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끼면 오염되던데…협동조합은?
  • 양창희 인턴기자 (ch.yang715@gmail.com)
  • 승인 2013.07.0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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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지자체장 관심 폭증…선거에 악용 우려도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이하 ‘좋은나라’) 창립총회가 6월18일 서울시청 태평홀에서 열렸다. 국내 최초의 지식협동조합인 ‘좋은나라’는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정책을 생산하고 공유하려는 단체다. 경제민주화 전문가인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이사장을 맡았다. 경제학자인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과 정치평론가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등 각계 진보적 학자들이 창립 조합원으로 참가했다.

박원순·문재인·남경필 등 ‘협동조합 열풍’

눈길을 끈 것은 참여 인사 면면이다. 그리 넓지 않은 태평홀에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이 여럿 등장했다. 천정배 전 민주당 의원이 참석했고, 박영선·추미애 의원은 화환을 보냈다. 기념식에서 정동영 전 민주당 의원과 이종걸 의원 그리고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등이 축사를 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0년 안에 서울시에 8000개의 협동조합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 연합뉴스
정치인들의 눈길이 협동조합에 쏠리고 있다. 전·현직 정치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협동조합 지원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경제적 모델인 협동조합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과도한 정치적 관심은 협동조합에 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서의 협동조합은 기존의 농협·수협·축협 등과는 다르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협동조합을 만드는 절차가 대폭 간소화됐다. 종전에는 출자금 3억원과 조합원 200명이 필요했다. 지금은 출자금 제한 없이 5명 이상만 모이면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대안적 경제 모델로 주목받아왔다.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식회사와 달리 협동조합은 1인 1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3년 5월 기준 총 1355개 단체가 협동조합을 만들겠다고 신청·신고했고, 이 중 1210개가 인가·수리됐다. 협동조합 교육·상담·컨설팅을 하는 단체에는 하루에 평균 5건 정도의 상담 요청이 들어올 정도다. 짧은 시간에 이처럼 급속도로 협동조합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신드롬 수준을 넘어 거의 ‘협동조합 광풍’이라고 할 만하다.

정치인들의 관심이 협동조합에 쏠린 것도 당연한 일이다. 현직 의원들은 협동조합 공부에 한창이다. 대선 후보였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지난 4월 협동조합에 대해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문 의원은 ‘협동조합 산만디사람들’과 ‘해기마중물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의 5선 중진 남경필 의원도 전·현직 의원들과 함께 ‘대한민국 국가모델 연구모임’을 만들어 협동조합에 대해 연구 중이다.

직함에 ‘전(前)’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정치인들의 발길도 협동조합으로 향하고 있다. BBK 의혹 제기 혐의로 1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후 출소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은 현재 경북 봉화에서 농업 관련 조합인 ‘봉봉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신정아 스캔들’에 연루됐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미들클래스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을 개설했다.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은 ‘한국협동조합연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부산 동구청장과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연거푸 낙선한 이해성 민주당 부산 중·동구 지역위원장은 ‘협동조합 산만디사람들’을 만들었다. 이 위원장은 “‘산만디사람들’은 소외되고 어려운 지역을 돕는 운동으로, 마을 지도 만들기, 동네 게스트하우스 구축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의 정치적 이용을 우려하는 물음에 그는 “따지고 보면 협동조합 활동 자체가 생활정치다. 조합원 중에 누군가 구의원이라도 나오면, 좋은 목적을 갖고 있는 (협동조합) 활동이 커질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지자체의 지원책은 협동조합 망치는 길”

그러나 정치인들의 협동조합 참여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협동조합 활동이 정치적 조직화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임헌조 한국협동조합연대 이사는 “협동조합의 틀 안에서 활동하면 선거법 등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합법적으로 별도의 정치적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들 사이에는 선거에서 협동조합을 이용해야겠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반론도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에 협동조합 단체의 정치 참여를 막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지역사회를 되살리려는 의지를 가진 정치인들의 협동조합 참여를 막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말도 나온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이수연 연구원은 “아직 사업이 제대로 시작된 곳도 많지 않은데,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은 너무 민감한 반응”이라고 밝혔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들도 협동조합을 주목하고 있다. 일반 협동조합의 경우 각 지자체에 설립 신고를 하게 돼 있다. 단순히 신고 수리만 해주는 것을 넘어, 지자체장들은 협동조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0년 안에 8000개의 협동조합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법 시행 6개월 만에 이미 4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협동조합 붐이 일고 있는 대표적 지자체가 광주광역시다. 광주시에는 6월 현재 151개의 협동조합이 있다. 서울·경기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여기에는 지자체의 지원도 한몫했다. 실제로 광주시가 주체가 되어 협동조합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광주시청 관계자는 “현재 각 구별로 모범 협동조합을 조성해서 교육·홍보 등의 분야에 간접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처음 만들어지는 때라서 올해에 한정해 특별 교부금을 끌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자체장의 과도한 협동조합 사랑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박원순 시장의 협동조합 지원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보다 지자체장들이 협동조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훨씬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자체장들이 협동조합에 대한 정책을 펼치는 것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김 의원은 “협동조합은 정치인들, 특히 지자체장들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항상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데, 협동조합을 통해 특정 정치인들에게 우호적인 조직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및 공공기관이 협동조합을 지원할 수 있다는 협동조합기본법 조항을 이용해 지자체장이 협동조합에 지자체 관련 산업을 몰아주거나 금융기관 지원까지 유도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정치적 동원의 기제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관심은 무관심보다 해로워

