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고향이라고 펑펑 퍼주는 것 없다”
  • 대구=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06.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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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된 고물차 고집하는 김범일 대구시장

대구광역시 청사는 작다. 인구 260만 대도시의 살림채라고 믿기지 않는다. 한국 보수 정치권력의 본류인 TK(대구·경북) 종가집이 어찌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초라하다. 다른 광역시청이나 도청이 이랬다면 난리가 났을 판이다. 푸대접이니 무대접이니 하며…. 그러고 보니 가까이에 소재한 광역시 도서관도 여타 군청 소재지 도서관보다 빈약하다. 시가지도 몇십 년 전 그대로다. 권력의 본향임을 증명하듯 날개를 활짝 편 청사 앞 독수리상이 아니었다면 헷갈릴 뻔했다.

청사가 원체 협소하다 보니 시장 집무실도 매한가지다. 웬만한 시골 군수실보다도 옹색하다. 집기도 낡고…. ‘자신감의 표현일까?’ 이런 상념들 탓인지 김범일 대구시장에 대한 기자의 첫 질문은 ‘TK’였다.

 

ⓒ 시사저널 전영기
이곳 출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TK 본고장이라서 중앙의 지원을 이끌어내기가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가 정권 창출 지역이다 보니 중앙 정부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독식을 하나. 대통령 고향이라고 펑펑 퍼주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측면도 있다. 국가산업단지 지정은 대구가 전국에서 마지막(2009년)이었다. 엊그제서야 기공식을 가졌을 정도다. 지난 19년 동안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꼴찌였다. 그래서 더 열심히, 수시로 서울에 올라가 국비 확보를 위해 애쓰고 있다.

정치적으로 ‘편향’됐으니 차라리 시장으로서는 속 편하지 않은가? 애로점도 있겠지만.

밖에서 보는 만큼 시민의 정치적 편향이 심하지 않다.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타 지역보다 다소 높다고 보면 된다. 얼마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것도 지역 화합과 대통합 차원에서 가는 게 마땅하다는 지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서다.

내친 김에 묻자. 김 시장의 시정 치적은 상당하더라. 숙원 사업인 국가산단도 마무리 짓고, 관광·문화예술·첨단의료복합단지화 등등의 사업도 평가가 좋다. 그럼에도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100% 장담하지 못하는 건 대구가 ‘새누리당 판’이기 때문은 아닐까? 누굴 내세워도 당선과는 상관없다는 식의 분위기 말이다. 자신감은 좋으나 오만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인데.

그야…. 올해는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다. 그러니까 열심히 시정이나 살피려고 한다. 진짜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지역의 한 제조업체를 방문해 직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대구시 제공
김 시장에게 특이한 점이 있더라. 보통 민선 단체장들은 돈을 빌려 사업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 다음 선거에 점수를 따기 위해서라도 일하는 모습을 보이고, 눈에 띄게 실적도 쌓아야 하니까. 그런데 김 시장은 지금 빚을 갚고 있다고 하던데.

난들 생색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나. 하지만 시민을 생각해서라도 길게 멀리 봐야 한다고 본다. 시민들께 부담을 안겨서는 안 된다. 대구시 부채는 10년 동안 6000억원 정도 줄었다. 생각해보라. 2000년대 초 대구시 예산이 3조원일 때 부채가 2조9000억원이었다. 예산 대비 90%, 이게 말이 되나. 지난해 5조5000억원 예산에 부채는 2조3000억원으로 줄었다. 조금만 더 하면 2조원 수준으로 낮출 수 있고, 대형 프로젝트 발굴을 통한 재정 건전화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부채를 감축하면서도 해야 할 일은 나름으로 거의 다 했다. 욕을 먹더라도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느라 고심 중이다.

‘버럭’이라는 별명이 있더라. 직원들을 혼낸다는 말 같은데, 선거를 치르려면 인기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원칙대로 잘하라는 질타를 하고 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인가 본데…. 나는 공무원 대표이자 동시에 시민이다. 시민으로서 더 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힘들어도 공직자는 본연의 봉사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직원들도 잘 따라주고 있다.

평소 ‘나는 10% 정치인, 90% 행정가’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선가.

그렇다. 인기를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시민 편익이 최우선이라는 말이다.

그런 게 지역 정치인과 갈등하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정치인들의 민원을 잘 안 들어준다는 불만 등이다. 그런 면에서는 김관영 경북도지사와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디고 잡음이 없는 곳은 없다. 하물며 정치판에서…. 그러나 전반적으로 중앙·지방 정치권 모두와 원만한 대화와 협조가 이뤄지고 있다.

