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은 떼돈 벌고 노동자는 신음한다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7.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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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세계의 전자 쓰레기 70% 밀수…종사자들 각종 병 시달려

‘“거주 환경이 열악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수입이 많아 지금 생활에 만족합니다.”

맨손으로 작업하는 량청진 부부의 손놀림은 분주했다. 2007년부터 전자 폐기물 분해 작업에 종사해온 이들은 기술자 수준의 숙련된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량 씨는 “허난(河南)의 농촌 마을을 떠나 광둥(廣東)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공사장이나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며 지금은 한 달 수입이 3000위안(약 56만원)이나 된다”고 말했다.

광둥성 수도인 광저우(廣州)에서 자동차로 5시간여 떨어진 산터우(汕頭) 시 구이위(貴嶼) 진. 이곳은 전 세계 전자 쓰레기의 최대 종착장이다. 구이위에서만 한 해 처리되는 전자 폐기물 양이 150만t에 달한다. 2011년 현재 15만 상주 주민 중 7만여 명이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5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도 5169개에 달한다.

(왼쪽)롱먼 촌 한쪽의 폐기물 소각장. 주민들 가옥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있다. ⓒ 모종혁 제공(오른쪽)허난 성에서 온 농민공 량청진 씨 부부. 이들의 딸도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 모종혁 제공
전 세계 전자 쓰레기 70%가 중국으로

량 씨 부부가 사는 롱먼(龍門) 촌은 구이위 내에 있는 10여 개 전자 쓰레기 분해 처리 마을 중 하나다. 롱먼은 구이위에서도 가장 외곽에 떨어져 있고 교통도 불편해, 주로 외지에서 온 농민공 출신들이 들어와 일한다. 롱먼에 사는 주민 대다수는 내륙 허난과 안후이(安徽)에서 왔다. 두 성의 공통점은, 인구는 많지만 경작할 토지가 적은 빈곤 지역이라는 점이다.

롱먼 촌 한쪽에 위치한 폐기물 소각장에서 일하는 쉬(徐) 아무개씨는 고향에서 온 친구 두 사람과 함께 이 작업을 하고 있다. 소각장에서는 별다른 오염 방지 시설 없이 각종 폐기물을 24시간 내내 불태우고 있다. 쉬 씨는 “롱먼뿐만 아니라 구이위 전역에서 분해·소거된 폐기물을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소각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냄새가 너무 독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다. 이 소각장은 주민들의 가옥에서 불과 50m 떨어져 있다.

지금 중국은 전자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에서 버려진 폐기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쓰레기마저 끊임없이 들어온다. 그 양이 어마어마해 전 세계 전자 쓰레기의 70%나 된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추산한 세계 연간 전자 폐기물은 5000만t. 이 중 재활용하는 15%를 제외한 나머지가 제3세계 국가로 수출되는데, 가장 큰 수입국이 중국이다.

전자 쓰레기는 쓸모없게 된 컴퓨터·휴대전화·TV·냉장고·에어컨 등 전자·전기제품을 통칭한다. 전자 폐기물은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서 주로 발생한다. 매년 미국에서 3000만대의 컴퓨터가 버려지고 유럽에서는 휴대전화 1000만대가 폐기된다. 세계의 소비 시장으로 발돋움하는 중국이지만 한 해 배출되는 전자 쓰레기는 230만t에 불과하다.

국제 NGO 단체인 바젤행동네트워크는 미국 세관의 통계를 인용해 “미국 전자 폐기물의 80%가 아시아로 수출되고 그 대부분이 중국으로 간다”고 지적했다. 자국 내의 까다로운 환경 규제와 높은 처리 비용을 피해 타국으로 ‘땡처리’ 수출하는 것이 10배 이상 저렴하기 때문이다. 전자 쓰레기는 1992년 발효된 바젤 협약에 의해 유해 폐기물의 하나로 규정돼 국가 간 이동이 금지돼 있다. 중국도 2000년 환경보호법을 반포해 전자 폐기물의 공식적인 수입을 불허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전자 쓰레기는 암암리에 중국에 들어와 분해·처리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10년 전부터 공론화돼 매년 언론의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정부의 감시·감독이 ‘진행 중’이지만 별 효과가 없다. 실제 중국에서 전자 폐기물을 처리하는 마을은 구이위뿐만이 아니다. 광둥성 내에만 해도 칭위안(淸遠) 시 룽탕(龍塘) 진, 포산(佛山) 시 다리(大瀝) 진 등 4~5곳에 달한다.

언론의 비판과 정부의 간섭에도 중국 전자 쓰레기 처리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까닭은 분해 과정에서 얻어지는 자원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수입된 전자·전기제품을 재가공해 농촌 지역에 되파는 중고 시장이 수백 군데에 달한다. 판매하지 못하는 완제품은 분해해 각종 부품을 채취한다. 이 부품을 새것으로 탈바꿈해 재활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엇보다 분해 과정에서 얻어지는 금속과 플라스틱이 돈벌이 수입원이다. 전자·전기제품 속에는 적지 않은 금·은·구리·크롬·아연·니켈 등 금속이 들어 있다. 보통 1t의 전자 폐기물에서는 143㎏의 동, 0.5㎏의 금, 2㎏의 금속을 추출할 수 있다. 현금 가치로 따지면 6000달러에 달한다. 플라스틱은 잘라서 다양한 용도로 재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전자 쓰레기가 안겨주는 막대한 부는 관련 산업 종사자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2006년 5월 산터우 시 환경보호국이 “구이위 전자 폐기물 관련 산업을 척결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30여 년간 성장해온 폐기물 처리 산업이 구이위의 지주 산업이자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이클이 짧아진 전자제품 소비 트렌드로 인해 폐기물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속도도 덩달아 빨라져 정부의 단속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태어나면서 백혈병 걸린 아이들 속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전자 쓰레기 산업이지만 주민들의 피해는 참혹하다. 구이위의 폐기물 처리 공장은 대부분 가내수공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내륙에서 온 농민공으로 하루 50위안(약 9450원) 안팎의 저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하루 1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이다. 수없이 실려오는 전자 쓰레기를 간단한 도구로 분해해나간다.