지자체 같은 관(官) 주도의 협동조합 정책이 오히려 협동조합에 독이 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지원센터 이사장은 “서울시에서 협동조합 8000개를 만들겠다거나 소상공인지원센터에서 1년 만에 가래떡 찍어내듯이 500개의 협동조합을 설립하겠다는 것은 한심하고 황당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경제’의 범주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협동조합도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런 식의 (지자체) 지원은 협동조합의 자생력을 떨어뜨린다”며 “현재 1200개의 협동조합이 있는데, 준비 없이 만들어진 조합이 너무 많다. 협동조합 바람이 꺼지게 되면 협동조합 운동 자체가 힘들어질까 걱정된다.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위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협동조합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잘못된 관심은 무관심보다 해롭다. 협동조합을 향한 정치인들의 지나친 구애와 가열 양상이 자칫 또 다른 부작용을 낳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다.


ⓒ 연합뉴스
“정치적 공격 당하겠지만 개의치 않아” 
정치소비자협동조합 ‘울림’ 만든 윤여준 이사장

지난해 문재인 전 대선 후보 캠프에서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최근 ‘이사장’으로 직함을 바꿨다. ‘정치소비자협동조합 울림’의 이사장을 맡은 것. 윤 이사장은 “‘울림’은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정치적 의제를 발굴하는 모임”이라고 밝혔다.

 

‘울림’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어떤 단체인가.

그런가. 요새 언론들이 하도 바빠서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웃음) ‘울림’은 한국 정치를 바꾸기 위한 시민운동이다. 상품 시장에서 소비자는 불매운동도 하는데, 한국 정치의 소비자들은 정치에 대해 욕만 하고 만다. 그러니까 안 바뀐다. 확실하게 심판을 해서 바꿔야 한다.

해외에서도 ‘정치소비자협동조합’ 같은 예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고할 만한 곳이 있을까 해서 좀 뒤져봤는데, 비슷한 사례가 별로 없었다. 미국에는 소액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브루킹스연구소가 있는데, ‘울림’과는 조금 다르다. ‘울림’ 조합원들의 힘이 모이면 추후 브루킹스연구소 같은 싱크탱크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울림’에서 진행하고 있는 구체적인 활동은 무엇인가.

시작 단계라서 진행된 것은 별로 없다. 운영위원들이 열심히 난상토론 중이다. 정치인들의 공약을 추적하는 활동, 정치에 관심 있는 20대들을 키우는 활동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판하며 협동조합의 정치적 이용을 우려한다.

글쎄, 정치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그게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 투표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단체가 누굴 당선시키려고 한다든지 하는 것은 안 된다.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고.

‘울림’도 특정 사안에 대해 특정한 정파를 대변하는 입장을 취할 경우가 있을 텐데.

그렇다. ‘울림’의 활동이 주권자 운동이기 때문에 행위 자체에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면 정치적 공격도 당하지 않을까.

그럴 것이다. (여야 양쪽 모두) 우군으로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울림’은 논리적·합리적으로 (정치를) 비판할 것이다. 요새 한국 사회에서 남 욕하는 것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런 것에 다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양당이 지배하는 정치 구조에서 틈을 찾아내겠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이렇게 얘기하면 또 안철수 의원과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있더라. 물론 안철수 현상이 한국 정치의 양당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등장한 것은 맞다. ‘울림’도 양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활동을 할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과의 교감은 없다. 안철수 의원과 전화 통화를 한 지도 벌써 2년 가까이 됐다. 지난해에는 상당한 기대가 있었지만, 대선 때 출마 선언문을 보고 실망했다. 국민들 가슴속에 토네이도가 불 준비가 됐었는데, 토네이도가 아니라 미풍만 살랑살랑 불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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