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호주머니를 곁눈질하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7.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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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중증 질환 보험 적용에 보험료 인상 걱정

정부는 암, 뇌 질환, 심장 질환, 희귀 난치성 질환(4대 중증 질환)의 진료비를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목돈이 드는 의료비에 부담을 느끼는 국민으로서는 반길 일이다. 그러나 재원 마련 방안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 주머니에서 나가는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대장암 환자 김경숙씨(47)는 지난해 수술과 항암제 투여 등에 1918만원이 들어갔다. 이 가운데 환자 본인은 1625만원을 부담했다. 이 부담금이 2016년에는 98만원으로 줄어든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대책으로 4대 중증 질환자 159만명의 평균 의료비 부담이 1인당 114만원에서 65만원으로 43%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4대 중증 질환 치료에 꼭 필요한 자기공명영상(MRI), 고가 항암제 등 1000여 가지의 의료 서비스가 2016년까지 모두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된다. 환자는 진료비의 5~10%(법정 본인 부담금)만 내면 된다. 유방 재건술, 캡슐 내시경처럼 꼭 필요한 치료가 아니더라도 수요가 많은 최신 의료 서비스도 건강보험에서 20~50%를 지원받을 수 있다.

당장 올해 10월부터 수술 전후 검사에 자주 이용되는 초음파 검사가 보험 혜택을 받는다. 지금까지 한 번에 20만원을 내고 초음파 검사를 받았던 암환자는 앞으로는 5%인 1만원만 내면 된다. 내년부터는 고가의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도 보험 혜택을 받는다. 2015년에는 각종 수술과 수술 재료 비용이 보험 항목에 포함되며 2016년에는 유전자 검사 등 각종 검사가 차례로 보험 항목에 들어간다. 미용·성형 등 치료 목적과 상관없는 의료 서비스는 기존처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민 행복은 의료비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시작된다”며 “4대 중증 질환의 건강보험 보장 강화 역시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인 만큼 속도감 있게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의료·신약, 보험 적용 기준 모호

4대 중증 질환에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하기 위해 복지부는 기존 분류 체계를 바꿨다. 급여(보험)와 비급여(비보험)로 양분돼 있던 것에 선별급여(일부 보험)를 추가했다. 비용 대비 효과가 낮아 꼭 필요한 진료는 아니지만 수요가 많은 의료 서비스가 그 대상이다. 캡슐 내시경(100만~200만원), 초음파 절삭기(40만~125만원), 유방 재건술(150만~750만원)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는 병원이 알아서 가격을 매기면 환자들은 그 값을 치른다. 이러한 의료 서비스에 적정 가격을 정해 건강보험 테두리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비용은 건강보험과 환자(50~80%)가 함께 부담한다. 이동욱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3년마다 선별급여 항목을 재평가해 효과가 입증되면 급여로 넣고, 아니면 퇴출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재원이 많으면 최신 의료기술이나 신약을 보험 항목으로 정하겠지만, 재정이 고갈되면 선별급여로 둘 수 있다”며 “결국 정부가 임의로 선별급여 항목을 조절하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도 선별급여 항목 기준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영상 검사로 진단하기 어려운, 소장에 발생한 출혈이나 질환은 위 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으로는 진단할 수 없고 캡슐 내시경이 유일한 진단법”이라며 “해당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는 필수 의료 행위임에도 어떤 기준에 의해 선별 의료로 분류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상 근거가 부족한 신약도 선별급여 항목에 넣어 환자가 사용하게 된다. 외국에서는 이런 약을 소수 전문가만 사용하면서 연구한 후 그 결과를 보고 일반적으로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허 교수는 “임상 근거가 부족한 신약을 선별급여로 정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의학적으로 위험한 일”이라며 “환자와 정부가 비용을 부담해서 임상시험을 해주는 꼴인데, 해당 제약사는 비용 분담을 전혀 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환자·의사들 “재원 대책 없다”

암 환자의 의료비 부담률을 2009년 10%에서 5%로 낮췄을 때, 건강보험 부담액이 1조5000억원(2005년)에서 4조원으로 대폭 증가했던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건강보험 부담이 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4대 중증 질환 진료에는 돈이 많이 든다. 1인당 400만~1000만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재원을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4조6000억원)과 보험 재정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2017년까지 8조99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정홍원 총리는 “늘어나는 재정은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 및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효율적 관리 등을 통해 마련하고, 건강보험료 인상은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건강보험을 잘 운영해 흑자가 나면 그 돈으로 4대 중증 질환 진료비로 쓰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적자가 나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건강보험료나 세금을 올리지 않고 4대 중증 질환을 보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에서 흑자가 나기를 바라기보다 명확한 재원 확보 방법을 구상하라는 주문이 많다. 예를 들면,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의료 서비스 중 퇴출할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없애고 확보한 돈을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오윤수 대한의사협회 홍보국장은 “건강보험 흑자는 일시적 현상인데 이를 전제로 정책을 짠 것은 무리수”라며 “확실한 재원 확보 방안 마련이 선결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 대학병원에 33일간 입원했다 퇴원한 백혈병 환자(35)가 낸 총 진료비는 400만원이었고, 이 가운데 389만원을 환자가 부담했다. 환자가 부담한 금액의 45.9%인 178만원이 선택진료비다. 선택진료비는 특정 의사에게 진료받기 위해 병원에 주는 일종의 웃돈이다. 이것이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환자는 다인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2인실이나 1인실에 입원하기도 한다. 또 가족이 환자를 돌보는 데 한계가 있어 간병인을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선택진료비, 간병비, 상급 병실료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면 환자가 대학병원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1차 의료기관의 대안은 부족하다. 오윤수 대한의사협회 홍보국장은 “4대 중증 질환 보장 강화는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을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며 “1차 의료 강화를 위한 정책을 먼저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학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굳이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는데도 퇴원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퇴원하면 간병비 등 가족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사가 퇴원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영국은 국가가 진료비를 전액 부담하지만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일이 없다”며 “환자 상태에 따라 하급 병원으로 이송하거나 퇴원시키는 결정권이 의사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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