난양(南陽) 촌의 한 가내 공장 작업 환경도 다를 바 없었다. 10여 명의 노동자가 천막 밖에서 복사기와 프린터를 분해하고 있었는데, 이들 손에 들린 것은 드라이버 하나뿐이었다. 천막 안에서 자판을 가열해 납을 제거해가는 노동자들 손에는 인두밖에 없었다. 선풍기조차 없는 천막 안에서 유독가스를 맡아가며 일하는 열악한 노동 조건이었다. 날마다 납·카드뮴 등 중금속을 만지고 독성 연기를 마셔야 하는 구이위 노동자들은 수많은 질병에 신음하고 있다. 작업 중 발생하는 유독가스로 인해 처리 산업과 무관한 주민들까지 병들고 있다. 2003년부터 매년 구이위 주민과 노동자들에 대해 건강검진을 실시해오고 있는 훠샤산터우 대학 의과대 교수는 “구이위의 혈전증 환자가 산터우 시내보다 2배 이상 많다”고 말했다. 혈전은 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진 덩어리로, 혈전에 의해 혈관이 막혀 생기는 질환이 혈전증이다. 굳은 피가 혈맥을 따라 심장, 뇌 등을 막으면 심근경색, 뇌졸중 등을 일으킬 수 있다. 훠 교수는 “베이린(北林) 촌은 평균치보다 3~4배가 많은 혈전증 환자가 발생했다”며 “구이위에서만 수십 명에 달하는 암과 백혈병 환자가 있어 인구 비례에 따른 중환자 수가 중국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점이다. 올 초 중국 관영 CCTV는 “구이위 어린이 90%가 중금속에 오염됐다”고 보도했다. 이 중 대다수 아이가 분해 처리를 하는 마을과 무관했던 것으로 드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훠 교수는 “중금속에 중독된 부모를 둔 아이들의 오염이 적지 않다. 화메이(華美) 촌에서는 지난 10년간 태어나자마자 백혈병에 걸린 아이의 숫자가 10명을 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파괴되는 것은 주민 건강뿐만이 아니다. 자연의 오염도 심각하다. 구이위는 본래 농경지가 넓고 물이 많은 옥토였다. 하지만 1980년대 이래 전자 쓰레기가 들어오면서 강, 연못, 저수지 등이 오염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지하수마저 오염되면서 구이위 주민들은 수십 ㎞ 떨어진 산터우 시내에서 물을 사다가 마셔야 한다. 일부 마을에서는 벼와 밭농사를 짓고 있지만 수확물은 모두 가축 사료로 쓰인다.

라이윈(賴蕓) 홍콩 그린피스 오염감시팀장은 2002년 이래 구이위의 전자 쓰레기 문제를 줄기차게 고발해온 인물이다. 그는 “강물이 오염되고 대기오염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역민들은 농업에 기대어 살아갈 수 없게 됐다. 고향에서 전자 쓰레기 처리를 반대한 주민마저 이제는 먹고살기 위해 생업을 바꾸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난양 촌의 썩은 연못. 식수는커녕 빨래를 하기도 힘들 정도다. ⓒ 모종혁 제공
은밀한 경로로 들여와 단속 어려워

대내외에서 비난이 빗발치자 중국 정부의 대응도 점차 강경책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관련 법규를 개정해 외국산 쓰레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따라 중국 세관은 재활용 폐기물에 섞여 들어온 폐기물을 거르기 위해 자국으로 입항하는 모든 폐기물 선박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지난 4개월간 불법 쓰레기 80만t을 적발했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실효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본래 전자 쓰레기 대부분이 은밀한 경로를 통해 중국에 들어온다. 현장에서 단속하는 공무원조차 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우추이원 칭위안 시 환경감찰대 대장은 <남방도시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형 트럭 한 대당 적게는 10만 위안(약 189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 위안(약 1억8900만원)의 전자 폐기물을 들여와 20~30%의 이익을 남기는데 누가 그 일을 마다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전자 쓰레기가 견고한 산업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6월13일 <남방일보>는 “2010년 광둥성 정부가 지정해 조성을 시작한 구이위 순환경제산업원이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황무지처럼 방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당초 구이위 순환경제산업원은 중국 최초의 전자 폐기물 처리 산업단지로 기대를 모았다. 산터우 시 정부도 5000만 위안(약 94억5000만원)의 자본금을 모으는 등 의욕이 높았다. 그러나 기존 전자 쓰레기 관련 업자들의 반발을 막을 수 없었다. 업자들 입장에서 순환경제산업원에 입주하면 전자 폐기물의 수입부터 유통, 분해·처리, 재판매 등 모든 과정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밀수되는 전자 쓰레기의 전모가 드러난다. 게다가 안전한 분해·처리 시설을 갖추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가내수공업 형태로 작업되는 구이위의 현실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규모다.

라이윈은 “구이위에서 전자 폐기물은 마약과 같다”며 “지금처럼 지방 정부가 방치하고 관련 종사자들의 인식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전자 쓰레기 산업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돈벌이에만 급급한 폐기물 수입업자와 처리업자, 이들을 눈감아주는 중국 정부 관리들, 자국 전자 쓰레기의 해외 수출을 용인하는 외국 정부와 기업…. 이 모든 부도덕한 관련자들이 중국인에게 전자 쓰레기 재앙을 뒤집어씌우는 공모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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