는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표방했다. 과거 교과서포럼이 탄생한 목적과 같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수한 학술단체’로서의 활동이라 보기는 어렵다. 2011년 한국현대사학회 창립 당시 이 학회를 두고 ‘제2의 교과서포럼’이라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한국현대사학회는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교과서 문제에 매달렸다. 창립 후 한 달여가 지난 2011년 6월 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현대사 서술의 문제점과 새로운 서술 방향’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기존 역사교과서가 한국 현대정치사를 ‘민주주의 시련의 역사’로 취급하는 자기 비하적 역사관,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서술, 산업화 부작용의 지나친 부각 등을 보이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 나왔다.

2011년 6월29일 한국현대사학회가 주최한 한국사교과서 세미나. ⓒ 뉴스뱅크
창립 직후부터 교과서 문제 매달려

학회의 작업은 치밀했다. 출범 후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11년 7월 교과서 집필 기준부터 수정을 요구했다. ‘2011 역사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한국현대사학회의 건의안’을 국사편찬위원회에 제출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명시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였다.

임의로 교과서 집필 기준의 ‘민주주의’라는 문구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했다. 이는 역사학계의 대대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이미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까지 끝난 후 진행된 일의 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교과서 검정 기준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문구를 삽입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분단 이후의 남한 정부 체제를 가급적 긍정하려 하는 보수적 역사관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학회가 주최한 한 발표회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1차 관문’이라는 묘사가 나올 정도였다.

한국현대사학회는 민주적 절차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맞서는 개념으로 본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한 행위를 자랑스러운 역사로 재평가한다. 이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남한 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의 업적을 달성한 국부(國父)가 된다. 이후 정권에서 이뤄진 근대화와 산업화 역시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된다. 그 과정에서 일부 ‘과’는 있었지만, 그보다 ‘공’이 훨씬 크다는 논리다. 이는 전형적인 뉴라이트식 역사관이기도 하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무리한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공’으로 ‘과’를 덮는다는 논리에 결정적인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윤해동 한양대 비교문화역사연구소 교수는 이승만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4·19가 초래되었다는 사실, 1960년대는 4·19로 찾은 자유민주주의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로 압살되었던 사실을 거론하며 이렇게 반문한다. “이승만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반대되는 방식으로, 곧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에 기여했다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이 ‘의도하지 않은 역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학계의 반발에도 ‘자유민주주의’ 개념은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 포함됐다. 한국현대사학회의 일부 회원이 집필에 참여한 교과서는 그 기준에 따라 심사를 받았다. 결국 2011년 학회 출범 이후 2년여의 기간 동안한국현대사학회 나름의 ‘역사교과서 출간 프로젝트’가 단계적으로 진행돼온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문제의 교과서가 치명적인 문제를 품고 있을 가능성은 작다고 진단한다. 비록 ‘자유민주주의’ 개념이 도입되기는 했으나, 역사 서술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집필 기준이 여전히 상세하기 때문이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인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검정을 통과했다고 하니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만큼은 아닐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에 부합하는 서술일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현대사학회가 5월31일 개최한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 토론회에서 이명희 공주대 사학과 교수는 “심사가 ‘자유민주주의’ 기준에 따라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연구교수는 “학술회의가 계속 이뤄지고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한국사 전반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순차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현대사학회의 주장을 교과서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뉴라이트 담론은 기존의 ‘올드 라이트’가 하지 못했던 것을 가능하게 했다. 보수 세력의 역사적 자기 정당화였다. 반공 논리, 산업화·근대화의 유산을 바탕으로 자신의 뿌리를 긍정하는 역사를 스스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이 출현한 지 10년 가까이 흐른 현재, 많은 전문가는 뉴라이트 이데올로기가 올드 라이트를 포함하는 보수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뉴라이트’ 가치, 보수 전반으로 확산

실제로 <시사저널>이 최근 2년간 한국현대사학회의 공식 활동을 분석해본 결과, 사회 내 주요 보수 세력들이 이를 활발히 지원하고 있었다. 학회가 주관하는 각종 대형 행사를 공동 개최하거나 공식 후원한 것이다. 사업가 출신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소, 재계의 유력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유력 보수 신문,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굿소사이어티 등이다. 정계·재계·언론계를 망라한 보수 세력이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보수적 시각으로 현대사를 재구성하려는 세력은 이제 뉴라이트라는 기치를 숨기려 한다. 그러나 이미 그 가치관은 보수 전반이 공유하는 공통의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록 전장의 모습은 달라졌을지언정, 전선은 오히려 굳건해졌다. 보수-진보 역사 전쟁의 ‘제2막’이 올랐다.  


근현대사 논쟁은 관점과 철학 차이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일베의 역사 논쟁에서는 주로 ‘왜곡’이 문제가 된다. 사실이 아닌 정보를 근거로 삼거나, 사실인 정보를 가리는 식이다.

한국현대사학회가 제기하는 논쟁은 다르다. 학회 회원들의 저술들을 살펴보면,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5·16이 쿠데타임을 부정하거나 5·18을 폭도들의 반역이라고 규정하는 등의 날조는 찾아볼 수 없다. 객관적인 사실의 진위 여부 문제보다는, 확인된 역사적 사실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관점과 철학을 두고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현대사학회는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균형을 잃었다고 본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건국이나 근대화 과정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이런 시각에 반발한다. 기존 교과서에서도 남한 정부 수립 이후의 발전상에 대해 균형 있게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 역사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한 집필 기준에는 관련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타사 교과서의 집필에 참여했던 주진오 교수는 “편향성을 가진 것은 보수 쪽이다. ‘남로당식 사관’ ‘김일성 추종’ 등 원색적인 색깔론으로 좌편향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도 어려운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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