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뒤에 있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 조철·정락인 기자 ()
  • 승인 2013.06.2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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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오에 맞서다 파면된 채수창 화순경찰서장 복직 후 소통 노하우 나누는 책 펴내

2010년 5월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피의자를 고문한 일이 있었다. ‘날개 꺾기’ ‘재갈 물리기’ 등 독재 정권에서나 사용하던 수법을 썼다. 고문에 관련된 경찰관 네 명은 하루아침에 피의자 신분으로 둔갑해 수갑을 찼다. 같은 해 6월28일 당시 채수창 서울 강북경찰서장(51)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수많은 기자 앞에 선 채 서장은 준비해 온 회견문을 읽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비장했다. 그는 양천서의 고문을 불러온 주범을 경찰 지휘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시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에게 ‘동반 사퇴’를 주장했다.

ⓒ 채수창 제공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경찰을 떠난 것은 조 청장이 아니라 채 서장이었다. 그는 경찰 징계위원회에서 파면당해 조직에서 쫓겨났다. 그가 동반 퇴진하자고 했던 조 청장은 경찰청장으로 승진해 승승장구했다. 쓴소리한 경찰 간부는 조직에서 쫓아내고, 문제의 성과주의 전도사는 오히려 영전했다. 결국 채 전 서장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채 서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파면당한 후 대중 속으로 다가섰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고, 이불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세상을 배웠다. 하지만 외로웠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소수자’ ‘비주류’ ‘추락’ ‘외로움’ ‘왕따’ 같은 단어를 썼다. 그래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채 서장은 복귀하면 “시민을 섬기는 경찰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행정소송을 냈다. 피 말리는 줄다리기를 한 끝에 지난해 2월 복직했다. 경찰을 떠난 지 약 1년 반 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채 서장과 조현오 전 청장은 입장이 바뀌었다. 채 서장이 복귀한 지 두 달쯤 지나 조 전 청장은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토막 살인 사건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서울경찰청장 재임 중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으로 유족에게 고소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면 채 서장은 복직 후 전남지방경찰청 경비교통과장을 거쳐 현재 화순경찰서장을 맡고 있다.

채 서장은 복직 후 명예를 되찾았고, 조 전 청장은 경찰 조직에 큰 오점을 남긴 채 퇴임 후에도 검찰과 법원을 들락거리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파면된 기간을 새로운 경험과 도전의 기회로

채 서장은 복직 후 ‘시민을 섬기는 경찰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청소년 자살 예방과 학교 폭력 예방 그리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시민안전연구원도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일선 학교와 위험 직군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안전 교육도 하고 있다. 화순경찰서장으로 부임해서는 취약 계층 초등학생 주거 환경 개선과 불우 이웃 지원에 나서고 있다.

채 서장은 최근 자신이 스피치를 배우고 강연하면서 ‘힐링’한 것을 독자와 나누겠다는 취지로 <내 영혼을 울린 힐링 스피치>를 펴냈다. 인세 수입은 문화예술 저변 확대를 위해 애쓰는 풍덩예술학교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는 “파면된 기간에 겸손을 배울 수 있었다”며 “새로운 경험과 도전의 기회를 얻은 고마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두렵고 어색하다고 남에게 미루기만 하고 자신은 늘 뒤에 서 있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때로는 비겁하게 보이거나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누구나 ‘거침없이 시원하게’ 스피치할 수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만이 스피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남 앞에 나서 스피치를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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