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대란’ 먹구름 몰려온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6.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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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보고서 “2015년부터 중소 비즈니스호텔 줄도산”

국내 비즈니스호텔의 줄도산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신한은행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호텔 및 숙박업의 여신이 크게 증가했다. 2013년 2월 기준 신한은행의 기업 대출액은 87조1179억원에 이른다. 이 중 호텔 및 숙박업의 여신이 10위에서 4위로 6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여신 규모 역시 2조4749억원으로 2008년 말에 비해 8000억원 이상 늘어났다. 한때 30%를 넘나들던 부동산 임대 및 공급업·금융업·건물건설업 등의 여신이 20% 수준으로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고서는 ‘원화 가치 상승으로 인한 외국인 관광객 감소와 무분별한 비즈니스호텔 난립으로 호텔 및 숙박업계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면 중소 호텔의 존립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감하면서 중소 호텔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호텔·숙박업 여신, 6계단 뛰어올라

전문가들은 호텔업계의 붕괴가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전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가계의 신용 위험(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은 9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의 규모는 갈수록 졸아들고 있다. ‘경제 개미’로 불리는 자영업자들 역시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에서 고조되는 호텔·숙박업 리스크가 한국 경제를 옥죄는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장준영 민생경제연대 상임대표는 “중소 호텔업자도 결국 실핏줄 경제를 책임지는 자영업자”라면서 “비즈니스호텔의 몰락은 가계 부채의 핵폭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즈니스호텔은 ‘블루오션’으로 각광받았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돈줄’이 말랐지만 호텔업은 예외였다. 호텔 체인이나 부동산 개발사는 물론이고, 재벌 계열사까지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롯데·SK·GS·신세계·애경 그룹 등이 경쟁적으로 비즈니스호텔 건립에 나섰다. 글로벌 기업의 자금 유입도 잇따랐다. 세계 3위의 호텔 체인 프랑스 아코르 그룹은 2015년까지 한국 내 비즈니스호텔을 두 배 늘리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말레이시아 재계 순위 5위인 버자야 그룹도 서울에서 호텔 사업을 저울질 중이라고 밝혔다. 빈센트 탄 바자야 그룹 회장은 김보경 선수가 뛰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카디프시티 구단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글로벌 부동산 투자회사 LIM(라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은 올 초 연간 투자 전략 보고서를 통해 중급 비즈니스호텔을 유망 사업으로 꼽았다. 폴 게스트 LIM 아·태본부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중국과 동남아에서 한국에 들어오는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주요 도시의 객실 점유율이나 요금도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핵심 비즈니스 지역의 3~4성급 호텔 사업이 유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줄면서 영세 호텔 위기 맞아

그런데 몇 개월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류와 원화 약세로 매년 10% 이상 증가하던 외국인 관광객 수가 최근 급감했다. 2012년 9월 두 자릿수 성장세가 꺾였고, 11월에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2010년 이후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었다. 호텔·숙박업 여신이 크게 증가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금융권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신한은행 산업정보팀 관계자는 “지금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하게 되면 비즈니스호텔 공급 과잉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향후 개업할 비즈니스호텔이 줄을 잇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12년 7월 호텔 건립 시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관광숙박 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관광숙박 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했다. 상업 지역의 경우 용적률이 600~1000%에서 900~1500%로 확대됐다. 서울·인천 등 관광 수요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기존 건물을 비즈니스호텔로 리모델링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자고 나면 호텔이 들어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호텔 건립을 위해 급조된 특수목적법인(SPC)들도 연이어 생겨났다. 지자체의 인허가를 받은 비즈니스호텔이 완공되면 호텔 리스크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호텔업계에서조차 우려를 내비칠 정도다. 기자가 만난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상황을 주식시장의 테마주에 빗댔다. 그는 “분위기만 보고 묻지 마 투자를 했다가 주가가 급락하면서 피해를 입는 것이 테마주의 실상”이라며 “비즈니스호텔 사업에서도 치킨게임 후유증이 조만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호텔업계가 적지 않은 후유증을 앓았다”며 “한류라는 테마만 믿고 투자했다가 거품이 꺼지면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등록 호텔은 2007년 125개(2만1962객실)에서 2011년 148개(2만5160객실)로 증가했다. 2017년까지 설립이 추진 중인 호텔도 128개(2만7639객실)에 달한다. 2016년이 되면 호텔 및 객실 재고율이 2011년 대비 10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2011년에는 수요(필요 객실 수)보다 공급(실제 객실 수)이 1983개 적지만 2016년이 되면 수요 대비 공급이 2만2000여 개나 초과된다”며 “호텔업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2년 후부터가 걱정이다. 2015년 300개의 객실을 갖춘 잠실 제2롯데월드가 완공된다. 이전에 인허가를 받은 비즈니스호텔도 이때쯤 대거 문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는 “원화 강세로 외국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 여러 잠재 리스크가 있다”면서 “외부 요인에 따라 호텔 산업이 붕괴하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밝혔다.

호텔업계 ‘부익부 빈익빈’ 가속화 전망

호텔업계 전반의 수익성 역시 급속하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금력과 브랜드가 약한 중소 호텔의 경우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호텔업계의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시중 은행의 여신 추이에서도 이런 현상을 엿볼 수 있다. 자산 100억원 이상인 외감 호텔업의 여신은 2009년 말 이래 감소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자산 100억원 미만인 비외감 호텔이나 소호 호텔의 경우 여신이 최대 20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일부 호텔 체인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도산하는 비즈니스호텔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려는 곳도 있다. 우희명 머큐어 앰배서더 강남소도베호텔 회장은 “2015년 이후 나올 매물을 잡기 위해 실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이 서울 도심 호텔의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강남·용산·중구의 특1급 호텔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강남·종로·동대문 지역의 2급 호텔은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3급 이하의 호텔은 위치와 상관없이 경영난에 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은 호텔업계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모텔업의 여신 비중이 높은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의 경우 ‘옥석 가리기’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중저가 비즈니스호텔의 증가는 모텔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면서 “2012년 말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의 모텔업 여신 규모는 2009년에 비해 각각 47%, 58%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객실 대비 부대시설 매출이 낮은 2급과 3급 호텔들은 2015년에는 시장에서 도태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영업 추이나 설비 투자 계획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역시 최근 심사부 내 ‘숙박업 TF’를 통해 세부 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숙박업의 업종별 한도 소진율이 91.2%에 육박하고 있다”며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여신 취급 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담당 부서에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한 소호 모텔이나 등급이 약한 호텔의 경우 관리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 “은행 보유 여신 포트폴리오에 대한 기준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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