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군인의 총구, 돈벌이를 겨냥하다
  • 김덕영│다큐전문PD·다큐스토리 대표 ()
  • 승인 2013.07.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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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통제 벗어난 군인들, 사설 경호업체와 민병대로

이라크 취재를 위해 바그다드에 처음 입성하던 날, 취재진을 맞이한 것은 3대의 경호 차량이었다.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마자 육중한 SUV 차량들이 대낮에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주차장을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장면이 목격됐다. 말로만 듣던 이라크 경호업체 차량들이었다. 주차장 곳곳에 길게 도열한 경호 차량 주변에는 검은색 선글라스와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경호원들이 무리를 지어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항 내에서 경호원들은 총기를 자유롭게 소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라크를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근 이라크 정부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공항 내 총기 휴대를 금지시키기로 했다.

바그다드 거리에 부착된 시아파 종교 지도자와 알-마흐디 민병대 포스터. 이라크의 전직 군인들 중 상당수는 종파에 소속된 민병대로 들어갔다. ⓒ AP 연합
죽음의 도로를 시속 150km로 빠져나가

경호 차량들은 각자 경호 책임을 맡은 고객이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태운 뒤 공항을 빠져나갔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는 것은 이들의 경호 수칙에 어긋난다. 정지해 있는 모든 것은 저격수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연결된 고속도로는 일명 ‘죽음의 도로’라고 불린다. 저격수들의 총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곳이다.

경호 차량은 그곳을 지날 때 시속 150km 이상의 빠른 속력을 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런 모습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아직 치안이 안전하지 않은 탓에 외국인들에게는 공항에서부터 숙소는 물론이고, 가는 곳곳마다 경호원들이 배치되었다. 경호원 없이는 한 발짝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곳, 이라크의 현재 모습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 바그다드에서 가장 성업을 이루는 것은 사설 경호업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후 복구 사업이 진행되면서 외국인들의 출입이 늘어나자 안전을 책임지는 경호업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비용은 보통 고객 1인당 4000~5000달러는 기본이다. 바그다드를 벗어나 지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웃돈을 얹어줘야 한다. 이런 경호업체가 이라크에서는 현재 100여 개나 성업 중이다.

최근에는 경호업체들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용도 많이 저렴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외국인들 처지에서는 경호 비용을 조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오죽했으면 이라크 입국 비자를 받는 일보다 경호 비용을 마련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까.

보통 경호 차량 한 대당 두 명의 경호원이 배치되는데, 그들은 AK 소총과 권총 등 개인 화기를 들고 있다. 언제든지 사격할 수 있도록 실탄이 장전된 상태다. 훤칠한 키에 근육질 몸매, 주위를 경계하는 매서운 눈빛까지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필자가 탄 경호 차량을 맡은 무스타파는 한 손에 무전기를 들고 누군가와 교신을 했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러시아제 토카레프 권총 한 자루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에게 다가가 이라크의 경호업체들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라크에서도 총기 소유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경호원들은 총기 소유가 허가된 신분증을 갖고 있습니다. 총기에는 실탄이 장전돼 있는데,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항상 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호해야 하는 고객의 안전이 최우선이죠. 만약 전투가 일어난다면, 우리는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신입니다.”

바그다드에서는 소총 등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 ⓒ 김덕영 제공
3만~4만정 이상의 총기 불법적으로 유통

