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격전장으로 변한 비즈니스호텔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6.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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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신라·SK·한화 등 진출…소호 호텔 초토화 우려

최근 확산되고 있는 호텔 리스크에는 재벌 계열사들의 무분별한 비즈니스호텔 사업 진출도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삼성(호텔신라)·SK(워커힐)·한화(프라자)·롯데(롯데호텔)·신세계(웨스틴조선)·GS(인터컨티넨탈) 등 특급 호텔을 보유한 재벌들도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앞다퉈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나서고 있다. 특히 롯데는 2018년까지 40~50개의 비즈니스호텔 체인을 추가로 만들 예정이다. SK네트웍스나 KT도 수익이 나지 않는 주유소나 전화국 주차장 등을 활용해 비즈니스호텔을 세우고 있다.

영세한 비즈니스호텔을 운영하는 업주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정면 승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금이나 마케팅력에서 대기업에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비빌 언덕이 있어야 경쟁이라도 해볼 것 아니냐”며 “이대로 가면 중소 호텔은 줄줄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최근 재벌 계열의 특급 호텔은 객실 담합과 함께 끼워 팔기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 재벌 특급 호텔들이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자본의 힘으로 밀어붙일 공산이 크기 때문에 중소 호텔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재벌 계열사들의 호텔 사업 진출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SK·KT, 주유소와 전화국 호텔로 전환

재벌 기업들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비즈니스호텔을 준비 중인 대기업들은 한결같이 “비즈니스호텔은 기존 특급 호텔과 수요층 자체가 다르다”고 말한다.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운용 자산의 수익률이 크게 하락했다. 이를 보전하고 운용 수익을 다변화하기 위해서는 호텔이나 부동산 사업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업 진행 과정에서 재벌에 대한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삼성화재는 2011년 서울 관훈동에 위치한 대성산업 본사 부지 5855㎡(1700여 평)를 1384억원에 매입했다. 이후 비즈니스호텔로 개발 중이다. 관할 구청인 종로구청에도 최근 개발 계획서를 제출했다. 건물이 완공되면 계열 회사인 호텔신라에서 운영을 대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호텔 부지가 풍문여고와 불과 193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인허가 배경을 놓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풍문여고 관계자는 “여학생들이 수업받는 학교 바로 옆에 호텔이 들어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행 학교보건법에도 설립된 학교나 학교 설립 예정지로부터 200m 안에는 호텔 설립을 금지하고 있다.

“특급 호텔과 비즈니스호텔 고객 달라”

더구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문화유적도 발굴됐다. 문화재청은 공사를 중단시키고 현장 답사를 한 후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 뒷말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장 조사 결과 근대 조선 시대의 유물이 몇 점 나왔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공사 진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사를 허가했다”고 말했다. 삼성화재측도 “특혜는 말도 안 된다. 부지 매입부터 개발까지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GS건설이 동대문에 시공 중인 JW메리어트호텔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물 제1호인 동대문(흥인지문) 앞에 호텔을 건립하면서 문화재 훼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김윤덕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동대문은 2006년에도 안전성 우려가 제기됐다”며 “문화재의 특성과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바로 옆에 10층짜리 호텔을 허가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최근 동대문 성곽공원 조성 사업을 위해 120년 역사의 동대문교회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 부지 바로 옆에 10층짜리 호텔을 짓게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처사라고 김 의원은 비판했다.

6월17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는 설전이 벌어졌다. 정부가 유흥주점이나 도박장이 없으면 학교 인근 200m 안에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관광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교육청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호텔 개발이 지연된 사례가 수십 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특정 재벌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대한항공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호텔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시교육청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정 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벌 병원의 호텔업 진출도 논란


재벌들의 비즈니스호텔 사업 진출을 우려하는 시각은 현재 메디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메디텔은 병원 내에 있는 의료관광객용 숙박시설이다. 기획재정부가 5월 메디텔을 호텔업종에 추가하는 관광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메디텔을 허용하면서 수혜를 입는 곳은 재벌 계열의 병원뿐”이라면서 “대형 병원에 대한 환자 집중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은 “소수의 대형·전문병원에 대한 일방적인 특혜”라고 주장했다.

의료연대노조는 삼성서울병원을 직접적인 수혜자로 거론하기도 했다. 양치상 의료연대노조 조직국장은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일원역 주변에 호텔을 건립하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포기했다”면서 “삼성이 이번 메디텔 허용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병원업계 일각의 시각도 비슷했다. 한 종합병원 전문의는 “대다수 병원은 시설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다”며 “메디텔은 자본력 있는 몇 개 병원밖에 세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기재부)측은 “환자에 대한 편의 제공 차원이다. 의료 민영화를 위한 단초라는 일각의 시각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기재부는 오는 6월까지 메디텔 사용자에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도 포함시킬 것인지, 예산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미 병원은 부대사업으로 장례식장, 미용실, 숙박업소 등을 할 수 있다. 모텔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병원 진료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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