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웅이 상파울루에서 삼바를!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6.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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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여부 초미 관심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이 끝나며 최강희 감독이 물러났다. 애초에 긴급 소방수를 자처하며 자신의 임기를 “최종예선까지만”이라고 못 박은 그였다. 하지만 한국 축구에는 여진이 남았다. 최종예선 3연전 동안 보여준 경기 내용에 국민의 실망이 컸다. 특히 마지막 경기였던 이란과의 홈경기에서 0-1로 패배해 골득실로 간신히 조 2위를 차지하며 본선에 오르자 성토하는 여론이 거세다. 후임 감독을 찾아야 하는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를 최우선 카드로 내놓았다. 그에 맞춰 박지성의 복귀를 희망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홍명보는 6월21일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다. 그럼에도 홍명보 대망론이 떠오르는 지금, 박지성까지 대표팀에 돌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홍명보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왼쪽)과 박지성 선수. ⓒ 연합뉴스
리더십 구멍 난 국가대표팀의 침몰

2011년 9월 레바논과의 월드컵 3차 예선 첫 경기로 시작한 브라질로 가는 여정 동안 대표팀은 부침이 심했다. 예선 도중 지휘봉을 넘겨받은 최강희 감독은 홈에서 열린 최종전에서 이란에 패하는 굴욕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한 박지성과 이영표의 빈자리가 두드러졌다. 리더십 공백으로 대표팀 자체가 요동친 것이다.

능력 있는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소속팀에 집중하고 싶다며 떠난 주장 박지성, 뒤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이영표의 공백은 보이지 않지만 너무 컸다. 한국 축구 사상 가장 많은 유럽파가 대표팀에 포진했지만 절대적으로 기댈 큰 나무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중흥기에는 늘 최고의 리더가 있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2002 한일월드컵에는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가 있었다. 언론과 팬을 쥐고 흔든 거스 히딩크라는 세계적인 명장의 영향력도 대단했지만, 그라운드 위에서만큼은 홍명보의 존재감이 절대적이었다. 홍명보 리더십의 원천은 카리스마였다. 얼음 같은 차가운 표정과 강철도 뚫을 것 같은 눈빛, 외모 그 자체로 분위기가 남달랐던 홍명보는 절제된 말과 완벽히 모범이 되는 행동으로 선수와 지도자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카리스마로 유명한 김남일조차도 “대표팀에 처음 합류하고 며칠 동안 말도 못 붙였다. 훈련 중에 실수를 하자 ‘정신 차리라’고 외치는데 그대로 뒤로 넘어질 뻔했다”고 회고할 정도다.

홍명보는 감독이 돼서도 특유의 장악력이 통했다. 2009년 이집트 U-20월드컵을 앞두고 처음 감독이 된 홍명보는 ‘원칙과 단합’을 중시하는 팀 운영을 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라 해도 팀을 위해 헌신할 각오가 돼 있지 않으면 과감히 내보냈다. 특정 선수를 편애하지 않고 철저히 실력과 정신력에 입각한 평가를 내리고 기용하자 선수들은 감독 홍명보를 절대적으로 따랐다. 런던올림픽으로 가는 예선 도중 그가 했던 “내 품엔 보이지 않는 칼이 있다. 누군가를 찌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을 보호하고 내 스스로를 찌르기 위해서 지닌다”고 한 말은 선수들에 대한 그의 자세를 보여준다. 홍명보 감독은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는 성과를 냈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에서 획득한 최초의 메달로 월드컵 4강에 필적하는 성과로 평가받는다.

 축구부터 생활까지 모든 것이 카리스마였던 홍명보와 달리 박지성은 온화하면서도 솔선수범하는 ‘행동하는 리더십’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허정무 감독에 의해 대표팀 주장이 된 박지성은 그 전까지 주장 경험이 거의 없었다. 주변에서는 박지성의 리더십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타냈지만 뚜껑을 열자 달랐다. 사실 박지성에게는 세계 최고의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전급으로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완벽한 권위가 주어졌다. 박지성이 개인 훈련을 하면 다른 대표팀 선수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박지성의 행동 그 자체가 기준이고 모범이었다.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는 박지성은 다른 선수들이 기댈 수 있는 ‘썸씽 스페셜’이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이 그리스를 상대로 완승을 거둘 때도 박지성은 압도적인 플레이로 그리스 수비진을 무너뜨리고 쐐기골을 넣으며 첫 원정 월드컵 16강 물꼬를 텄다. 브라질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박지성의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 단순히 한 명의 선수라는 존재를 넘어 그가 뿜어냈던 행동의 리더십이 그립기 때문이다.

6월19일 대한축구협회 허정무 부회장은 “새 사령탑 후보로 총 4명을 추천받았다. 홍명보 전 감독이 가장 유력한 후보인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의 ‘홍명보 감독 확정’이란 발표에 대해 그는, 확정이란 사실은 부인하면서도 “홍 감독과는 교감을 나눈 부분이 있다”며 어느 정도 시인했다. 많은 월드컵 경험과 성공, 선수에 대한 장악력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 주요 전력이 될 선수들은 런던올림픽에서 홍 감독과 함께했던 선수들이다.

홍명보 감독 취임설이 유력하게 나오자 팬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팀 내 분위기가 흔들리고 경기력이 요동치는 위기 상황에서 대표팀을 구할 영웅이 필요하고 홍명보만 한 적임자가 없다는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영웅의 귀환에 대한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 히딩크 감독에게 홍명보가 있었던 것처럼, 홍명보 감독에겐 박지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공수의 구심점을 잃은 상황에서 아직도 현역으로서 축구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는 브라질월드컵의 성공을 위한 마지막 퍼즐 맞추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직 대한축구협회가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식을 치르지 않은 것도 복귀를 위한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국가대표 은퇴식은 A매치 70경기 이상을 소화한 선수에게 자격이 부여되며 박지성은 이미 100경기를 소화하고 은퇴를 선언한 상태다.

과거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이 유로 2004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가 2년 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복귀한 전례가 있다. 당시 지단은 놀라운 기량으로 프랑스의 결승 진출을 이끌어냈다. 박지성은 6월20일 기자회견에서도 “홍명보 감독이 설득해도 대표팀 복귀는 없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홍 감독 역시 불과 5개월 전 “대표팀 감독을 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가 한국 축구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명분 앞에 감독직 수락을 고민 중이다. 위기의 한국 축구에는 영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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