매우 투철하다. 경호 일을 하기 전에 어떤 직업을 갖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예상했던 대로 전직 군인이라고 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그는 더는 군대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이도 많은 데다 열악한 군대 사정이 그를 더는 머무를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경호원의 길을 선택했다.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줄어들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은 반대했지만, 그래도 군대에서 갈고 닦은 전투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수입도 괜찮았다. 이라크 경호원들이 받는 월급은 경력과 위험도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1000달러에서 많게는 2000달러 정도를 받는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사람과 견줄 수 있을 만큼 높은 금액이다. 실제로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군 사병의 월급은 고작 500달러 정도였다. 군인으로 복무할 때와 비교하면 고소득이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상당수 군인이 무스타파처럼 군복을 벗고 경호원이 되었다. 미군은 이라크를 떠나면서 이라크군의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라크 군인이 경호원이나 건물 경비요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는 사라진 군인들과 함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총기들 역시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이라크 전직 군인은 “3만~4만정 이상의 총기가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이라크 어디를 가나 총기를 든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건물 입구부터 심지어 상가나 시장, 부유층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사설 경호업체에 고용된 보안요원들이 총기를 들고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라크 정부 관료를 지내기도 했던 한 정치인은 이라크 내의 경호업체들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민간 경호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방은 더욱 심각해, 부족과 종파들끼리 자체 민병대를 조직하고 있는 곳도 많습니다. 언제 어디서 총기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인 거죠. 하루속히 치안이 확보돼 정부 차원에서 총기 관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내전 ‘화약고’로 남은 50여 개의 민병대

실제로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미군과 다국적군이 철수하면서 이라크 치안 상태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미군이 있었을 때만 해도 세력을 어느 정도 유지했던 이라크 치안부대나 경찰의 힘은 미군이 빠져나가자 급속히 약해졌다. 그 와중에 수니파·시아파 무장단체들의 세력은 빠르게 커졌다. 종파 간 대립으로 상대방에 대한 테러가 격화되면서 무장단체들은 자위적인 차원에서 지역 민병대를 확장시켰다.

이라크에서는 이런 종파 간의 분열과 대립 탓에 50여 개의 크고 작은 민병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시아파냐 수니파냐, 친미냐 반미냐, 혹은 진보냐 보수냐를 놓고 현재도 계속 사분오열하고 있다. 가뜩이나 18개의 자치권을 지닌 지방 정부가 독자적인 힘을 지닌 연방 체제 속에서 종파와 부족으로 다시 분열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그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으로 인해 애꿎은 민간인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종파 간의 이권 다툼 속에 경제 발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종파 간 테러로 민간인 사상자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 정부는 이들에 대한 통제권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라크 정부를 무능한 정권이라며 공공연히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지면서 일종의 3각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군부 중심 체제를 와해시켰다. 100만명의 이라크 정부군은 싸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 앞에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군사 독재 체제가 몰락하면서 군인들이 동시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을 수용할 일자리는 부족하기만 하다. 이라크 군인들이 경호업체나 지역 민병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이라크 군대의 급격한 변화가 이라크의 미래에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웃 나라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이 대표적인 근거다.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대립에서 촉발돼 내전으로 확대된 시리아 내전 역시 반군이 무장 투쟁으로 전환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자칫 50개의 이라크 지역 민병대들이 정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라크에서도 언제든지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라크 종교 지도자들이 종파 간 대립을 극복하고 자성의 시간을 갖자고 촉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자프 시아파 성지에서 만난 성직자 세이크 후세인 ‘그랜드 아야톨라(시아파 종교 지도자를 지칭)’는 “이슬람의 율법 그 어디에도 이유 없는 살인과 전쟁은 용납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은 진정한 이슬람의 가르침과 거리가 멉니다. 이슬람은 평화를 가르칩니다. 증오하고, 복수하는 것은 진정한 무슬림의 길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종파적 갈등과 테러를 그만두고 서로 화해하고 협력해서 이라크를 재건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차량에 올랐다. 행상을 하는 아이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차창 가까이 다가왔다. 손에는 담배나 전화카드 같은 것들이 쥐어져 있었다. 여자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함께 탑승한 경호원은 그들이 전쟁고아라고 했다. 그 뒤로 모자를 눌러쓴 키가 제법 큰 젊은이들도 보인다.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온 청년들이었다. 그들 때문에 잠시 차가 정체된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신참내기 경호원 후세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필자에게 불쑥 한마디를 건넨다.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길에 나와서 이런 거라도 팔고 있습니다. 이라크에는 석유도 많고, 돈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잘못하니까 일자리가 없습니다.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싸우기만 합니다. 정부가 잘못해서 국민이 힘겹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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