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뒷마당에 돈 보따리 풀다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6.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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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시장 개척 나선 중국, 유럽 제치고 최대 투자국 부상

#1. 5월20일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시에서 열린 반구(半球)회의. 매년 미국 라틴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이 회의는 벌써 34회째에 이른다. 올해는 파나마 운하 확장 관련 무역 동향과 신재생 에너지 및 IT 산업 성장 전망, 스페인어 엔터테인먼트·콘텐츠 산업 전망 등을 주제로 중남미 22개 국가 주요 인사와 바이어들이 참가했다. 이번에는 예년과 달리 미국측의 관심이 높았다. 릭 스코트 플로리다 주지사를 비롯해 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2. 6월13일 니카라과 의회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 건설 및 운영권을 중국 컨소시엄에 부여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야당 의원들은 성급하고 불투명한 결정이라며 반대했지만,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이끄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찬성표를 막지 못했다. 제2의 파나마 운하로 불리는 ‘니카라과 운하’는 담수호인 니카라과 호를 가로질러 깊이 22m, 폭 20m, 길이 286㎞ 규모로 건설된다. 완공되면 25만t 선박이 출입할 수 있어, 현재 확장 공사 중인 파나마 운하의 선박 운행 톤수보다 2배가 많게 된다. 니카라과 정부는 운하 건설 후 10만개의 일자리, 막대한 통행료 수입을 기대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도 중국 투자액 정확히 몰라

최근 중남미를 무대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의 해외 시장 공략 수준을 넘어서 양국 정부의 자존심을 건 전면전 양상이다. 시동을 먼저 건 쪽은 미국이었다. 5월2~4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멕시코와 코스타리카를 방문해 통상 확대 등을 논의했다. 같은 달 26일부터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콜롬비아, 트리니다드 토바고, 브라질을 찾았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미국 방문에 앞서 5월31일부터 6월6일까지 트리니다드 토바고, 코스타리카, 멕시코를 순방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는 카리브 지역 8개국 정상을 불러들여 에너지 및 통상·투자 협력 확대를 약속했다. 중국 국가주석이 멕시코를 찾은 것은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 방문 이후 8년만이다.

미·중 양국이 중남미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석유·천연가스·광물 등 막대한 자원을 지닌 데다 세계 주요 소비 시장의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침체 국면에 들어섰지만 중남미는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중남미의 경제 성장률은 2010년 6.2%, 2011년 4.5%, 2012년 3.4%를 기록했다. 만성적이던 인플레이션도 안정됐다. 1990년 무려 478.2%에 달했던 물가 상승률은 1995년 37.8%, 2000년 8.4%, 2005년 6.3%, 2011년 6.6%로 연착륙했다. 꾸준한 경제 발전으로 거대한 소비층이 등장하면서 시장 확대를 견인하고 있다. 2010년 중남미 전체 인구 5억4586만명 중 30%가 중산층이다. 지난해 브라질은 660억 달러의 규모의 경기 부양 패키지를, 칠레는 140억 달러의 경제 안정화 펀드를 마련해 인프라 건설에 쏟아붓고 있다.

기회의 땅 중남미를 잡기 위해 전 세계의 투자가 줄을 잇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외국 투자자의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중남미 투자의 중심에는 유럽이 있었다. 지금도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 등 주요국 채권의 유럽계 자금 비중은 41~59%에 달한다. 하지만 유럽 재정 위기로 투자자가 중국으로 바뀌고 있다.

중남미 최대 외국인 투자(FDI) 유치국은 브라질이다.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 등 글로벌 스포츠 제전을 앞둔 브라질은 교통·통신·물류 등 다수의 인프라 확충을 위해 외국인 투자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브라질은 653억 달러의 FDI를 유치해 미국, 중국, 홍콩에 이어 세계 4위의 FDI 유치국으로 등극했다. 이런 브라질을 통해 중국의 약진을 엿볼 수 있다. 2005~12년 브라질이 유치한 M&A 투자는 677건, 1883억 달러에 달한다. 그중 중국의 투자 비중은 2008년까지 0.1%에 불과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투자가 급증하더니 2012년까지 그 비중이 16%로 대폭 상승했다. 2009~12년 중국은 16건, 215억 달러를 투자해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117건, 208억 달러를 투자했다.

중국이 투자 건수는 적지만 투자액이 많은 이유는 전체 투자의 87%가 석유·천연가스·광물 등 자원 개발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인 액수는 더 많다. 중국의 투자 출처는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인 경우가 많다. 조세 회피를 통한 우회 투자로 브라질 정부조차 중국의 정확한 투자액을 알지 못한다. M&A를 통하면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현지 기업을 인수·합병해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현지 시장 진출에도 용이하다.

중국이 공을 들이는 곳은 브라질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남미 4개국을 순방한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는 중국-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자유무역지대와 중국-중남미 협력 포럼 창설을 제의했다. 중국은 2005년 칠레를 시작으로 페루, 코스타리카와 FTA를 체결했다. 예외가 있다면 코스타리카인데, 당초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 코스타리카는 2007년 중미 국가 중 처음으로 타이완과 단교해 중국에 외교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2010년에는 FTA도 체결해 대표적인 ‘친중(親中)’ 국가로 변신했다. 이에 화답해 중국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억5900만 달러를 코스타리카에 원조했다. 같은 기간 미국 원조액(6970만 달러)보다 2배나 많았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방문에서 20억 달러 규모의 기간 시설 개선 사업 지원도 약속했다.

에콰도르 “국산품 설 자리 없어졌다”

한동안 중국이 공을 들인 지역은 아프리카였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이 투자·차관 등 지원성 협력 자금으로 뿌린 돈은 750억 달러에 달한다. 매년 중국 최고 지도자가 아프리카를 방문했는데 시 주석 역시 취임 후 러시아에 이어 아프리카 3개국을 찾았다. 탄자니아를 방문했을 때는 100억 달러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라는 선물 보따리도 풀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지만, 중남미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몸값을 극대화하며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본래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었지만 중남미 주요국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선 후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한동안 중남미를 소홀히 하던 미국은 오바마 정부 2기를 맞아 전통적인 우호 관계 복원에 힘쓰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브라질은 50억 달러 규모의 차세대 전투기(FX-2) 구매 기종으로 미국 보잉의 FA-18 슈퍼 호넷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유럽연합에 이어 미국과의 FTA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현지 진출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문제가 되었던 자원 약탈식 신식민주의의 재판이 중남미에서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가디언’은 “중국의 투자가 지하자원에 치우치면서 불균형적이고 무분별한 채굴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베르토 아코스타 에콰도르 에너지장관은 “중국은 자원을 사가면서 소비재를 사도록 강요하고 있다”며 “에콰도르에서 점점 국산품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에콰도르는 중국에게 받은 170억 달러의 차관을 2019년까지 석유로 상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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