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굴복시킨 숨은 배후 있다
  • 이승욱·조해수 기자 ()
  • 승인 2013.06.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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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구속 저지 세력의 실체 검찰 관계자 “핵심 실세 개입”

지금도 검찰청사 주변에서는 2003년을 떠올리는 기억이 많다. 노무현 정권 첫해였던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은 ‘국민검사’로 각광받으며 대중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치권과 대기업을 향해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딱 10년 만인 지금, 검찰은 다시 그때의 르네상스 시대를 재현하고자 칼을 벼리고 있다. 칼자루는 채동욱 검찰총장이 쥐었다.

그러나 거침없어 보이던 ‘채동욱의 검찰’은 6월14일 큰 충격에 빠졌다.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사건 수사 발표 당일 언론사에 검찰 수사 보고서가 유출됐기 때문이다. 당초 검찰은 이날 오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같은 날 오전 “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최근 대검과 법무부에 제출한 ‘수사 보고서’를 입수했다”며 수사 보고서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검찰은 요즘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수사 보고서 유출은 단순히 언론의 취재 경쟁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조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엄청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의도적인 ‘채동욱 검찰 흔들기’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검찰이 청와대·법무부 등 권력 핵심부와 신경전을 벌이면서 한창 대립각을 세우던 중에 터져 나온 수사 보고서 유출은 예사롭지 않다. 검찰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채 총장이 그동안 수사와 관련해 ‘철통 보안’ 원칙을 강조한 것과 정반대의 움직임인 것이다. 대검 관계자는 “채 총장 체제 이후 검찰은 직원들이 전산망을 통해 수사 관련 정보를 일절 열람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보안을 강화했다”며 “하지만 수사 보고서가 통째로 유출돼 일종의 채 총장 흔들기가 진행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채동욱 체제의 검찰을 흔들려는 모종의 시도는 이미 시작된 듯하다. 채 총장은 지난 4월 초 취임하자마자,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신임 검찰총장으로서 다뤄야 할 첫 번째 사건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이었다. 선거 개입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박근혜정부에 대해 ‘정통성’ 시비까지 일 수 있는 사안이었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5월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서민생활침해사범 합동수사부장 및 유관기관 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흔들려는 모종의 시도”

하지만 채 총장의 모습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현 여주지청장)을 다시 불러들여 특별수사팀(특수팀)을 꾸렸다. 윤 팀장은 ‘정법’ 수사를 고수하는 강골 검사라는 점에서 채 총장과 닮은꼴이다. ‘정치적인’ 사건을 ‘정치적인’ 고려 없이 해결하는 검사 중 한 명이 윤 팀장이다.

하지만 채동욱 총장이 구성한 특수팀이 거침없는 움직임을 보이자 검찰 내외부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애초 특수팀은 지난 5월 말 채 총장에게 중간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특수팀은 당시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청장의 선거 개입이 있었다”고 결론 내리고 구속 기소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중간 수사 보고 이후 한참이 지나도록 검찰의 최종 수사 발표가 나오지 않았다. 늦어도 6월 초면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어떤 이유에선지 수사 결과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진 것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특수팀의 수사 발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것은 이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황 법무부장관은 지난해 11월 ‘검란(檢亂)’ 사태 당시, 특수통과 대립했던 공안통 출신으로 평가된다. 지금은 채 총장 취임과 함께 특수통이 검찰 핵심 라인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공안통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황 장관은 “법률가로서 양심상 선거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법리 검토를 다시 하라는 주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논란이 확산되자 “중요 사건 수사에 대해 법무부와 검찰이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 특수팀은 물러서지 않았다. 검찰 일각에서는 “법무부장관이 비공식적으로 수사 지휘권을 행사하며 수사팀의 의견을 묵살하고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청와대의 그림자가 검찰을 엄습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채 총장은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며 검찰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의 개입설도 제기됐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6월1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곽 수석이 특수팀 소속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국정원 의혹 수사와 관련해) ‘니들이 뭐하는 사람들이냐’ ‘이런 수사를 해도 되겠느냐’고 힐난했다”며 청와대 외압설을 제기했다. 검찰과 권력 핵심부의 갈등은 윤석열 팀장의 실명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최고 정점을 찍었다. 권력 핵심부인 청와대 외압설과 이에 대한 검찰의 반발이 거세지자 여론은 검찰 편에 섰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과거 ‘정치검찰’의 오명을 씻고 검찰의 독립성을 보여줘야 할 때”라며 검찰을 응원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오른쪽)과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이 5월1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구속’ 방침에서 ‘불구속’으로 튼 배후는?

그런데 검찰의 입장은 어느 순간부터 어정쩡해졌다. 검찰이 보여준 당초 ‘결기’와는 달리 한 발짝 물러선 모습 때문이었다.

