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범인들, 공범의 자살…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6.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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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여대생 납치 사건 7대 미스터리 추적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여대생 납치 사건’은 전대미문의 의혹 사건이다. 공범 2명 중 한 명이 자살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은 흑막 속에 묻혔다. 범행 동기, 목적 등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이 사건의 의문점을 살펴봤다.

6월5일 오후 9시쯤 전남 순천시 홍내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두 명의 남자가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여대생 ㅇ 아무개씨(25)가 남자들 곁으로 다가왔고, 이 중 한 명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ㅇ씨의 군대 간 남자친구의 친구인 정영삼씨(가명·24)였다.

이날 저녁 무렵 정씨는 ㅇ씨에게 전화를 걸어 “남자친구가 휴가를 나왔으니 이벤트를 하자”고 속여 밖으로 불러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차량으로 유인했다. ㅇ씨는 남자친구와 정씨가 만나는 자리에 동석한 적이 있어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을 따라 차량 안으로 들어갔다.

공범인 정영삼씨가 자살한 문중 제각 인근 소나무와 지명수배 전단지(채널A 방송 화면 촬영).
친구의 여자친구를 유인해 납치

ㅇ씨가 차에 타자 범인들은 납치범으로 돌변했다. 미리 준비한 흉기로 ㅇ씨를 위협했고, 눈은 안대로 가리고 손발은 노끈으로 묶었다. 그녀는 저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꼼짝없이 인질 신세가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자친구를 위한 ‘이벤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범인들은 평소와 달리 그녀에게 욕설 등 험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장난 그만치고 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범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ㅇ씨를 7시간이나 끌고 다녔다. 그러면서 ㅇ씨가 거주하는 원룸의 현관문 비밀번호를 캐물었다. ㅇ씨는 범인들에게 순순히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ㅇ씨는 호시탐탐 탈출할 기회를 엿봤다. 6월6일 오전 3시5분쯤 순천 시내인 연향동의 한 공원을 지날 때쯤 “배가 아파 화장실이 급하다”며 배를 움켜쥐었다. 범인들은 순순히 공중화장실로 들어가게 했다. 그녀는 화장실에 들어간 후 곧바로 문을 걸어 잠그고 휴대전화로 친구에게 “지금 납치됐으니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화장실에서 구조됐다.

ㅇ씨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을 눈치챈 범인들은 곧바로 도주했다. ㅇ씨는 경찰의 보호 속에 기본적인 조사를 마친 후 귀가했다. 그런데 집이 평소와는 달랐다. 살림살이가 흐트러져 있는 등 방 안이 엉망이었다. 특히 현금을 보관해둔 금고가 부서져 있고, 그 안에 있던 현금 2316만원이 사라졌다.

ㅇ씨는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다. 그녀는 경찰 조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금고에 보관해왔다”고 진술했다. 정황상 그녀가 납치범들에게서 탈출한 후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을 때 범인들이 원룸에 침입해 현금을 훔쳐간 것이다.

경찰은 ㅇ씨에게 사건 전후 진술을 듣고는 두 명의 범인 중 한 명을 특정했다. 그는 ㅇ씨를 통해 신원이 드러난 남자친구의 친구인 정영삼이었다. 경찰은 ㅇ씨가 처음 납치된 곳을 기점으로 탐문을 시작했다. 얼마 후 납치 현장으로부터 2~3km 떨어진 지점에서 범행에 사용했던 렌터카를 발견했다. 그리고 승용차 안에서 의외의 수확을 했다.

범인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던 정유성(가명·23)의 신분증을 찾아낸 것이다. 정씨는 경찰을 피해 급히 달아나다가 신분증이 든 지갑을 빠뜨렸다. 정씨의 연고지인 전북 전주에 형사대가 급파돼 사건 하루 만인 6월6일 오후 8시50분쯤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정씨가 지니고 있던 현금도 회수했다.

정유성은 경찰 조사에서 “공범인 정영삼과 인터넷으로 만나 범행을 계획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원룸을 턴 직후 돈을 나누고 헤어졌다”고 진술했다. 피해자 ㅇ씨도 붙잡힌 정씨와는 “일면식도 없었다”고 말했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아직 잡히지 않은 정영삼이 주범으로 여겨졌다.

경찰은 그를 잡기 위해 주소지 등에 형사를 배치하는 등 추적에 나섰다. 하지만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정영삼은 부모님 등 지인들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5일째인 6월10일 오전 11시쯤 경찰은 공개 수배로 전환하고 정씨의 사진과 인상착의를 언론에 공개했다. 정씨가 머무를 만한 곳을 저인망식으로 좁혀 들어갔다.