대구 동성로와 중앙로 리모델링 사업은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들었다. 여기저기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라고.

황폐해가던 도심이 살아났다. 관광객은 물론 유입 인구가 30%나 늘어나고. 사실 나 자신도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 대견스럽고. 보수적인 이미지 탈피와 대구의 활성화를 위해 ‘컬러풀 대구’를 외쳐온 게 효과를 보는 것 같다.

김범일 시장이 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문화예술 부문 지원은 어떤가.

대구는 공연 유료 관객이 서울 다음으로 많은 문화예술도시다.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의욕 증진과 시민의 관람 욕구를 풀어주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지난해 대구의 수출 증가율이 전국 최고라고 하던데.

지역 수출 실적은 69억8000만 달러다. 역대 최고치다. 증가율은 9.6%고.

도심 재개발은 공약 이행 완성도가 낮다.

국가산단 등 장시간을 요하는 국책 사업이 많다 보니 한계가 있다. 단기적으로 평가를 잘 받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대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했다.

신공항 사업은 어찌 되고 있나? 대구-경북, 부산-경남이 맞붙어 싸우느라 지지부진하던데.

1350만 인구의 영남권을 커버하는 신공항은 절실하다. 대구·부산·울산 지역민 모두에게 편익을 제공할 수 있도록 위치하면 된다. 그렇게만 되면 부산 쪽에 가까워도 좋다. 하지만 바다 쪽(부산 아래)에 만들자는 것은 억지다. 

 

새누리당 후보는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 


미국의 국조(國鳥)는 흰머리 큰 독수리(Bald Eagle)다. 그 날카롭고 강인한 부리와 발톱, 큰 날개는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국장(國章) 상징물로 손색이 없다. 한국 지방 정부 중에도 독수리를 상징 새로 삼는 곳이 한 군데 있다. 대구광역시다.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상과 개척자적 시민정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게 지정 이유다. 대구시는 30년 전인 1983년 7월 독수리를 시조(市鳥)로 정했고, 지금 시청 청사 앞에는 독수리상이 우뚝 서 있다.

보수 권력의 본산 TK(대구·경북)의 종가인 대구가 독수리를 상징 새로 정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른 지역에서는 여당 후보는 누구고, 야당 후보는 누구라는 등의 말이 많다. 또 아무개와 누구를 맞붙이면 어떻게 된다는 등 경우의 수를 따지며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에서 야당 후보에 대한 언급은 듣기조차 힘들다. 시장 후보로 김부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거의 유일하게, 그것도 아주 드물게 거명되는 정도다. 한마디로 ‘새누리당 후보=당선’ 공식이 확고하기에 여야 대결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투다. 서울 강남의 ‘새누리당 후보=당선’ 공식보다 더 공고한 곳이 바로 대구다.

차기 대구시장 선거에서 김범일 현 시장과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이 맞붙으면 52% 대 26%가 된다는 어떤 여론조사 결과에 눈길을 주는 이는 별로 없다. 어차피 민주당 세는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고, 수도권과 호남에서 위력을 떨치는 ‘안철수 신당’ 바람도 이곳에서만큼은 그저 그러니 당연하다.

최근 한 주간지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는 이 지역에서 ‘새누리당 64.5%, 민주당 7.3%, 안철수 신당 10.8%’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를 굳이 참고할 것도 없이 대구의 정서는 빤하다. 작대기를 꽂아도 새누리당 후보라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 이런 점이 오히려 김범일 시장에게는 불리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당선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또한 이미 재선을 한 김 시장이 만약 마지막 임기가 되는 3선 시장이 되면 지역 국회의원 등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도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런 마당이어서 현재 대구 지역에서 현역 김 시장 외에 거론되는 후보 인물은 ‘구청장급’이 고작이다. 윤순영 중구청장, 이재만 동구청장, 곽대훈 달서구청장 등등. 윤 구청장은 여성으로서 근대 골목 투어의 성공을, 이 구청장은 사업가 출신으로서 경영 성과를, 곽 구청장은 60만 달서구민 대표 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정치권에서는 주호영 새누리당 시당위원장, 조원진 의원, 이주호 전 교육부장관, 곽성문 전 의원 등이 거명되는데 실은 그저 호사가들의 입담일 따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결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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