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눈먼 사학재단이 비리 몸통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6.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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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국제중 교감 자살 뒤에 숨은 세력의 실체

비리는 결국 비극을 낳았다. 입학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영훈국제중의 김 아무개 교감(54)이 6월16일 오후 학교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김 교감은 일요일 오후 학교에 나와 유서를 쓰고 학교 1층 현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목을 맸다.

김 교감은 평생 교직에 몸담았다. 1985년 영훈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교편을 잡은 후 2010년 8월 같은 학교법인 산하 영훈국제중 교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8월 전 영훈국제중 교장이 퇴직한 후 올해 초 현 교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반년 동안 교장 직무대행을 맡았는데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김 교감 등 영훈국제중 교직원들은 2013년도 신입생 모집에 관여하면서 특정 학생을 합격시키기 위해 성적을 조작했다. 비경제적 사회적배려자 전형에서 다른 지원자의 점수를 깎아내려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은 내정자를 합격시켰다. 서울시교육청은 5월에 실시한 종합감사에서 이런 사실을 적발하고 김 교감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 교감이 A4 용지에 남긴 자필 유서에는 ‘학교를 위해 한 일인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 학교를 잘 키워달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김 교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범죄 행위가 완전히 씻기는 것은 아니다. 김 교감이 성적을 조작함으로써 성적이 좋은 학생의 입학이 좌절됐다.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6월18일 서울 강북구 영훈국제중학교 정문에 자살한 김 아무개 교감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시사저널 이상민
공정택 전 교육감이 ‘국제중 설립’ 추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김 교감도 학교 조직의 희생양이다. 사립학교 조직 체계상 교장 직무대행 독단으로 성적을 조작하기는 불가능하다. 김 교감이 주도적으로 ‘성적 조작’이나 ‘입시 부정’을 저질렀다기보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란 뜻이다. 영훈국제중 교사들도 “교장 직무대행이 자기 판단으로 입학 비리를 지시했을 리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교감을 자살로 내몬 사람은 누구일까. 기자는 국제중학교를 추진하고 태동할 때까지의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 국제중이 도입될 당시의 정치·교육 상황도 살펴봤다. 그랬더니 국제중은 태어날 때부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제도였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교육 분야 공약으로 ‘사교육비 반값’을 내세웠다. 그해 11월 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공교육의 질을 높여 사교육을 없앤다는 방안으로 ‘영어 몰입 교육’을 추진했다.

인수위원장으로 발탁된 이경숙 당시 숙명여대 총장은 2008년 1월 새 정부의 영어 교육 방향을 설명하던 중 “내가 미국에서 오렌지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더라. ‘아륀지’라고 하니까 알아듣더라”고 말했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몬다는 논란이 일자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6개월쯤 되던 2008년 8월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있었다. 첫 주민 직선제 교육감 선거였다. 당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국제중학교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출사표를 던졌고 가까스로 당선됐다.

그는 서울 전체 25개 자치구 중에서 8개구에서만 승리했다. 나머지 17개구에서는 상대 후보에게 졌다. 강남권의 몰표가 승리의 주요 요인이다. 낮은 투표율과 낮은 지지율 그리고 보수·상류층 밀집 지역인 강남 지역의 승리는 공 교육감을 반쪽짜리 교육감으로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서울시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자신의 기반이 된 ‘상류층 지지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또 자신의 공약이자 숙원 사업인 ‘국제중학교 설립’은 지지층과도 연결된다.

공 전 교육감은 2005년 관선 교육감 시절에도 서울에 국제중학교를 설립하겠다고 밀어붙이다가 사교육비 증가를 우려한 학부모들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그러다 민선 교육감에 취임한 이후에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공 전 교육감이 취임 후 첫 사업으로 ‘국제중학교 설립’을 발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국제중 설립에 강한 집착을 보이며 ‘올인’하다시피 했다. 당시 교육계 일각에서는 “민선 1기의 성공 모델로 국제중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공 전 교육감은 취임 첫해에 대원중학교와 영훈중학교를 국제중으로 지정하고, 2009년 3월 개교한다고 발표하는 등 속전속결로 국제중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장의 보여주기 식 성과에 치중한 나머지 국민 여론 수렴 없이 졸속으로 밀어붙였다. 전교조 등 교육단체들은 “국제중이 개교하면 사교육 폐단의 확산을 불러온다”며 반대했다. 전교조는 같은 해 8월26일 서울시민 10명 중 6명이 국제중 설립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설문에 응답한 서울시민들은 국제중이 세워지면 ‘초등 단계에서 사교육비 폭등’ ‘입시 과열’ ‘귀족 학교화로 계층 간 위화감 조성’ 등을 우려했다.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 설립 이유로 내세운 ‘국제화를 선도할 인재 양성’ ‘엘리트 양성’ 등의 취지에도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국제중에 진학하겠다는 생각을 밝힌 사람 가운데 44.7%가 강남·서초·송파구에 살고 있는 부유층으로 나타났다.

