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성추행 사태’ 흐지부지 끝난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6.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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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핵심 인사 “미 검찰, 윤창중 기소 중지할 것” 밝혀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태’가 터진 지 50여 일이 경과했다. 박근혜 대통령 방미 기간인 5월7일(미국 현지 시각) 주미 한국문화원 인턴 여직원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등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 직후 곧바로 귀국한 그는 5월11일 기자회견에서 성추행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후 지금껏 경기도 김포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윤창중 미스터리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윤 전 대변인의 일방적인 주장을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 여성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전면에 나서는 것도 아니다. 미국 수사 당국의 행보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의 수사 과정은 이렇다. 사건이 발생한 워싱턴D.C.의 경찰이 수사를 마무리하면 연방검찰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한다. 연방검찰이 ‘기소 동의’나 ‘기각’ ‘기소 중지’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면, 경찰은 수사를 계속하거나 중지하게 된다.

윤창중 전 청와대 전 대변인이 5월11일 성추행 해명 기자회견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해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청와대, 미 검찰의 기소 중지 흐름 인지”

그런데 최근 기자가 만난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윤창중 사태는 미국 검찰이 기소 중지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인사는 “미국 수사 당국은 이번 사태를 ‘성추행 경범죄’로 보고 있으며, 윤 전 대변인이 미국에 들어와 조사받지 않는다면 기소 중지 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미국 수사 당국의 기소 중지 흐름을 청와대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소 중지는 검사가 수사를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처분이다. 범죄 혐의가 충분하더라도 피의자 등의 소재가 불분명해서 수사를 종결지을 수 없을 경우 기소 중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수사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 등의 소재가 파악되면 언제든 수사를 재개할 수 있다.

미국 수사 당국 입장에서는 윤 전 대변인이 사건 직후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소를 중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추행 경범죄’는 범죄인 인도 조약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윤 전 대변인이 자진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조사받지 않는다면 수사를 재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서울중앙지검은 6월13일 통합진보당·전국여성연대 등 1000명이 윤 전 대변인을 고발한 사건을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성폭력범죄특례법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및 허위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다. 검찰 관계자는 “성추행 혐의는 친고죄이며, 명예훼손 혐의는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죄)인데 둘 다 피해자의 의사 확인이 안 된 상태”라고 밝혔다. 따라서 당장 수사를 진행하기보다는 미국의 수사 과정을 관망한다는 입장이다.

“피해 여성, 윤창중 처벌 원치 않는다”

피해자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서 수사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검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 수사 당국이 우리 경찰이나 검찰에 조사를 의뢰하면 수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이 우리 수사기관에 출석하지 않아도 특별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윤 전 대변인 의지와 선택에 달렸다는 얘기다.

성추행 피해자의 심경도 변했다는 전언이다. 사건 직후 주미 한국문화원의 또 다른 여직원과 함께 워싱턴D.C. 경찰에 전화로 신고했던 피해 여성은 우리 언론 등과 일절 접촉하지 않고 있다. 미국 경찰 조사에만 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여권의 핵심 인사는 “피해 여성이 미국 수사 당국에 ‘사건이 확대되지 않게 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며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심경이 단순히 시간이 흐르면서 누그러진 것인지, 다른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처벌을 원치 않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소 중지를 내린다는 미국 검찰의 내부 방침과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의 심경 변화로 이래저래 성추행 사태는 흐지부지되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윤창중 사태가 터진 지 일주일 후인 5월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윤창중 사태’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면서 “이 문제는 국민과 나라에 중대한 과오를 범한 일로 어떠한 사유와 진술에 관계없이 한 점 의혹도 없이 철저히 사실관계가 밝혀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 점’ 의혹은커녕 ‘전체’ 의혹이 그대로 묻혀버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곽상도 민정수석. ⓒ 연합뉴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성추행 사태 직후 곧바로 귀국한 윤창중 전 대변인을 상대로 직접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5월11일 윤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통해 성추행 혐의를 전면 부인하자,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이 민정수석실에서 조사받았던 내용 일부를 이례적으로 공개하면서 그의 주장을 반박했다.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다음 날(12일)에는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윤창중 사태 해결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정수석실은 윤 전 대변인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했던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는데, 그 결과도 공개하려 했다. 그러면서 “방미 기간 수행한 비서들 중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강경 기류가 민정수석실 내에서 조성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허태열 비서실장이 제동을 걸었다. “수행 비서들에 대한 조사 결과까지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 의사를 밝혔던 것. 그러면서 허 실장과 곽상도 민정수석 간에 갈등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허 실장이 민정실의 수행 비서진 조사 결과 공개를 반대한 것은 ‘허태열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6월18일 오후 윤창중씨 부인이 퇴근길에 장을 보고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어디에 있을까. 윤 전 대변인은 5월11일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이후 칩거에 들어갔다. 그 후 40여 일 동안 행방이 묘연하다.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기자는 6월18일과 19일 경기도 김포에 있는 윤 전 대변인 자택(아파트)을 찾아가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이웃 주민들은 윤 전 대변인 집 안에서는 밤에도 불빛이 새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부인과 아들이 드나드는 것으로 봐서는 암막 같은 것이 처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변인의 아파트 안에는 누군가 있었다. 아파트 앞쪽 베란다에는 오전 내내 남성 와이셔츠 한 벌이 걸려 있었는데 점심때쯤 없어졌다. 집 안에 있던 누군가가 거둬 간 것이다. 전기계량기를 살펴봤더니 느리게 돌아가다가 갑자기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확인됐다. 누군가 안에서 물을 쓰는 듯 수도계량기도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누군가 집 안에서 전기와 물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오후 6시쯤 마침내 한 여성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현관 쪽으로 올라왔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봤는지 두 손 가득 찬거리를 들고 있었다. 귀가하는 윤 전 대변인의 부인이었다. 신분을 밝히고 남편의 근황을 묻자 이내 굳은 표정을 하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윤 전 대변인의 집 안에 있느냐’고 묻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돌아섰다. 그러면서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니 비켜달라고 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불안해서 그렇다”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여러 차례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튿날인 6월19일 이른 아침에 다시 윤 전 대변인 집을 찾아갔다. 그의 부인이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하자 “이리로 출근하셨네요”라고 말했다. 명함을 건네자 전날 현관에 두고 간 메모와 명함을 들어 보이며 “여기 있다”고 보여줬다.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윤 전 대변인의 근황과 심경을 물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차를 타고 떠나갔다.

이웃 주민들은 윤 전 대변인의 칩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떳떳하게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 아무개씨는 “왜 조사를 안 받고 저러고 있나. 잘못했으면 처벌받아야지. 다른 고위 공직자도 앞으로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검찰이 좀 세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한 주민은 “한미 양국의 조사가 왜 이리 지지부진한지 모르겠다. 언론도 뜸하게 다룬다. 혹시 위로부터 압력이 있는 것은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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