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넘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을 보라”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6.2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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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 <닥터> 주인공 맡은 김창완

‘갖지 못하면 만들어야지….’ 메스를 든 성형외과 의사가 안경 너머 복수에 가득 찬 눈빛으로 노려보며 혼잣말을 한다. 6월20일 개봉한 영화 <닥터>의 포스터에서 이 남자 주인공의 눈빛은 사이코패스 그 자체다. 그가 김창완씨(59)라는 걸 아침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이하 <아침창>) 팬들이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것 같다.

그는 스릴러 영화 <닥터>의 주인공인 성형외과 의사 최인범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탓에 온갖 매체의 인터뷰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주인공을 맡았으니 영화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인터뷰를 고사하지도 못한다.

그는 콘서트까지 병행하는 등 고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본업처럼 하고 있는 <아침창>도 매일 두 시간씩 진행해야 한다. 그렇게 그는 로커로서, 방송 진행자로서, 배우로서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기자와 인터뷰한 때는 6월13일 오후 4시였다. 전날 <닥터> 언론 배급 시사회가 있었다. 기자들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인터뷰 장소인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 들어섰는데 내부 공기가 심상치 않다. 시사회가 끝난 후 영화에 대한 반응이 냉랭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는 기죽지 않았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당당하단다.

 

ⓒ 시사저널 우태윤
사이코패스를 연기했는데 <아침창> 청취자들에게 이 영화를 권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악역을 연기했지만 즐기는 마음으로 했다. 영화는 영화니까 편하게 감상하면 좋겠다. 공포를 넘어서 영화가 주는 즐거움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많이들 보러 오셨으면 좋겠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집어던졌다고 했다.

무슨 이런 내용이 다 있냐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몇 장 넘겨보고 냅다 집어던지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내가 이걸 이렇게 던져버렸다. 그런데 남이 1~2년씩 정성 들여 쓴 시나리오를 몇 번 읽고 던져버린 것이 잘한 건지, 혹시 내게 잘못된 편견이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다시 봤다. 그리곤 이 영화를 ‘영화학개론’으로 삼아 처음부터 다시 영화를 공부하는 기회로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최인범이 왜 그렇게 사이코패스가 됐는지 설명할 수 있나.

현대 사회의 불안과 공포가 최인범을 만들었다. 최인범이 들고 있는 메스의 끝은 현대 사회를 향해 있다고 본다. 영화는 한 치 앞에서 벌어지는 현대의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드라마 <마의>나 <세계의 끝> 등에서 연기한 악역과 많이 다르다.

최인범은 현대인들이 항상 느끼고 있는 공포를 조장하는 공포의 하수인으로서의 역할이다. 최인범은 현대의 각종 위해 요소들 때문에 생겨난 변종 인간, 에일리언 같은 존재다. 전에 했던 악역들은 설정된 인물이니까 걸어만 가도 악역이었지만, 이번에는 상당히 다른 악역이어서 연기 공부가 되기도 했다.

새로운 연기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말인가.

다른 배우가 할 수 없는 걸 내가 해내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아무리 최고 배우라 해도 자신의 무의식까지 끌어내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 정도로 연기를 섬세하게 표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그동안 연기를 하면서 배역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못 해봤는데 이번에 등장인물에 동화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가방 들면 회사원이 되듯 가운 입으면 의사가 되겠지 생각했는데, <닥터>에선 실제로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창완씨(왼쪽)는 영화 에서 사이코패스가 된 성형외과 의사 역을 맡아 열연했다. ⓒ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주인공이 짧은 시간에 아주 다양한 감정 변화를 보였다. 각각의 신에서 연기의 층위가 달라야 했던 것이 힘들지 않았나.

바뀌는 그 감정들의 경계를 즐겼다. 그런데 그 감정의 변화가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미지수다. 환자를 눕혀놓고 바람난 아내에게 복수하듯 애무하며 수술하고, 그러다가 첫사랑을 떠올리며 통곡하고, 막상 수술에 실패하니까 괜히 애만 썼다고 툴툴거리며 수술실에서 나가버린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 신 안에서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좇아가는 영화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혹시 ‘다중 인격자’의 내면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가.

<닥터>는 분열을 통해 분열을 보자는 영화다. 현대인들의 분열된 사고의 층을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디테일하게 바라보자는 의도가 있다.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것을 내가 연기했을 뿐이라 생각한다.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관객이 따라잡아야 하는 이런 부분을 불친절하게 처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관객의 기호에 안 맞을 수도 있다.

최인범을 현대 사회가 낳은 불안과 공포의 희생물이라고 했는데, 어떤 것을 공포라고 할 수 있나.

온 세상이 경제를 가장 큰 덕목으로 삼고 있는 것이 정말 공포스럽다. 지역적인 이기주의나 테러리즘도 예고돼왔지 않은가. 정말 이상한 세상이다. 얼마 전에 아프리카 사람들 얘기를 잠깐 들었다. 생수 한 병만 있어도 밤새 즐겁게 노는 부족이 있다더라. 그런 사람들도 많다는 거다. 그런데도 현대 사회는 경제에 ‘올인’한다. 이게 공포다. 너무 무섭다. 몇백 년 동안 건설해온 문명 세계가 불과 몇 년 전 자리 잡은 인터넷에 휩쓸려가는 듯한데 이것도 공포스럽지 않은가.

전날 밤 VIP 시사회를 마치고 새벽 4시까지 뒤풀이를 가졌다는데, 피곤하겠다.

노래 한 곡 부르겠다. <잠꼬대 소리>라는 노래다.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밤이 길어도 울지 말아야 해’라는 부분이 힘든 젊은이들에게 해주는 조언처럼 들린다.

나도 지독하게 힘들던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며 어른이 되면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지금에 와 문득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 만들려고 그랬나 싶다. 젊은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젊은이들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아주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 어차피 우리 세대는 잘못을 저지른 세대로서 아이들과의 단절을 각오해야 한다. 다음 세대는 새로운 가치 안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마음껏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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