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고집이 일본 경제 망가뜨리나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3.06.2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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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야스쿠니 참배 반대…주변국과 마찰로 경제 회생 찬물 우려

아베 일본 총리는 ‘강한 일본, 강한 일본 경제의 부활’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일부 일본 언론에서도 ‘강한 일본’을 주장하며 “한국과 중국을 불어서 날려 보내라”는 식의 기사를 쓰고 있다. ‘세계 최고’(Japan as No.1)로 칭송받던 일본의 제조업이 한국과 중국에 밀려 힘없이 당한 현실, 경제의 장기 침체로 일본 국민들이 받은 패배감 등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제까지 엔고(高)로 일본 기업과 국민들이 고통을 겪어왔지만, 이제는 한국과 중국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곳도 있다.

‘아베노믹스’(재정 지출 확대와 경제 성장 전략을 주 내용으로 하는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는 그들에게 ‘애국 경제’다. 아베노믹스로 인해 토요타를 필두로 일본의 수출 기업들이 모처럼 훈풍을 즐기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며 존재감을 잃어가던 소니마저도 반전의 기회를 맞이할 정도다. 미국의 출구 전략 움직임으로 주가지수가 다소 하락했지만,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하다.

2012년 10월17일, 당시 자민당 총재로 막 선출된 아베 총리(왼쪽)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후 나오고 있다. ⓒ EPA연합
금융 완화만으로 경제 살리기 역부족

지금 일본 내부에서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에 가면 모든 것이 무산될 것”이라며 의외로 아베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신념’ 때문에 아베노믹스가 영향받을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아베는 그동안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기 내 적당한 시기에 참배할 가능성은 항상 제기돼왔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2006년 1차 아베 정권 시절)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못했던 게 천추의 한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봐 참배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총리 자신이 야스쿠니를 참배할 경우 한국과 중국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해 9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으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일본무역진흥기구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일본과 중국 간 무역액은 3336억 달러다. 일본의 대중국 수출액은 1447억 달러, 수입액은 1889억 달러로 442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예년에 비해 수출이 10.4%나 감소했다. 중국과 일본 간 무역액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인데, 아베 정권 이후에도 이런 흐름은 유지되고 있다.

<중국세관총서>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3월 중국과 일본 간 무역 총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7% 감소한 708억7000만 달러였다. 아베노믹스가 가져온 엔저(低) 효과로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늘었지만 중국인 관광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엔저 효과가 수출 기업들에게는 혜택이 돼야 하는데 적어도 대중국 및 대한국 무역에서는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 주가 상승과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미국의 출구 전략 움직임으로 크게 위축되면서 일본 내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 완화 정책만으로는 일본 경제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탈출구는 재정 건전화와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인데 그 첫 단추는 기업이 수출로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고용이 늘어나고 임금이 오르며 소비가 촉진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외무성·경제 브레인도 “참배 안 돼”

수출은 일본 경제 부활의 중요한 포인트다. 그중에서도 대한국·대중국 수출은 더욱 그렇다. 일본무역진흥기구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일본의 주요 수출국은 중국, 미국, 한국 순이다. 규모는 각각 1446억 달러, 1406억 달러, 617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타이완 세 국가로 수출하는 것만 해도 전체의 31.6%다. 그런데 2012년 대미 수출액은 11.9% 증가했지만 한국, 중국, 타이완에 대한 수출은 각각 6.3%, 10.4%, 8.9% 감소했다.

정치권에서 강한 일본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일본 재계가 한국·중국 등 주변 국가와의 우호적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 재계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4년 7개월을 다시 기억하고 있다. 고이즈미의 우경화 노선은 당시 세계의 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에서의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고이즈미 전 총리에게 쏟아진 높은 국민적 인기 때문에 대놓고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고이즈미 측근들은 “국익은 경제적 이익과 다르다”며 재계가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해서 경제적 희생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고이즈미와 아베에 이어 들어선 후쿠다 내각은 주변국과 그나마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단명했다. 반세기 만에 들어선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권 역시 짧게 끝났다. 그 후 노다 전 총리의 ‘센카쿠 열도 정부 구입’ 주장으로 중·일 관계는 다시 악화됐고 아베가 총리가 되면서 주변국과의 관계는 더욱 얼어붙었다.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는 아베의 자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참의원에서 승리는 헌법 개정 착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 검토, 자위대의 국방군화 등 주변국을 자극하는 행위로 이어질 단초가 된다. 결국 갈등이 커지는 구조다. 게다가 8월15일 패전일에 많은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것으로 보이는데, 아베의 동참 여부가 관건이다. 외무성과 아베의 경제 브레인들은 대체로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동지들은 “아베가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폭거”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는 것이 지금 일본 내부의 모습이다.

아베노믹스와 우경화. 우경화로 주변국과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아베노믹스는 ‘아베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엔저 정책으로 수출 기업을 독려하려는 정책적 목표가 오히려 아베의 정치 때문에 막히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길 수 있다. “국가에 목숨을 바친 분들을 모신 장소에 가는 것은 세계적인 상식이다”라고 말하는 아베 총리의 신념, 그것을 포기시키려는 외무성과 경제 브레인들의 진언 중 승자는 어느 쪽일까. 일본 경제의 회복 여부가 여기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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