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줏대감들의 ‘텃세’ 견디겠나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3.07.09 15: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크로아티아 EU 가입에 독일·프랑스 벌써부터 ‘걱정’

독일 본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바나 드르미치는 7월1일 뜻밖의 축하 인사를 받았다. 독일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크로아티아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28번째 회원국이 된 크로아티아의 EU 가입은 그녀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크로아티아 출신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크로아티아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바나 드르미치의 부모는 1971년 고향 벨로바르를 떠나 독일행 기차에 올랐다. 홍수로 인해 한 해 농사를 망친 뒤 내린 결정이었다. 다른 동향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길어야 1~2년만 계획한 독일행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귀향은 점점 미뤄졌다. 게다가 1991년에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간에 전쟁이 터졌다.

드르미치 부부는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버리지 않았다. 세 자녀도 독일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 고향 마을 40km 앞에서 폭탄이 터졌을 때도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휴가를 떠났다. 이바나 드르미치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고향에 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렸을 때라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EU 깃발을 배경으로 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풍경. 크로아티아는 7월1일 EU의 회원국이 되었다.ⓒ AP 연합
가난한 새 회원국에 독일·프랑스 ‘시큰둥’

그동안 독일에는 유로화가 도입됐고 공항에는 EU 국가 시민들을 위한 출입국 심사대가 따로 설치됐다. “EU가 공고해질수록 나는 점점 더 2등 시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이바나 드르미치는 지난 3월 엄마와 함께 런던 여행을 떠났다가 여권이 든 가방을 도둑맞는 바람에 독일로 돌아오지 못할 뻔한 일도 겪었다. 그녀는 “당시 영국 국경수비대가 우리의 신분이 의심되니 EU를 떠나 크로아티아로 돌아가라고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모든 고난의 행군이 해결됐다. 크로아티아의 EU 가입으로 이제 그녀는 독일과 크로아티아 두 개의 국적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크로아티아는 1월22일 국민투표를 통해 EU 가입을 최종 확정했고 7월1일 회원국이 됐다. EU와 협상을 벌여 가입 신청 10년 만에 얻어낸 성과였다. 초란 밀로노비치 크로아티아 총리는 “EU 가입은 크로아티아인들 모두가 재능을 계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라며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EU의 중심축인 독일과 프랑스는 달갑지 않은 기색이다. 크로아티아의 실업률이 2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데다 해외 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을 훨씬 웃도는 등 경제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크로아티아의 전체 인구 중 21.1%가 빈곤 위험에 처해 있다. 크로아티아는 아직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았지만 장래 EU 전체에 재정적인 부담이 될 여지가 있는 국가라는 게 문제다.

크로아티아가 공식적으로 EU 회원국이 된 7월1일, 보수 성향의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FAZ)은 “발칸반도 국가들은 시장경제에 진입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며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다른 일정을 이유로 일찌감치 축하연 참석을 거절해 크로아티아 정계와 언론의 비난을 샀다. 보수 성향의 크로아티아 일간지 베체르니 리스트는 “크로아티아 정부가 요십 페르코비치(독일로 망명하는 옛 유고 연방 출신 시민들을 암살해온 구 유고 연방 정보국 요원)에 대한 독일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따른 외교적 항의”라고 분석했다.

고질적인 부정부패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에는 크로아티아의 EU 가입을 추진해온 이보 사나데르 전 총리가 횡령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정당의 재무 내역을 공개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등 EU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EU 외무부장관회의는 지난 4월 성명서를 내고 미진한 부패 척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요구했다. 자그레브 현지에서 활동 중인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안톤 페트로비치는 “선언만 많이 했지 실행에 옮겨진 것은 적다”고 크로아티아 정부를 비판했다.

“EU 확대는 곧 민주주의 확산”

회의적인 시선은 EU로도 향한다. 끝없는 확장에 대한 불만이다. 크로아티아가 가입함으로써 EU 회원국은 28개국으로 늘어났는데 회원국 수가 늘어날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다. 이미 크로아티아의 뒤를 이어 아이슬란드·몬테네그로·터키 등이 EU 가입 후보국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어 ‘작은 유럽’을 외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지인 레 제효(Les Echos)는 “크로아티아의 EU 가입은 환영할 일이지만 27개국만 해도 이미 제어가 안 될 지경이다. 경계를 확실히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의 EU 가입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반대 목소리도 있다. EU 회원국이 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확립, 시장경제 도입, EU의 목표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의무 등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유럽의 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확장이야말로 EU의 가장 성공적인 정치적 전략”이라며 “EU 회원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덕분에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동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민주주의 이행이 큰 탈 없이 촉진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EU와 가입 문제를 협상 중인 터키 정부는 최근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고 집회 참가자를 도운 의사와 변호사들까지 마구잡이로 처벌하다 협상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당초 6월 말로 예정돼 있던 EU 가입 협상 재개는 터키의 발전 상황을 담은 보고서가 발표되는 올해 10월로 연기됐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도 “EU의 의사결정을 더디게 만드는 것은 말타나 레틀란드와 같은 신규 가입국이 아니라 독일·프랑스·영국 간의 해묵은 대립”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지난해 EU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유는 “불안정한 유럽 대륙에 서서히 민주화를 실현시켰기 때문”이라고 상기시켰다. <디 차이트>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유럽 국가들이 발칸반도의 빈곤과 불안정에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이 전쟁에 제때 개입하지 않아 발칸반도 국가들이 정상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크로아티아에서 무조건 EU 가입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미 유고슬라비아가 처참하게 실패한 적이 있기 때문에 거대한 국가 연맹에 가입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반면 더디지만 변화도 분명 일어나고 있다. 이바나 드르미치의 언니는 지난해 입사 시험을 치르고 크로아티아 관광청에 취직했다. 인맥을 통한 ‘낙하산 인사’가 당연시되던 크로아티아에서는 획기적인 일이다. 한숨부터 쉬고 보는 유럽의 터줏대감들이 이 정도에 만족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 대학생 기사 공모전, '시사저널 대학언론상'에 참가하세요. 등록금을 드립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