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감자가 농사를 좌우한다
  • 권대우 발행인 ()
  • 승인 2013.06.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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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집 딸 복녀. 그녀는 정직한 농가에서 바르게 자라난 처녀다. 그러나 돈에 팔려 만난 게으른 남편 때문에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결국 빈민층이 사는 칠성문 밖으로 가출한다. 거지 행세,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한다.

어느 날 송충이 잡는 일에 참여했다가 감독의 유혹에 빠져 일 안 하고 돈 버는 법을 알게 된다. 그 뒤 복녀는 동네 거지를 상대로 매춘을 하고, 마침내 감자를 훔치다가 들켜 감자 주인인 중국인 왕서방과 공공연한 매음 행위를 한다. 왕서방이 다른 처녀와 혼인하게 되자 복녀는 질투심 때문에 낫을 들고 쳐들어갔다가 오히려 왕서방에게 살해되고 만다.

1925년. 김동인이 조선문단에 발표한 <감자>. 이 단편소설의 스토리는이렇게 전개된다.  이 소설은 일제 식민지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서 쓰였다. 왜 하필이면 작품의 제목이 ‘감자’였을까?  가난한 농민, 노동자의 허기를 채워주는 감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웬만한 추위에도 냉해를 입지 않는다. 서늘한 환경을 좋아하고, 비옥하지 않더라도 성장이 가능해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재배됐다. 감자의 1년 농사는 씨감자 싹 틔우기가 좌우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씨감자를 자를 칼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 또 반드시 끓는 물이나 차아염소산 나트륨으로 소독해 바이러스를 비롯한 병원균의 전염을 막아야 한다.

# 6월 들어 일찍 찾아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섭씨 30º를 넘나드는 날씨에도 국민들의 마음엔 냉기가 돌았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장마가 이어지리라는 기상청의 예보도 나와 있다. 서민들로서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현금이 도는 업종에 쏟아지는 세무조사로 납작 엎드려 있다. 처음 대기업·자산가를 타깃으로 한다던 세무조사는 중소·중견 기업에까지 고강도로 진행되는 듯하다. 세금을 제대로 내도록 하는 것은 정부에 주어진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그것이 쥐어짜기 식이면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 무분별한 재정 지출 확대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취업 대책도 그렇다. 쌓이는 규제·조사에 기업들이 헐떡거리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쪼갠들 시너지가 생길까?

지금 우리 경제의 생육 환경은 이렇듯 척박하다. 대내외 여건이 그렇고, 국민들의 기대 수준 역시 턱없이 높다. 잘못하면 다시 긴 불황의 터널 속에 갇힐 수도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필리핀이 이를 입증해준다.

# 25일이면 박근혜 정부 출범 4개월째를 맞는다. 5년 농사의 성패는 첫 1년에 좌우된다. 씨감자 관리를 잘못하면 5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씨감자에 침투한 병원균을 없애는 데 소독약을 잘못 쓰거나 씨감자를 먹어치우는 실수를 범하면 ‘21세기형 복녀’가 양산되지 말란 법이 없다.

조급하게 서둘러 대세를 망치지 말고, 조금 늦더라도 천천히 신중하게 걸어가며 선진국을 향한 디딤돌을 제대로 쌓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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