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그녀 호러퀸으로 둔갑하다
  •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6.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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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웹툰: 예고살인> 주연 이시영 연기에 복서의 열정 쏟아부어

이시영은 전통적인 여배우의 개념을 완전히 바꾼 배우다. 여배우를 평가하는 미(美)의 가치가 절대적인 연예 산업에서 그는 이에 아랑곳 않고 복싱선수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심지어 48kg급 국가대표로 선발될 정도이니 배우로서 이시영의 이미지는 여전사에 가깝다. <더 웹툰: 예고살인>(이하 <더 웹툰>)은 그런 그의 강인한 이미지를 한껏 살린 공포영화다.

여기서 이시영이 맡은 배역은 인기 공포 웹툰 작가 강지윤이다. 강 작가에게는 이상한 예지력이 있다. 그가 그린 웹툰 속 내용과 동일하게 살인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파악한 경찰은 강 작가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로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던 그는 두 번째 살인 소식을 접하고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와니와 준하>(2001년) <분홍신>(2005년) 등을 연출한 김용균 감독의 <더 웹툰>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함량 미달이다. 관객을 겨냥한 공포 효과는 귀를 찢는 사운드로 무서움보다는 놀람을 주기에 급급하고, 이야기는 반전에 신경 쓰느라 두서가 없는 편이다. 유일하게 이 영화를 지탱해주는 건 이시영의 연기다. 이시영 왈, “저 아니면 이 영화 안 될지도 몰라요”라고 감독을 협박(?)해 출연을 자청했다는데, 과연! 호언장담한 만큼의 연기를 펼친 것이다.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복서로 강한 면모 보이듯 극중에서 1인 2역

극 중 강지윤은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두 개의 자아 속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현실의 강지윤이 유능한 웹툰 작가이면서 예민하고 섬세한 면모를 드러낸다면 환영 속 강지윤은 죽은 자들의 억울한 사연에 시달리는 일종의 영매 역할로서 다소 거친 모습을 선보인다. 말하자면 1인 2역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만큼 연기하기가 어려웠다”는 그는 “얼마나 더 극단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신경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더 웹툰>에서 이시영이 보여주는 연기는 훈련된 배우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배우’ 이시영과 ‘복서’ 이시영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으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는 현실 속 이미지를 고스란히 강지윤 캐릭터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 중 웹툰 작가로서 이시영이 반듯하고 예쁜 여배우의 이미지에 가깝다면, 죽은 자들에 맞서 기 싸움을 벌여야 하는 영매로서의 강지윤은 사각의 링 위에서 맷집 하나로 버티는 고독한 싸움꾼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관객이 흥미로워 할 부분은 단연 후자다. 그것은 흡사 배우 이시영이 복싱을 한다고 했을 때 대중이 받았을 신선한 충격의 정도와 다르지 않다. 예컨대 살인 혐의를 받던 중 또 하나의 예고 살인 소식을 접하고 이를 막기 위해 병원 시체실로 달려가는 장면에서 이시영은 카체이싱을 위해 스턴트맨의 도움 없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압권은 극 중 강지윤을 끝까지 범인으로 모는 강력계 형사 기철(엄기준)과의 대결 장면이다. 이시영은 수십 kg에 달하는 도끼를 들고 휘두르는 등 리얼한 연기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

김용균 감독은 이시영의 근성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좀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위해 지하 보일러실을 배경으로 잡아 화재가 난 것으로 연출했는데 가스에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완벽한 장면을 위해 거듭 ‘다시 한번 더’를 요구했다는 것.

유머러스한 캐릭터에서 완벽 변신 성공

사실 김용균 감독은 이시영이 출연을 자청했을 때 “과연 호러퀸(Horror Queen)의 이미지를 잘 살릴 수 있을지 의심했다”고 한다. 호러퀸이란, 살인마로부터 잘 도망 다니고 비명도 잘 지르는 예쁜 여배우를 지칭하는 것인데, 기존 이시영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로는 전혀 상상이 안 됐기 때문이다. <더 웹툰>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는 주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유머러스한 캐릭터들을 맡아왔다.

이시영이 가지고 있는 강인한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부딪치고 엎어지는 ‘슬랩스틱’ 성격이 강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예쁘고 귀엽게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배우로서 이시영의 어떤 의지이기도 했다. 급기야 <더 웹툰>에서는 기존 호러퀸 이미지마저도 다시 정의하기에 이른다. 살인마에 쫓기고 비명도 지르지만 이것은 강지윤이 현실의 웹툰 작가일 때만 보이는 일부다.

또 다른 자아가 작동을 시작할 때면 그는 살인마보다도 더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갖은 악다구니를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시영 자신은 “나만의 호러퀸 매력은 없다. 그저 감독님이 요구한 대로 열심히 연기했을 뿐”이라고 겸손을 떨었지만 여배우의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복서로서 쌓은 강인함 또한 그가 가진 능력이고 자산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더 웹툰>을 추천하기는 망설여지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천방지축에서 호러퀸으로 무사히 안착한 이시영의 연기는 이 영화의 유일한 볼거리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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