2009년 3월 서울에서는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 두 곳이 개교했다. 하지만 국제중 전형 방식을 놓고는 ‘코미디’라는 말까지 나왔다. 두 국제중은 1차와 2차 전형을 통과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합격자를 결정하도록 했다. 실력이 아닌 운이 당락을 결정한 셈이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국제중이 ‘로또’라는 말을 듣게 된 이유다.

2009년 공정택 당시 서울시교육감이 법원에서 교육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후 재판정을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와 사전 교감설 증폭

국제중은 이렇게 이명박 정부-공정택 전 교육감을 큰 축으로 해서 ‘상류층’만의 학교로 태어났다. 국제중 설립은 공정택 전 교육감의 단독 작품일까.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와 깊이 맥이 닿아 있다. 공 전 교육감은 2008년 8월25일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교육감에 당선된 후 청와대를 찾아갔는데, 그때 대통령으로부터 “(국제중 설립에) 소신껏 잘하라”는 칭찬까지 받았다고 자랑했다.

공 전 교육감 말대로라면 ‘국제중 설립’은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을 설립하려면 교육과학기술부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 전 교육감은 임기 도중 비리로 구속될 때까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인 ‘자율 경쟁’ 전도사를 자처했다.

공정택 전 교육감이 밀어붙인 국제중은 교육을 위한 학교가 아니었다. 공 전 교육감은 재임 시절 일제고사 부활, 국제중학교 설립, 특목고 육성 등을 통해 사교육을 팽창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교육계와 학부모단체들이 ‘사교육 육성책’이라며 반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사 이익을 본 것은 학원들이다. 새로운 교육 수요가 창출돼 학원들은 환영 일색이었다. 이를 두고 “선거 자금 지원에 대한 보은 정책이 아니냐”는 말이 무성했다. 실제로 2008년 교육감 선거 당시부터 ‘돈’과 관련한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당선된 후에도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다.

결국 공 전 교육감은 ‘부정한 돈’ 때문에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수감 상태에 있다. 그는 교육감 선거 때 총 22억4000만원의 선거 자금을 썼는데 이 중 4억원만 본인이 부담했고, 나머지 18억4000만원은 사설학원과 사학재단, 학교장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즉, 교육감 선거를 학원과 사학재단 도움으로 치른 것이다. 공 전 교육감 재임 시 서울시교육청에는 인사, 공사·납품 등의 비리가 끊이지 않았고, ‘매관매직’ ‘상납’이 관행처럼 이뤄졌다. 측근 인사들도 여기에 줄줄이 연루됐다.

6월10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울 교육단체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국제중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뒷돈 수수-성적 조작 등 입시 비리 만연

공 전 교육감과 영훈국제중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훈학원은 아버지와 아들이 대물림으로 이사장을 맡은 대표적인 족벌 사학이다. 설립자는 김영훈(1985년 작고) 초대 서울시교육감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는 충남 당진군수와 예산군수를 역임한 전력 때문에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196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지금의 영훈학원을 설립했고, 1981년 4월 아들인 김하주 현 영훈학원 이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김 이사장은 2007년 대통령 선거 때는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한 뉴라이트 단체인 선진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했다. 2008년 영훈중학교가 국제중으로 승인받자 정치권과 교육계 일각에서는 “대선 때 공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었다.

영훈학원은 영훈국제중을 돈벌이 사업장으로 전락시켰다. 영훈국제중은 개교 후 서울의 부유층 사이에서는 출세의 보증수표로 통했다. 그렇다 보니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실력이 안 되면 ‘돈’을 써서라도 집어넣으려는 학부모가 많았다. 학교에는 돈을 내겠다는 학부모들이 줄을 섰고, 학교는 입학을 조건으로 뒷돈을 받았다.

또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돈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실력이 안 되는 학생의 성적을 조작하는 부정까지 저질렀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학부모들의 제보를 받아보니 2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발전기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학교만 들어갈 수 있다면 발전기금은 얼마든지 내겠다는 학부모들이 줄을 설 정도라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말했다.

영훈국제중은 그동안 은밀히 돈을 받아왔으나 학부모들의 제보가 잇따르면서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 입학 부정에 가담한 영훈국제중의 교감이 자살한 것이다.

영훈학원(영훈초·영훈국제중)의 입학·편입 비리 등을 수사 중인 서울북부지검은 김하주 이사장이 2007년부터 학부모들에게서 입학·편입 등의 대가로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보고, 그의 금융 거래 내역을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또 2009년 첫 신입생을 받은 영훈국제중 입학 비리뿐 아니라 영훈초교와 관련된 금품 비리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그 밖에 영훈학원 전·현직 관련자 7~8명도 부정 입학이나 금품 수수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김하주 이사장을 사실상 영훈국제중 부정 입학의 ‘몸통’으로 보고 있다.

뒷돈 수수-성적 조작-부정 입학 등이 ‘교감 자살’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그 배경에는 돈과 권력은 있으나 실력이 안 되는 사회 지도층과 부유층 자제가 있었고, 학교는 뒷돈을 받고 이들의 자녀를 합격시켰다. 국제중 설립의 산파 역할을 했던 공정택 전 교육감과 영훈학원은 돈으로 흥해 돈으로 망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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