그의 가족들이 “선산에 갔을지 모른다”는 말을 하자 순천시 석현동에 있는 문중 제각 인근을 수색해 들어갔다. 정씨는 그곳에 있었다. 이날 오후 2시30분쯤 제각 인근 소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정씨가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유서도 발견됐다. 대형 할인점 쇼핑백에 남긴 유서에는 범행에 나서게 된 경위 등을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주범이 아니다. 억울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또 “자수하고 싶지만 전과 때문에 자수를 할 수 없어 죽음으로 죗값을 받겠다”고 적었다.

정씨의 손에는 흉기 등으로 자해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있었다. 경찰은 공개 수배된 정씨가 심리적인 부담 등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범인 정유성은 모든 것은 숨진 정영삼이 했고, 자신은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죽은 자는 유서를 통해 진범이 아니라고 하고, 살아남은 자는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죽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경찰도 피해자인 ㅇ씨와 붙잡힌 정씨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어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한계를 맞은 상태다.

그런데 이 사건은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곳곳에 의문투성이다. 마치 코믹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어설프다. 의문점은 7가지로 요약된다.

코믹영화 한 장면 보는 듯

첫째, 범죄자들은 누구나 ‘완전 범죄’를 꿈꾼다. 그래서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안경이나 모자를 쓴다. 범행 현장에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에는 장갑을 낀다. 그런데 공범인 두 명의 정씨는 범행 대상으로 평소에 잘 아는 사람을 골랐다. 만약 범행에 성공하더라도 신분이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또 ㅇ씨를 차량으로 유인하기 위해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둘째, 공범들이 만난 과정도 석연치 않다. 숨진 정씨와 구속된 정씨는 원래 일면식도 없었다. 그러다 범행 3일 전에 인터넷으로 알게 돼 범행에 나섰다. 숨진 정씨가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를 납치하기 위해 일면식도 없던 정씨를 끌어들인 것도 이상하거니와 구속된 정씨가 선뜻 범행에 동참한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셋째, 피해자 ㅇ씨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을 때 휴대전화를 압수하지 않은 것 또한 어설프다. 화장실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면 열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범인들은 ㅇ씨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휴대전화를 가져가게 했다. 더 이상한 것은 화장실에 들어간 ㅇ씨다. 자신이 직접 112에 신고해서 경찰을 부르면 될 텐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넷째, 범인들의 범행 동기와 목적이 확실하지 않다. ㅇ씨에 따르면 범인들은 그녀를 납치한 뒤 원룸 현관문의 키 번호를 물어봤다. 원룸 안에 있던 금고를 부수고 현금을 꺼내 간 것을 보면 처음부터 ㅇ씨 집에 현금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굳이 안면이 있는 ㅇ씨를 납치했다. 여기서 더 이해되지 않는 점은, 만약 ㅇ씨의 현금을 노렸다면 렌터카를 빌려서까지 납치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집 밖으로 불러내거나 집으로 찾아가 흉기로 위협하고 돈을 탈취했다면 오히려 범행이 더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ㅇ씨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친 것은 정유성 혼자였다.

다섯째, 대학생인 ㅇ씨는 2000만원이 넘는 돈을 은행이 아닌 집에 금고를 두고 보관하고 있었다. 신용불량자도 아닌데 굳이 그랬던 이유가 확실치 않다. ㅇ씨는 돈의 출처에 대해 “5년간 주유소와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이라고 밝혔다.

여섯째, 정유성은 자신이 ㅇ씨 집에서 훔친 2300여 만원을 혼자 차지했다. 정씨는 범행 후 광주로 이동해 백화점에서 500만원 상당의 명품 가방과 시계 등을 구입한 뒤 전주로 가서 전주터미널 물품보관함에 남은 돈 1900만원과 구입 물품 등을 보관해뒀다. 처음부터 ㅇ씨 돈을 훔칠 목적으로 납치했다면 돈을 함께 나눴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곱째, 공범인 정영삼의 자살이다. 그는 유서에서 “전과 때문에 고민하다 자살했다”고 하면서도 “주범은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씨는 2007년 미성년자 약취 등 3건의 성 관련 전과가 있다. 이런 것을 봐서는 ‘전과’가 자살할 정도로 심리적인 압박을 주었다고 보기 힘들다. 대신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의문점은 공범인 정영삼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의혹으로만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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