당초 검찰 내부에서는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두 핵심 인물인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의 구속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수사 일선의 특수팀뿐만 아니라 채동욱 검찰총장을 비롯해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송찬엽 대검 공안부장, 박형철 서울지검 공공형사부장 등이 모두 일치된 의견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사실이 검찰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황 장관이 추가 법리 검토를 지시하며 시간을 버는 사이 검찰의 방침은 ‘구속 기소’에서 ‘불구속 기소’로 바뀌었다. 그동안 검찰 내부에서 법무부와 청와대의 수사 개입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저항했던 결기는 어느새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황 법무부장관과 청와대 수석 그 이상의 윗선에서 검찰의 결정에 영향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곽상도 민정수석 정도에서 외압을 가했다는 건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이라면서 “당초 검찰의 내부 결정을 번복할 수 있을 정도라면 훨씬 막강한 인물이 나섰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과연 누구일까. 검찰 관계자는 “핵심 실세가 아니라면 뒤집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곽상도 수석이 황교안 장관에게 전화할 위치에 있지 않고, 역학 관계상 그게 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 내부의 갈등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특수통과 공안통 간에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채동욱 총장의 ‘전력’ 때문이다. 지난해 발생한 검찰 역사상 초유의 검란이 바로 그것이다.

검찰 공안통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 검찰 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검찰 수장이었던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공안 라인을 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최재경 당시 중수부장을 비롯한 특수부 라인 검사들은 한 전 총장의 과도한 수사 개입에 반발해 집단 항명했다. 공안통과 특수통 간의 갈등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한 전 총장은 결국 불명예 퇴진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최 전 중수부장이었지만, 특수통의 좌장이었던 채동욱 당시 대검 차장도 한몫했다.

이후 검찰 수장 자리에 채 총장이 앉으면서 검란은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첫 공안 사건인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터지면서 특수통과 공안통의 복잡 미묘한 관계가 다시 한번 불거졌다. 이번 사건의 보고 라인에 특수통과 공안통이 교차로 얽히면서 긴장감이 조성된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보고 라인을 살펴보면, 우선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공안통이다. 공안 핵심 요직인 대검 공안3과장·1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을 거쳤다. 그는 지난 1998년과 2009년에 국가보안법 해설서와 집회시위법 해설서를 출간하며 공안통 검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채 총장은 특수통이고, 그 밑에 있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강력통으로 분류된다. 반면 이번 수사를 총괄 지휘한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분류된다. 공교롭게도 그는 한 전 총장의 고려대 법대 후배라는 이유로 한때 한 전 총장과 가까운 그룹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4월30일 조사를 받은 후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수통과 공안통 내부 갈등설 또 불거져

그런데 이 차장 밑에서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특수통이다. 또한 채 총장과는 지난 2006년 대검 중수부에서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함께 수사한 인연도 있다. 반대로 윤 팀장 밑에서 실무적 법리 검토를 맡았던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은 공안통이다. 그 밖에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특수팀은 공안부 소속 검사 4명과 특수·첨단범죄수사·형수부 검사 3명으로 구성됐다. 이와 관련해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수부와 공안부 검사들은 일하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특수부 검사는 공격적으로 수사하는 반면, 공안부 검사들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럽다. 일하는 스타일이 맞지 않아 일 자체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검찰은 내부 갈등설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당연히 수사를 하다 보면 검사들끼리 이견이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일종의 기소 처리를 두고 생길 수 있는 특수통과 공안통의 갈등이라는 것은 과장된 설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실추될 대로 실추된 검찰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리고 그를 뛰어넘어 10년 전 국민검사로 각광받던 르네상스 시대의 부활을 위해 단단히 칼날을 별렀던 채동욱 총장 체제의 검찰은 지금 위험한 담장 타기를 하고 있다. 외압과 내분이라는 암초를 만난 ‘채동욱 검찰’이 정치검찰의 오명을 씻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검찰-법무부의 치열한 ‘공중전’ 

이번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놓고 법무부와 검찰이 보인 ‘언론플레이’는 도를 넘어선 모습이다. 법무부와 검찰의 외부 갈등은 물론 검찰 내 특수통과 공안통 간의 의견 대립이 실시간 언론에 중계됐다. 각자가 자신들의 입장에 맞는 정보를 흘리면서 ‘공중전’에 목을 맨 모습은 볼썽사나웠다.

지난 6월11일 문화일보는 이번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고 있는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총선·대선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것은 명확한데도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지금 수사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대검 공안부도 한 달 전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데 동의했다. 장관이 저렇게 틀어쥐고 있으면 방법이 없다”며 윤 팀장이 상급자인 황 장관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내용도 이어졌다. 물론 윤 팀장과 검찰은 “결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문화일보 기자가 ‘소설’을 썼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과장된 면이 있었을지라도, 윤 팀장이 언론에 불만을 토로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법무부를 상대로 언론을 통해 선제공격을 날린 셈이다.

수사 결과 발표 당일인 6월14일에는 수사 보고서가 조선일보에 보도되면서 상황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했다. 수사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검찰이 파악한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이 1760개이고, 이 중 선거 개입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글은 67개’라는 것이 요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선거법 적용을 반대해온 법무부 쪽 입장을 지지하는 보도였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누가 유출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수사에 반대하는 사람의 적대적인 소행으로 보인다. 이 수사를 자꾸 정치 싸움으로 변질시키는 것이 누구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채동욱 총장은 이번 사건에 격노했고 수사 문건 유출자에 대한 색출과 특별감찰을 지시했다. 검찰 기자단은 엠바고 파기에 따라 조선일보측에 징계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검찰과 법무부가 내는 불협화음에 언론이 춤을 추고, 그 사이 이번 사건은 자꾸 정치 싸움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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