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이미 다르빗슈 넘어섰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06.1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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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율·퀄리티스타트 등 데뷔 첫해 기록 앞서

지난 시즌이 끝나고, 류현진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한국 언론은 조심스럽게 ‘10승, 평균자책 3점대 중·후반’을 예상했다. 사실 예상은 그렇게 했지만, 과연 류현진이 얼마나 호투할지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류현진이 한국 프로야구 출신 가운데 최초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데다 올 시즌이 데뷔 무대였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같은 아시아 선수인 류현진의 미국 진출을 환영하면서도 일본 선수들의 전례를 들어 ‘5승, 평균자책 4점대만 기록해도 성공’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나 다르빗슈 유와 류현진을 비교하는 것 자체를 극도로 경계했다. 왜냐? 류현진을 다르빗슈의 동급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야구인들은 다르빗슈를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로 본다. 과장이 아니다. 2005년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한 이후 다르빗슈는 2011년까지 해마다 놀라운 투구를 펼쳤다. 7시즌 통산 167경기에 등판해 93승38패, 평균자책점 1.99를 기록했다. 특히나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평균자책 1점대를 기록하며 일본 최고 투수로 인정받았다.

일본 야구계는 다르빗슈가 40세까지 뛴다면 “통산 300승도 꿈은 아니다”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다르빗슈는 2011시즌을 끝으로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일본에선 더는 이룰 게 없다”는 것이 미국 진출 이유였다.

(왼쪽) ⓒ AP 연합, (오른쪽) ⓒ EPA 연합
미국 언론 “류현진, 다르빗슈보단 이가와에 가깝다”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다르빗슈의 투구를 직접 지켜봤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쾌재를 부르며 베팅에 들어갔다. 결국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에 관심을 보였던 텍사스 레인저스가 역대 최고 포스팅 금액인 5170만 달러와 6년간 600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몸값을 제시하며 다르빗슈를 낚아챘다.

당시 텍사스 구단 사장이던 ‘전설의 강속구 투수’ 놀란 라이언은 “다르빗슈는 역대 미국 진출 일본인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투수”라며 “우리가 그에게 한 해 10승 이상을 원하는 건 무리한 바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르빗슈는 예상대로 데뷔 시즌이던 지난해 16승9패, 평균자책 3.90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전해 일본에서 뛸 때 기록한 18승6패, 평균자책점 1.44와 비교한다면 평균자책이 올랐을 뿐 승수는 비슷했다.

더군다나 16승은 아시아 선수 출신으론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가장 많은 승수라 ‘역시 다르빗슈’라는 찬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미국 야구계가 다르빗슈 입단을 전후로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다면 류현진은 반대다. 류현진의 LA 다저스 입단이 확정됐을 때 미국 스포츠 언론 대부분은 “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였으나 그에 대해 알려진 건 별로 없다”며 “그가 얼마나 호투할지 예상하기조차 힘들다”는 식의 보도를 내보냈다.

지난 2월 미국 취재 중 만난 메이저리그 기자는 “다저스가 포스팅액과 몸값을 합쳐 6170만 달러를 투자할 만큼 류현진이 정말 대단한 투수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기자가 류현진을 ‘한국의 다르빗슈’라고 소개했을 때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시 그가 들려준 말은 이랬다. “다르빗슈는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포크볼, 스플리터, 투심·원심 패스트볼을 자유자재로 던진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다르빗슈처럼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는 거의 없다. 여기다 다르빗슈는 평균 93마일(시속 150km)의 속구를 뿌리는 투수다. 하지만 우리가 조사한 류현진은 슬라이더·체인지업 등 단순한 변화구에 90마일대(시속 145km) 속구를 던질 뿐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류현진은 다르빗슈보다는 뉴욕 양키스의 골칫덩이였던 이가와 게이와 가까워 보인다.”

2003년 한신 타이거스에서 20승5패 평균자책 2.80을 기록했던 좌완 에이스 이가와는 2007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양키스는 일본 특급 좌완 이가와를 영입하려고 2600만 달러의 포스팅액을 투자했고, 이와 별도로 5년간 2000만 달러의 몸값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가와는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메이저리그 통산 불과 16경기에 출전해 2승4패 평균자책 6.66을 기록하며 도망치듯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가와의 대실패 이후 미국 야구계에는 “아시아 좌완 투수는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 돌았고, 이는 류현진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가로막는 악재가 됐다.

류현진이 미국 무대를 밟은 지 세 달이 흘렀다. 과연 류현진에 대한 미국 내 평가는 어떨까. 놀랍게도 현재 류현진에 대한 평가는 다르빗슈의 빅리그 데뷔 시즌이던 지난해보다 훨씬 좋다. 두 선수의 데뷔 시즌을 비교하면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11경기에 등판했을 때 다르빗슈의 성적은 7승3패 평균자책 3.21이었다.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는 6번으로, 2번의 등판 가운데 한 번 이상은 반드시 선발투수로서 제 몫을 했다.

데뷔 시즌 11경기만 보면 류현진이 한 수 위

그렇다면 류현진은 어떨까. 올 시즌 11번의 등판에서 류현진은 6승2패 평균자책 2.89를 기록 중이다. 같은 기간 다르빗슈보다 1승이 뒤지지만, 평균자책은 되레 0.32나 낮다. 퀄리티스타트 역시 8번으로 다르빗슈보다 뛰어난 선발투수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더 고무적인 건 올 시즌 다저스 타선이 지난해의 텍사스보다 훨씬 처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류현진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아시아 출신의 루키가 팀 타선의 도움이 부족한 가운데 벌써 6승이나 따냈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류현진은 다르빗슈가 2시즌 동안 40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한 번도 거두지 못한 완봉승을 단 11경기 만에 달성했다.

5월29일(한국 시각) LA 에인절스와의 인터리그 경기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 경기에서 류현진은 9이닝 동안 2피안타 무실점 무4사구 7탈삼진 역투로 시즌 6승째를 따냈다.

구속에서도 류현진은 다르빗슈와 동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류현진은 에인젤스전에서 최고 구속 95마일(시속 약 153km)의 위력적인 공을 뿌리며 상대 타자를 압도했다.

다르빗슈의 최대 강점으로 꼽혔던 제구 면에서도 류현진이 한 수 위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다르빗슈는 9이닝당 볼넷 4.19개를 기록했지만, 올 시즌 류현진의 9이닝당 볼넷은 2.76개에 불과하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지금 추세라면 류현진은 지난해 다르빗슈가 세운 아시아 투수 데뷔 시즌 최다승을 갈아치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유는 세 가지다.

“다저스의 홈구장 다저스타디움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명한 투수 친화적 구장이다. 파울 지대가 넓어 빗맞은 타구는 파울아웃으로 처리하기 쉽다. 두 번째는 류현진의 내구성이다. 류현진은 한국에서 뛴 7시즌 동안 180이닝 이상 투구를 5시즌이나 기록했다. 그런데도 어깨와 팔꿈치에 별 이상이 없다. 마지막은 낙천적인 성격이다. 일본 투수들과 과거 박찬호는 마운드에서 생각이 많은 진지한 투수들이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홈런을 맞아도 금방 잊어버리는 담대한 투수다. 설령 연패를 당해도 슬럼프에 빠질 투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허 위원은 “만약 류현진이 지난해 다르빗슈가 기록한 16승을 넘어선다면 내셔널리그 신인왕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다르빗슈는 신인왕 경쟁에서 마이크 트라우트(탬파베이)에 밀리며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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