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놈은 질긴 놈이 잡는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6.1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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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개발·치료는 한계…바이러스로 바이러스 제압 연구

천연두만큼 인간을 괴롭혔던 바이러스도 드물다. 기원전부터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 이 바이러스는 1950년 인도에서만 100만명을 숨지게 했고, 1967년에는 10억명을 감염시켰다. 치사율이 50%에 육박하는 천연두는 인류가 퇴치해야 할 바이러스 1순위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67년 세계적인 천연두 제거 운동을 폈다. 10년 후인 1977년 소말리아 환자를 마지막으로 천연두는 자취를 감췄다. WHO는 1980년 천연두 바이러스가 지구상에서 사라졌음을 선언했다. 총 5억명의 목숨을 빼앗은 천연두는 인류가 정복한 유일한 바이러스로 기록됐다.

1796년 영국 의사(에드워드 제너)가 우두 바이러스를 접종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라틴어로 우두라는 뜻의 백신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를 계기로 다른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연구가 줄을 이었다. 전체 인구의 20%에만 항체가 있어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김윤근 포스텍 생명과학 교수는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바이러스는 계속 존재할 것이므로 바이러스와 공존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며 백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했던 2009년 서울의 초등학생들이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팀 자료
노력의 결과로 홍역과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인도·파키스탄 등 일부 지역에만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남아 있는데, 그곳 사람들이 관습과 미신 등의 이유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류가 백신으로 막고 있는 바이러스는 홍역, 볼거리, 풍진, B형 간염, 소아마비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백신에 대해 바이러스가 내성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연두는 어떻게 정복한 것일까. 백신으로 천연두를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은 천연두가 다른 바이러스와 다른 두 가지 특징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람만을 숙주로 삼는다는 점이다. 다른 동물로 옮지 않으므로 사람만 조심하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또 이 바이러스는 백신에 내성을 띠지 않았다.

천연두(왼쪽 사진)는 인류가 백신으로 정복한 유일한 바이러스다. ⓒ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
바이러스를 난치병 치료에 이용

백신의 한계를 느낀 인간은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로 암을 치료하는 연구다. 암은 우리 몸의 세포가 변한 것이어서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암세포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면역세포가 공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내년에 최종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2~3년 후 암 치료에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황태호 양산부산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암 환자가 독감에 걸려 열병을 앓고 났더니 암이 사라진 사례는 100년 전부터 있었다”며 “식중독균으로 보톡스를 개발한 것처럼 독(바이러스)으로 약을 만드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우리 몸에는 112와 같은 기능이 있어서 세포에 이물질이 붙으면 인터페론이라는 물질을 분비해서 면역세포를 불러 모아 이물질을 퇴치한다. 그런데 C형 간염 바이러스(HCV)는 세포가 인터페론을 분비하는 단백질을 파괴한 후 세포를 자기 집처럼 이용한다. 도둑이 가정집에 침입하면서 경비망을 미리 끊어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 인간은 이를 역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도둑이 경비망을 파괴할수록 더 많은 사이렌이 울리도록 한 것이다. 예컨대 C형 간염 바이러스가 특정 단백질을 자극할수록 더 많은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도록 만드는 식이다.

문제는 그 단백질을 간세포로 운반하는 일인데, 바이러스가 해법으로 떠올랐다.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C형 간염 바이러스 껍데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주철현 서울아산병원 미생물학과 교수는 “간세포를 귀신처럼 찾아가는 C형 간염 바이러스의 특성을 이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바이러스 껍데기에 인간이 만든 단백질을 집어넣고 몸에 주입하면 그 바이러스는 간세포를 정확히 찾아간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 “정부 지원 있어야”

당뇨병에도 비슷한 방법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인슐린을 만드는 유전자를 바이러스 껍데기에 담아 췌장 세포로 보내서 당뇨병을 치료하는 식이다. 독감 바이러스도 비슷한 원리로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바이러스 질병을 바이러스로 치료하는 시대다. 그러나 몇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여러 기술을 잘 융합해야 한다. 황태호 양산부산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바이러스로 다른 병을 치료하는 기술은 의사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공계의 연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연구 걸림돌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주철현 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는 “C형 간염은 다른 동물에게 전염되지 않아서 사람의 간염 세포를 이식한 아바타 쥐를 실험에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 쥐 한 마리가 2000만원”이라며 “20마리만 사용한다고 해도 수억 원이 필요한데, 제약회사로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지 연구가 더디다”고 밝혔다.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바이러스 치료제는 연구하면 결과가 나온다”면서 “그러나 기초 연구에, 그것도 수명이 짧은 항바이러스제 개발에 대한 연구비로 수조 원씩 지원할 기업은 없다”며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이상민
인류는 바이러스를 잡는 데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론일 뿐 실제로 사용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백순영 가톨릭의대 미생물학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백신으로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바이러스 전염병을 막을 백신은 몇 안 된다. 게다가 백신의 효능이라는 것이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여서 진정한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독감 백신은 한 해 사용하면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겨 다음 해에 또 사용할 수 없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백신으로 많이 없어졌다. 그런데 백신 때문에 소아마비에 걸리는 사례도 있다.

암과 같은 난치병 치료에 바이러스를 이용한 연구는 결실을 보지 않겠나.

나도 20년 전부터 미국에서 그런 연구를 했다. 당시에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면역 촉진 물질을 붙인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에이즈 치료법도 금방 나올 듯했지만, 아직도 내놓을 만한 백신이나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인류가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인가.

분명히 미래에는 바이러스를 이용한 질병 치료제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 즉 수십 년 안에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이다.

주변에서 조심해야 할 바이러스는 무엇인가.

아이는 RS 바이러스, 성인은 A형 간염 바이러스를 경계해야 한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항체를 받아 태어나는데, 점차 항체가 소멸되고 자신이 만든 항체가 생기는 시기가 있다. 즉, 면역이 가장 불안한 때여서 출생 첫해에는 어떤 백신도 접종하지 않는다. 그런 때에 RS 바이러스에 걸리기 쉽고 심하면 폐렴, 기관지염,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바이러스는 5세 이하 영·유아에 옮아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흔한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주입했다가 진짜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병이 더 심해질 수 있어서 백신은 물론 치료제도 없다.

A형 간염은 요즘 거의 걸리지 않는다. 이 말은 성인에게 항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 신종플루 때 손 씻기를 열심히 해서 감염률이 뚝 떨어졌다가 최근 다시 증가세다. 일주일 이상 황달 기를 보이고, 심하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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