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대체재로 떠오른 ‘젊은 도련님’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3.06.1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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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세습 정치인 고이즈미 신지로…‘보수 아이돌’로 인기

아베노믹스의 불안감이 제기되는 요즘에도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기대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6월8~9일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9%를 기록했다.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60%에 가깝다. 한 자릿수 지지율에 그친 야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는 숫자다. 오는 7월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도 이변이 없다면 자민당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는 이유다.

자민당이 선거 압승을 위해 아베 이상으로 기대하는 정치인이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이즈미란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 그 역시 세습 정치인이다. 아버지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관동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에 유학했고 전략문제연구소(CSIS) 비상근 연구원을 거쳐 아버지 고이즈미 전 총리의 비서로 일했다. 아버지가 정계를 은퇴하면서 지역구인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 11구를 물려받았고, 2009년 28세의 젊은 나이로 요코스카 11구에서 57.1%를 득표해 무난히 중의원에 당선됐다.

‘엄친아’ 스타일의 젊은 정치인으로 보수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 ⓒ REUTERS
엘리트에 잘생긴 외모…선거구 지원 요청 쇄도

잘생긴 젊은 의원 고이즈미에게 쏟아지는 인기는 상당하다. 막 당선된 직후인 그해 겨울, 고이즈미는 요코스카에 있는 해상자위대 기지에 함께 갈 방문객 50명을 모집했는데 무려 5200명이 신청했을 정도다. 두 번째 선거가 있었던 지난해 12월16일 그가 얻은 득표율은 79.9%였다. 첫 당선 때보다 20% 이상 득표율을 끌어올렸다. 4대에 걸친 세습 정치 결과이기도 한데 증조부는 체신대신, 할아버지는 방위청장관, 아버지는 전 총리라는 막강한 배경을 지닌 것이 고이즈미다. 세습 정치가 흔한 일본에서도 4세 정치인은 드물다.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루팡도 3세까지다”라며 4대에 걸친 고이즈미가(家)의 세습 정치를 비난했을 정도다.

하지만 국민들은 고이즈미 의원이 달고 있는 ‘세습 정치인’이라는 꼬리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세습 정치인이 많은 일본 정치 풍토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이즈미 자신이 세습에 대한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는 자신의 아버지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예를 들면 말할 때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다. 어려운 말은 사용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전달하고 위인들의 명언을 인용한다. 여기에 깔끔한 외모에서 주는 안정감, ‘괴짜’라고 불린 아버지와 달리 성실하고 차분한 느낌도 넓고 두터운 지지층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일본 국민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엄친아’ 스타일에다 운동까지 좋아하고 잘한다. 고교 야구선수 출신이라는 이력도 대중에게 어필한다. 올해 4월 일본 고교야구 대회에서 한 투수가 772구를 던져 혹사 논란이 일었는데,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자신의 경험을 내세운 고이즈미의 말 한마디는 인기를 끌었다. “고교야구는 일본 야구의 상징이다. 투구 수를 제한하면 명승부는 태어나지 않는다.”

초선 의원 시절, 초반에는 참모들이 실수를 두려워해 가능한 한 그를 매스컴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돌발 인터뷰에도 능수능란하게 대응하면서 우려를 잠재웠다. 요즘에는 자민당 내 중견 정치인들이 일부러 차 한잔하자고 권유하며 그의 재치와 기지를 배울 정도다. ‘고이즈미 신지로’, 그 자체의 브랜드에 대한 주목도는 크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다. 자민당 지지층이 주로 중·장년층과 농촌 지역 거주자라는 점은 매 선거 때마다 한계로 지적됐다. 그런데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고이즈미라는 정치 아이콘의 존재, 그 자체가 당내에서 가치를 치솟게 하고 있다.

이런 잠재력 때문에 자민당은 32세로 젊은 나이였던 고이즈미에게 당 청년국장 자리를 줬다. 청년국장은 주요 직책 중 하나로,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 고이즈미를 선두에 세운 셈이다.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 때 그는 아베 못지않은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전국에서 지원 유세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당내에 기라성 같은 원로 정치인이 즐비한데도 정치를 시작한 지 3년도 되지 않은 고이즈미에게 유세를 부탁하는 후보들이 줄을 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음 달에 있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5월만 하더라도 아키다 현, 야마가타 현, 이와테 현 등을 돌며 젊은 후보들 지원에 나섰다. 아베와 함께 자민당 내 지원 유세 선호도로는 양대 산맥을 이루는 정치인이 됐다.

“하시모토가 빠진 정치 뉴스는 상상할 수 없다”던 시대는 지났다. 하시모토가 설화로 설 자리를 잃으면서 일본 미디어에서는 고이즈미를 하시모토의 대체재로 부각시키고 있다. 벌써부터 총리감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정치는 강한 보수를 지향하고 있다. 아버지 역시 강한 보수였기에 그를 부정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는 세습 정치인으로서 고이즈미의 약점이다. 아베와 마찬가지로 헌법 96조 개정에 적극적인데 외교안보 문제에서는 큰 틀로 보아 아베와 한 배를 타고 있다. 하시모토의 위안부 관련 망언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고이즈미는 “역사라고 하는 것은 정치인들만이 논의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지식인이나 역사가들이 철저하게 연구해서 많은 사람과 논의해서 판단해야 할 문제다. 그런 사람들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교묘하게 피해가는 화술조차 아버지와 닮았다.

정책 능력보다 당장 닥친 문제는 정치력에 대한 검증이다. 6월23일에는 고이즈미의 지역구인 요코스카의 시장 선거가 열린다. 재선인 젊은 시장과 60대의 전 부시장이 경쟁하고 있다. 현 시장 요시다 요우토는 2009년 시장 선거 때 아버지 고이즈미 전 총리가 공천한 당시의 시장을 이긴 젊은 정치인이다. 고이즈미는 60대의 전 부시장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중의원 선거 때 전국을 돌며 성과를 올렸지만 막상 자신의 지역구에서 영향력이 아직 확고하지 못하다는 시선이 있어 더욱 신경 쓰이는 선거다.

세습 도련님과 관련한 ‘인성론’도 발목을 잡고 있다. 2009년 첫 중의원 선거 때 민주당의 상대 후보가 13번에 걸쳐 악수를 요청했지만 이를 의도적으로 뿌리치는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 ‘속 좁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권력의 대물림, 그래도 마이웨이를 달리려면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많은 고이즈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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