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비자금 1조원대라는데…
  • 박주민│법무법인 이공 변호사 ()
  • 승인 2013.07.0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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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 2000억대 추징금 부실 수사 논란

1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1995년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내란죄 및 비자금 조성 혐의 수사 이후 지나간 시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검사들이 모여 있는 검찰이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환수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올 들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징 시효가 새삼 논란이 됐지만, 그동안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환수를 위한 검찰의 의지는 끊임없이 의심받았다. 의혹은 ‘추징의 집행을 담당한 검찰이 과연 추징을 못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안 하고 있는 것인가’로 요약된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환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은 각각 2629억원과 2205억원이다. 당시에는 국민들을 경악시킬 만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과연 당시 검찰과 법원이 추징금을 제대로 산출한 것인지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추징금은 당시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내 법원으로부터 확정받은 비자금의 규모일 뿐이다. 일각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 각각 1조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이는 두 전직 대통령 일가의 차명 재산 등이 최근까지도 여기저기서 속속 드러나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 자체가 부실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앞줄 왼쪽부터)이 1996년 8월 열린 12·12 및 5·18 사건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다. ⓒ 연합뉴스
추징금 2000억은 현실과 동떨어져

당시 검찰의 비자금 수사에선 국제 공조 수사가 전혀 되지 않았다. 따라서 두 전직 대통령이 조성했다는 의혹을 산 해외 계좌나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해서는 별도의 수사가 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이 노·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집행과 관련해 보인 태도는 더욱 무성의했다. 2013년 7월 현재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액이 1670억원(75.8%) 정도인 데 반해 노 전 대통령의 미납액은 230억원(8.8%)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검찰은 노 전 대통령 비자금 환수를 적극 수행해왔노라고 생색내고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은 상당수가 본인 스스로 밝힌 제3자의 채권과 부동산일 뿐, 일가가 직접 낸 추징금은 사실상 전무하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집행 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검찰의 무성의한 태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에 대한 추심(추징금을 받기 위해 추징금 대상자의 채권을 회수하는 법 집행 절차) 과정에서 불거진 석연치 않은 추징금 집행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수사 당시 자신의 비자금으로 조성했다고 스스로 밝힌 신 전 회장의 서울센터빌딩에 대해 가압류도 하지 않은 채 추심 시효를 넘겼다. 신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230억원을 관리해 2001년 대법원으로부터 230억원을 반환하라는 결정을 받은 바 있다. 또 신 전 회장이 감정가만 30억원이 넘는 경기도 용인시 양지리 땅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최근 알려졌다. 검찰이 2001년 대법원 판결 당시 신 전 회장의 재산 목록만 조회했어도 이 땅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2011년 7월, 채권 소멸 시효인 10년이 지나 검찰은 신 전 회장의 재산을 강제로 환수할 권한을 잃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추징금 집행 과정도 부실했다. 지난 2004년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세금을 포탈하기 위해 노숙자 명의의 통장에 보유한 채권 중 73억5500만원 상당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이 법원 판결에 의해 밝혀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추징하지 않았다. 또 2006년 전 전 대통령 소유의 서초동 토지에 대한 추징도 언론에서 논란이 일고 나서야 이뤄졌다. 전 전 대통령이 2010년 자진 납부한 강연료 300만원 역시 출신 고등학교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받아왔던 것으로 드러나 이 또한 검찰이 진작부터 추징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검찰이 추징을 못 한 것이 아니라 추징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듯하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2008년 4만7000원을 추징한 것을 끝으로 전 전 대통령을 상대로 강제 추징한 실적이 없다.

'전두환 추징법' 으로 불리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6월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연합뉴스
검찰의 추징금 집행 과정 석연치 않아

검찰이 의지가 없어서건, 능력이 없어서건 현재까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징을 위해 이른바 ‘전두환법’이라고 불리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최근 통과했다. 이 법은 우선 추징 시효를 기존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이로써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 시효는 2020년까지 연장됐다. 다음으로 범인 이외의 자가 해당 재산이 부패 재산이라는 것을 알면서 취득한 경우, 그자를 상대로 바로 추징을 집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추징을 집행하는 검사에게 관계인의 출석을 요구하거나 서류 등을 제출하도록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검사가 좀 더 편하게 추징을 집행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의지 유무와 상관없이 추징이 원활히 진행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개정 법률은 미비한 점이 많아 아쉬움도 남는다. 우선 추징을 강제할 수단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추징을 거부할 경우 노역장에 유치하는 등의 강제할 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산을 꽁꽁 숨겨놓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사람에게 실효적으로 추징하기 어렵다. 이것은 추징 시효만 길게 늘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추징금 집행을 위한 법·제도적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다소 미비한 법·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까지 이어진 점은 상징적인 면에서라도 그 성과가 크다. 무엇보다 “법적인 한계 때문에 추징금 집행이 늦었다”는 검찰의 군색한 변명은 적어도 더는 통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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