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은 ‘빛 좋은 개살구’
  • 원종원│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 승인 2013.06.1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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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넘쳐나지만 대형 해외 뮤지컬에 밀려 소극장 전전

<사비타>.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살롱 뮤지컬’을 표방하면서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대표 주자로 활약했던 이 작품이 초연된 지 18년 만에 새로운 시즌의 막을 올린다.

형제의 갈등과 사랑스런 여인의 등장이라는 3인극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피아노가 있다는 것도 전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새로운 인물과의 갈등이 다뤄지는 등 내용적 측면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드라마의 시즌제처럼 공연도 제목은 같지만 버전을 달리하는 독특한 시도인 셈이다. 흔치 않은 경우이지만 <사비타>가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으며 우리 창작 뮤지컬로서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사례여서 흥미롭다. 창작 뮤지컬로서는 일종의 개가라 부를 만하다.

6월14일 서울 혜화동 SH아트홀에서 새로운 내용과 배우들로 채운 뮤지컬 가 막을 올렸다. ⓒ 시사저널 이상민
한 해 100여 편 탄생하는 창작 뮤지컬의 비애

연간 제작되는 뮤지컬 편수는 얼마나 될까. 경제 위기가 있었던 수년 전의 경우는 예외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대략 150여 편의 작품이 막을 올리고 있다. 그나마 어린이 뮤지컬이나 교육용 콘텐츠는 제외한 것으로, 한 달에 족히 10여 편 넘게 새로운 무대가 등장한다는 의미다. 아직 뮤지컬이 낯선 사람이라면 가히 경악할 만한 수치다.

창작물과 수입 콘텐츠의 비율을 보면 더 경이롭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은 외국에서 수입해 제작되는 해외 뮤지컬과 순수 우리 자본과 문화, 언어 그리고 인력으로 꾸며지는 창작 뮤지컬로 나뉜다.

해외 뮤지컬은 다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우리말로 번안해 무대를 꾸미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배우와 인력, 무대와 기술이 모두 내한해 일정 기간 공연하는 투어 뮤지컬로 구분된다(간혹 직수입 뮤지컬을 오리지널 뮤지컬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는 잘못된 용어다. 일반적으로 공연에서 ‘오리지널’이란 용어는 초연 배우들이 꾸미는 무대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투어(tour) 프로덕션’이라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뮤지컬 하면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시카고> 같은 외국의 화려한 작품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1년 동안 제작되는 해외 뮤지컬 제작 편수는 많아야 30~40편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연간 제작 편수에서 이들을 제외한 100여 편이 모두 창작 뮤지컬이라는 의미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한 초대형 뮤지컬 시장이다.

그러나 껍질을 조금만 더 벗겨보면, 현실에서 꼭 장밋빛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연간 제작되는 창작 뮤지컬 수는 해외 뮤지컬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정작 돈벌이가 되고 대중이 운집하는 대형 공연장은 해외 뮤지컬들에 점령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주요 원인 중에는 시장의 환경도 한몫한다. 대부분 복합공연장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연 시장에서 뮤지컬은 길어야 두세 달 공연될 뿐이다. 이런 대관 여건은 이미 큰 시장에서 가능성을 검증받아 브랜드 파워를 키운 해외 뮤지컬의 마케팅에나 적합할 뿐, 작품을 만들고 브랜드 가치도 키워야 하는 창작 뮤지컬에게는 언감생심 이윤을 창출하기 힘든 환경에 불과하다.

자연히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운 대형 공연장에선 해외에서 검증받은 유명 수입 뮤지컬이, 적은 비용에 경제적 부담은 덜하지만 매출도 제한적인 소극장에선 창작 뮤지컬이 주를 이루는 편향된 시장 환경이 형성될 뿐이다.

이쯤 되면 100편이 넘는 창작 뮤지컬의 등장이 사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씁쓰름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영세한 구멍가게가 넘쳐나는 시장 환경 안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창작 뮤지컬이 잉태되길 바라는 것은 사실 도둑 심보다. 매년 20%에 가깝게 매출이 늘어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외국의 저작권자’들이 챙겨가는 악순환이 이어질 뿐이다.

관건은 어떻게 창작 뮤지컬이 경쟁력을 갖출 것인가 여부다. 예술과 문화 산업에 관해 좀 더 치밀하고 치열한 고민이 따라야 한다. 우선 시장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창작자를 보호하고 육성하며 그들이 ‘물건’을 만들어내기에 적합한 분위기와 제도를 고안해내야 한다.

단계별 시장의 조성과 운영은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다. 대형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제작자들이 그들의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대규모 공연장에 올리기에 앞서 검증받고 테스트할 수 있는 중간 단계의 과정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

1995년 첫선을 보인 . 국내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열고, 남경주·남경읍·최정원 등 스타를 배출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창작자 보호하고 육성할 대책 마련해야

뮤지컬 공연 기획자가 주택 담보에 ‘모 아니면 도’ 형식의 도박판을 벌리도록 방치해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험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창작 뮤지컬의 흥행과 대중성 확보는 단계별 시장에서의 실험에 따른 당연한 결과가 돼야 한다.

교육도 빠질 수 없다. 지금의 단순한 배우 양성만으로는 양질의 콘텐츠를 잉태해내기 힘들다. 100편 넘는 창작 뮤지컬이 등장한다고 하지만, 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내용과 형식 그리고 다양한 인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차라리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주목할 만한 시도들은 이미 시작됐다. 예를 들어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에서는 매년 여름 창작 뮤지컬을 선발해 대구에서 트라이아웃을 꾸밀 수 있도록 대관료·제작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창작 팩토리 사업도 마찬가지다. 독회에서 트라이아웃, 초연, 재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단계에서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치열한 선발과 심사 과정을 통해 진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등장한 창작 뮤지컬들이 바로 지난해 국회 대상을 받는 등 큰 인기를 모았던 <여신님이 보고 계셔> <날아라 박씨> <식구를 찾아서> 같은 작품들이다. 아직 대형 창작 뮤지컬의 등장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앞으로 경험과 연륜이 더해지면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한 일이 되리라 기대된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이 대중문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15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우리 뮤지컬 시장이 본격적인 규모의 경제 시장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에 불과하다. 아직은 성장통도 겪고 있지만 그래도 남다른 시장의 외연적 확장은 기념비적 성과라 할 만하다. 기왕이면 이제 우리 콘텐츠가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사례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창작 뮤지컬 관계자들의 노력과 고민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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