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권의 ‘오물’ 사방으로 튄다
  • 차윤주│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6.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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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수사’가 미칠 후폭풍…정국 주도권 놓고 여야 대립

전직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세우게 될 사상 초유의 사건은 19대 대통령 선거를 8일 앞둔 지난해 12월11일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 6층에서 시작됐다. 당시 민주당 당원들은 국정원 여직원 김 아무개씨가 사는 집 앞을 점거하고 “국정원이 야당 대선 후보 비방과 여론 조작 작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다시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의 뒷목을 잡을 태세다. 검찰은 최근 수사를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에 개입했고,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경찰의 수사를 방해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6월11일 발표된 검찰의 원 전 원장 기소 방침이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흠집을 낼 아킬레스건이 될 기세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6월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정부, 내내 정통성 시비 시달릴 수도

이미 끝난 선거다. 야당이 이제 와 검찰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부정 선거·관건 선거라고 외쳐봐야 선거 결과 자체를 뒤엎을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딱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이 현 정권의 정통성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권 탄생 과정에 튄 이명박 정부의 오물이 두고두고 박 대통령을 괴롭힐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국정원의 불법 여론 조작 활동이 대선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계량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이나 유권자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이런 인식과 의문이 퍼지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태로 휘청거린 박근혜정부가 또다시 흔들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 더 불쾌한 것은 ‘이명박근혜’ 프레임의 재구축이다.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명박 정부의 정보기관 수장이 공작을 벌였고, 그 덕에 당선됐을 수 있다는 반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는다는 점이다. 마침 원자력발전과 4대강 사업 비리, 공기업·정부산하기관장 물갈이 문제 등으로 전 정권과의 관계 단절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박 대통령이다. 국정 초반부터 드라이브를 걸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박근혜정부의 당혹감은 여러 곳에서 읽힌다. 우선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에 반대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수사한 검찰이 적용한 법 조항을 수장인 장관이 이해하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면 당장 박 대통령이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당선됐다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는 판단이다. 청와대가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는 등 침묵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입장에선 더더욱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6월11일 국회에서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청와대 침묵…여당은 “국정조사 절대 반대”

민주당의 공격이 시작됐다. 대상은 국정원과 원 전 원장이 아니라 박 대통령이다. 6월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 첫날인 10일 민주당 신경민 최고위원은 국정원 수사에 청와대 곽상도 민정수석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곽 수석과 검찰 수사팀은 신 최고위원의 주장을 즉각 일축했다. 개인 간의 통화라 사실 관계 확인은 애초에 불가능한 폭로다. 국정원 사건과 박근혜정부를 엮으려는 의도가 읽혔다.

청와대는 계속 무대응이다. 이 대목에서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의 발언이 눈에 띈다. 그는 6월7일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민주당 의원들과 만나 “수사는 검찰이 하고 청와대는 하지 않는다. 기소는 검찰이 하고 청와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새 정부가 검찰을 이용하려 했다면 검찰총장 임명 때부터 개입했을 것이다. 총장 결정은 새 정부에 넘길 줄 알았는데 전 정부가 지명한다고 인사위원회까지 열어 결정했다. 그 검찰이 지금 이명박 정부 사람을 수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수사와 관련한 이 수석의 유일한 발언이다. 대선 때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매일 진행했던 ‘사랑방’에서 국정원 사건을 “여성 감금, 인권 침해 사태”라고 규정하며 민주당을 원색 비난하던 이 수석의 과거 모습과는 딴판이다. 전 정권의 부정을 이번 청와대가 끌어안지 않겠다는 의도다. 누구보다 이 문제가 박 대통령의 정통성과 현 정권의 정당성에 미칠 파장을 잘 아는 그다.

새누리당의 스탠스도 비슷하다. 한 핵심 당직자는 이 문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고 재판도 시작되지 않은 사건인데 너무 그러지 마라”고 웃어넘겼다. 나름의 반격도 준비 중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내부 직원과 민주당과의 내통설로 맞불을 놓을 조짐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한자리 준다는 약속을 하고, 국정원 직원에게서 내부 정보를 빼내 불거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국정원 사건의 태생적인 한계를 공격하는 방법이다.

국정원 사건이 불러올 후폭풍은 아직 정치권에 도래하지 않았다. 태풍이 서서히 정치권을 강타하려 몸집을 키우고 있다. 태풍의 핵은 국정조사와 10월 재보선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지난 3월17일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에 합의하면서 부수 조항으로 검찰 수사 후 국정원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는 데 합의했다. 사실 새누리당 입장에서 국정조사는 어떻게든 불발시켜야 할 악재 중 악재다. 마침 3월 합의문에 서명했던 원내 지도부는 물러가고 친박계 핵심들이 포진한 새 지도부가 편성됐다. 새누리당의 한 원내 핵심 관계자는 6월9일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원내 지도부에서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의 발언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봐도 무방해 보였다. 당 입장에서는 10월 재보선도 걱정이다. 국정조사 여파로 반(反)정권 심리가 확산하면 선거 참패와 원내 과반 의석 붕괴 시나리오까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

변수는 또 있다. 민주당의 무능이다. 야권에선 오랜만에 호재를 만난 민주당이 이 문제를 제대로 끌고 갈지에 대한 확신이 폭넓게 형성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전 정권이 자행한 국정원 사건에 대한 공세가 정쟁으로 비칠 수 있고, 제2의 전선인 ‘안철수 신당’에 구태 세력으로 낙인찍혀 얻을 게 없다는 위기감이 그 배경이다. 한 야권 인사는 “국정원 사건은 엄격히 따져 전 정부 일이 아니냐. 현 정부에 약간 흠집이야 나겠지만 그걸로 ‘박근혜 내려오라’고 할 사안도 아니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을(乙)을 위한 민주당’을 선언했던 김한길 대표 체제가 국정원 사건에 몰두하다 자칫 민생 화두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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