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한국전쟁’ 역사 인식 문제없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6.2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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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설문조사, ‘6·25는 북한이 남한 침략’ 96%…박 대통령 ‘북침 고교생 69% 충격’과 달라

박근혜 대통령이 6월1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청소년의 역사 인식과 관련해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밝혔다.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전쟁(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응답했다”는 한 언론사의 보도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역사는 민족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며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가져야 할 기본 가치와 애국심을 흔들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분들의 희생을 왜곡시키는 것으로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을 통해 외부로 공개되는 모두 발언 도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단순히 회의에 참석한 청와대 사람들만 들으라고 한 말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 청소년을 꾸짖으려는 의도로도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우리 교육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며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새 정부에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박 대통령이 이날 작심하듯 한 말이 교육 현장을 향한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6월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왜곡 문제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사저널>은 궁금했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 청소년은 한국전쟁에 대해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일까. 고교생 10명 중 7명이 ‘북침(남한이 북한을 침략)’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6월19일과 20일 이틀 동안 수도권 중학교 두 곳과 고등학교 두 곳에서 설문지를 돌려 학생이 질문에 답변을 기재하도록 했다. 설문조사는 사전에 예고 없이 실시했다. 한 중학교의 경우 수업 시간에 박 대통령의 발언이 언급된 반 학생들은 설문 대상에서 제외했다.

 

‘남한이 북한 침략’은 2.5%에 불과

중학생 188명과 고등학생 207명, 합해서 395명의 청소년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질문 수는 모두 10개였다. 이 중에서 가장 궁금한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 인식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전쟁은 북한에서 남한을 침략한 것일까, 남한에서 북한을 침략한 것일까’라는 물음에 96%의 학생이 ‘북한에서 남한을 침략한 것’이라고 응답했다. ‘남한에서 북한을 침략한 것’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2.5%에 불과했다. 고등학생(97.1%)은 물론 중학생(94.7%)도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조사 결과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박 대통령의 ‘6·25 북침 69% 충격’ 발언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자 교원단체를 중심으로 ‘북침’이라는 단어를 ‘북한의 침략’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진보 성향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물론 보수 성향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서도 “오인할 개연성이 크다”며 “확대 해석하거나 침소봉대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해당 조사 결과를 보도한 서울신문 1면에도 “학생들은 북침과 남침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헷갈리거나 전쟁의 발발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돼 있다.

<시사저널>이 남침과 북침의 뜻을 풀어서 질문한 이유도 용어의 혼돈을 없애서 학생들의 역사 인식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박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단순히 해당 기사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발생한 일종의 해프닝으로 정리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역사 교육에 대한 왜곡’이 아닌 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교육 현장에 대한 왜곡’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문제와 맞물려 해석될 경우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갈수록 뒷전으로 밀려나는 역사 교육의 현주소를 문제 삼는 것이라면,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 인식만 도마에 올리는 것은 특별한 의도가 없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번 <시사저널>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알 수 있다. 10문항 중에서 3문항이 주관식인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대한 질문이다. 현재 역사 교육이 과거처럼 사건의 연도를 암기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답률이 떨어지는 부분은 일정 부분 감안해야 한다는 게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설명이다.

© 연합뉴스
그럼에도 한국전쟁의 경우 ‘1950년’이라는 정답을 적은 학생이 54.9%였다. 다음으로 3·1운동의 정답인 ‘1919년’을 적은 학생이 29.9%였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우 ‘1980년’이라고 정답을 적은 학생은 14.9%밖에 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인데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정답률에서 한국전쟁 발발 연도에 관한 것보다 3.7배나 낮은 것이다. 물론 역사적 중요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세 사건 모두 후세들이 잊어서는 안 될 역사임에 분명하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교육이 아직 미흡하다는 점은 ‘일반 시민들이 일으킨 민주화운동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잘 나타났다. 정답인 ‘5·16’이 46.6%로 가장 많기는 했지만, ‘6·10’(28.1%), ‘5·18’(11.6%), ‘4·19’(7.6%)라고 답한 학생도 적지 않았다. 중학생의 경우 ‘6·10’이 30.8%로 정답인 ‘5·16’(27.7%)보다 오히려 더 높게 나타났다. ‘5·18’(18.6%)과 ‘4·19’(11.7%)라고 응답한 학생도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자신이 한국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모른다’(50.9%)와 ‘전혀 모른다’(6.8%)는 답변이 합해서 57.7%로 ‘안다’(35.7%)와 ‘잘 안다’(3.8%)는 답변을 합한 39.5%보다 18.2%포인트나 높았다.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을 묻는 질문에는 ‘관심 있다’(45.3%)와 ‘매우 관심 있다’(9.1%)는 답변이 합해서 54.4%로 ‘관심 없다’(32.7%)와 ‘전혀 관심 없다’(10.1%)는 답변을 더한 42.8%보다 11.6%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국방부 별관 외벽에 정전 협정 60주년 기념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역사에 관심 있다’ 54.4%

