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스타 내연녀는 고관대작에게 ‘훈장’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6.2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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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TV 앵커 불륜 폭로로 다시 도마 오른 중국 고위 관료들 축첩 문화

“나는 전 중국공산당 중앙판공청 법규실 부국장이자, 현 국가당안국 정책법규국 부국장인 판웨(範悅)와 4년간 동거했다. 그는 2011년 6월 내게 공개 구혼까지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가식과 거짓이었다. (중략) 이런 자가 처벌을 받기 전에는 난 절대 죽을 수 없다.”

6월14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한 여성이 올린 글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 경제·여행TV 앵커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지잉난(紀英男·26)의 글이었기에 순식간에 네티즌의 주목을 받았다. 지 씨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려는 듯, 판 부국장과 찍은 수십 장의 사진과 여러 편의 동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지 씨의 사진과 동영상은 곧바로 삭제됐지만, 공직자 부패 사건을 전문적으로 폭로하는 ‘인민감독(人民監督)넷’에 다시 올려졌다.

홍콩과 타이완 언론은 지난해 12월 발생한 레이정푸(雷政富) 전 충칭(重慶) 시 베이베이 구 당서기 섹스비디오 사건의 재판(再版)이라며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 언론은 가십성 단신 보도로 처리하고 있다. 고위 관리들이 내연녀를 두면서 벌어지는 스캔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판 부국장의 경우는 중앙판공청에 근무한 전력이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판공청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직속의 사무 기관이다. 형식적으로는 당 총서기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지만, 실제로는 총서기를 포함한 중앙위 상무위원의 인사 하달, 회계 처리, 일정 관리 등 전체 업무를 곁에서 보좌한다. 우리의 청와대와 비슷한 권한과 지위를 지니고 있다. 판 부국장은 현재 자리에서 쫓겨나 모처에서 은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패 적발 관리의 95%가 정부 둬

중국에서 고위 관리가 내연녀나 첩을 두는 것은 비공식화된 관례다. 올해 1월, 중국인민대학 위기관리연구센터 탕쥔(唐鈞) 주임은 ‘공무원 이미지 위기 보고’를 통해 “지난해 부패로 적발돼 조사를 받은 관리의 95%가 정부(情婦)를 뒀고 최고위급 간부는 60% 이상 첩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후 처음으로 비리 혐의를 받아 낙마한 최고위급 관리인 류톄난(劉鐵男)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도 내연녀의 폭로로 무너졌다. 류 부주임의 비리를 실명으로 고발했던 <재경(財經)> 뤄창핑(羅昌平) 부편집장은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류 부주임의 정부가 일본에서 국제전화를 걸어와 정보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류 부주임은 일본 주재 대사관에서 경제공사를 지내는 동안 현지 유학생인 쉬(徐) 아무개씨를 알게 됐다.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지속해왔던 이들은 경제적 이권 문제로 다툼을 벌여 관계가 소원해졌다. 이 과정에서 류 부주임은 수차례 쉬 씨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번에 지잉난이 ‘자폭’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도 판 부국장의 위협에서 비롯됐다. 2009년 지 씨는 방송국에 갓 입사해 판 부국장을 처음 만났다. 당시 판 부국장은 수년 전 이혼했고 아이는 없다며 지 씨를 꾀었다. 이후 둘은 결혼을 전제로 같이 살면서 싼야(三亞)·홍콩 등지의 휴양지에 수시로 놀러가고 요트까지 빌려 타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4년간 판 부국장이 지 씨를 위해 쓴 돈은 1000만 위안(약 18억4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MW·포르쉐 등 고급 외제차를 사줬고, 하루 최고 1만 위안(약 184만원)의 용돈도 줬다.

결혼을 준비하던 두 사람이 파경에 이른 것은 지난해 12월. 지 씨는 판 부국장에게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판 부국장은 갖은 협박을 했고 경제적 보상으로 이 일을 덮으려 했다. 이에 반발한 지 씨가 판 부국장과의 관계를 폭로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중국 고위 관리들의 흥미로운 축첩 문화가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바로 탤런트, 영화배우, TV 앵커 등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번 지잉난 추문은 3년 전 중국을 떠들썩하게 한 리융(李泳) 사건의 복사판이다. 리융은 광둥(廣東)TV의 간판 앵커이자 ‘미녀 아나운서’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다. 그러나 2010년 4월 궈메이(國美) 황광위(黃光裕) 전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수수하고 홍콩과 마카오 폭력 조직을 비호한 혐의로 천샤오지(陳紹基) 전 광둥 성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구속되면서 베일이 벗겨졌다. 리융은 천 전 주석의 내연녀로, 고가의 랜드로버 자동차를 받고 거액의 용돈을 타왔던 것이다.

여자 연예인의 ‘술자리 가격표’도 공개

2009년 조직폭력배의 우산 역할을 하며 뇌물을 챙기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원창(文强) 전 충칭 시 사법국장은 연예인 킬러로 유명했다. 원 전 국장은 평소 지인들에게 “여성 연예인들에게 은밀한 사생활 비밀을 들이대며 협박하면 어렵지 않게 잠자리를 할 수 있다”고 자랑하곤 했다.

지난 2월 류즈쥔(劉志軍) 전 철도부장이 드라마 <신홍루몽> 출연 여배우들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은 훨씬 구체적이다. 류 전 부장의 측근 뤄진바오(羅金寶) 전 중국철도컨테이너공사 이사장이 재판 과정에서 자세한 사실을 진술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큰손인 딩수먀오(丁書苗·여)가 류 전 부장에게 거액의 뇌물과 함께 자신이 투자한 <신홍루몽>의 여배우들을 소개해줬다는 내용이다. 그 대가로 딩 씨는 고속철도와 관련된 30억 위안(약 5520억원) 규모의 사업을 낙찰받을 수 있었다. <신홍루몽>은 2010년 방영돼 중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여주인공 설보채 역의 바이빙(白氷)을 비롯해 야오디(姚笛), 탕이페이(唐一菲) 등 신세대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해당 여배우들은 추문 자체를 부정했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믿지 못하겠다며 의혹을 확산시켰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연예계 술자리 가격표’도 충격적이다. 여자 연예인이 영화나 드라마의 배역을 맡기 위해 고위 관리나 투자자의 술자리에 참석해 시중드는데, 여기에 지불되는 ‘접대비’가 공개된 것이다. 거론된 연예인 중 타이완 배우 린즈링(林志玲), 중국 스타 자오웨이(趙薇), 타이완 모델 우페이츠(吳佩慈) 등이 1회에 80만 홍콩달러(한화 약 1억여 원)로 몸값(?)이 가장 비쌌다.

중국 고위 관리들이 유명인을 선호하는 이유는 자기 과시가 강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특유의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적지 않은 관리들은 젊고 아름다운 연예인을 내연녀나 첩으로 두는 것을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여긴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여성들도 고위 관리의 내연녀가 되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일부 첩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신흥 부자가 된다. 부도덕한 정부 관리와 탐욕스러운 내연녀에 대해 중국인들의 분노는 커져가지만, 냉엄한 현실에 절망의 한숨만 내쉬고 있다. 중국을 지배하는 공산당이 초창기 건전성과 역동성을 잃어버린 채 거대한 관료 조직이 되어 중국인을 통제하고 압살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지금 견제받지 않고 암세포처럼 퍼져가는 중국 관료들의 탐욕과 부패는 중국 전체를 뿌리부터 썩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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