‘한국 역사에 대한 학교 수업이 더 필요하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필요하다’(47.4%)와 ‘매우 필요하다’(26.8%)는 답변이 합해서 74.2%로 ‘필요 없다’(16.5%)와 ‘전혀 필요 없다’(6.3%)는 답변을 합한 22.8%보다 3.3배나 많았다. 중학생의 경우 82.6% 대 16.4%로 그 격차가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전반적으로 한국 역사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관심은 갖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학교 수업이 더 필요하다는 학생들의 요구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교육 현장은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중·고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집중이수제에 대한 문제 제기부터 나온다. 한 과목을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1년에 몰아서 배우는 제도다. 동시에 공부할 과목의 수를 줄여서 학업 부담도 줄어들게 한다는 취지인데, 입시 주요 과목인 국어·영어·수학을 제외한 과목의 경우 몰아치기를 하기 때문에 학습 능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이 지난 5월30일 광주고등학교에서 5·18 계기 수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사가 대표적인 과목 중 하나로 꼽힌다. 설문조사를 한 한 중학교의 경우 1학년은 역사를 수업하지 않아 설문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나마 2학년도 수업을 받은 지 몇 달 되지 않아 초등학교 6학년 수준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한다. 공부의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배운 내용도 자신의 지식으로 습득하기가 쉽지 않다.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역사의 경우 근현대사 부분이 축소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까지 선택 과목이던 근현대사는 올해부터 과목 자체가 없어졌다. 한국사 교과 과정 맨 마지막에 근현대사 부문이 있기는 하지만 양도 얼마 되지 않고 끝에 있다 보니 빼먹기 십상이라고 한다. 교과서와 무관하게 교사가 재량껏 수업하면 되는데, 이를 색안경 끼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역사 교육 왜곡’ 발언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역사 교육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과 무관하게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뿌리’에 대해 너무 모른다며 혀를 차는 어른들이 적지 않다. ‘친일 매국노 이완용을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다’느니 ‘대통령 이름도 잘 모르는 애들이 많다’느니 하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정말 그럴까. 다른 질문과 비교해 난이도를 상당 부분 낮췄다. 그런 만큼 성실한 답변이 요구되지만 제대로 답변하지 않은 학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가 아닌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윤봉길 의사와 함께 이완용을 보기에 포함시켰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체 학생 중 79.5%가 ‘이완용’이라고 정답을 맞혔다. 고등학생(87.9%)과 중학생(70.2%)의 격차가 예상보다 컸다. 9.9% 응답률을 보인 ‘신채호’라는 답변이 고등학생(6.8%)에 비해 중학생(13.3%)에게서 2배 가까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안중근’과 ‘윤봉길’이라는 답변은 각각 2.3%, ‘안창호’라는 답변은 1.7%였다.

‘역대 대통령이 아닌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에는 김대중·김영삼·노태우·최규하 전 대통령과 함께 김구 선생을 보기로 제시했다. 전체 학생의 91.6%가 ‘김구’라고 응답했다. 고등학생(93.7%)은 물론 중학생(93.7%)도 대부분 정답을 놓치지 않았다. 중학생의 경우 오답이 한두 표 차이로 고르게 분포된 반면, 고등학생의 경우 ‘최규하’(4.8%)가 나머지 답변으로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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