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당신 누구 편이야”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07.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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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교체기 100일 의문의 행적 추적

국정원 직원들은 으레 자기들끼리 국정원장을 별명으로 부른다. 이 별명은 원장의 이력과 품성, 그리고 국정원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한다. 국정원의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작성 논란 한가운데 서 있는 김만복 전 국정원장. 국정원 직원들이 김 전 원장 재임 시절(2006년 11월~2008년 2월) 그에게 붙인 별명은 ‘만복이 성’(만복이 형)이었다. 국가 핵심 정보기관이자 위계질서가 엄격한 국정원 내부에서 최고 수장을 상징하기에는 다소 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별명이다. 하지만 국정원 내부에서 ‘만복이 성’은 긍정적인 의미가 더 크다는 게 국정원 전 직원의 설명이다.

김 전 원장의 재임 기간 중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ㄱ씨는 “김 전 원장이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당시 부적절한 처신을 해 내부 신인도가 떨어졌지만, 그 이전까지는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며 “중앙정보부 공채 출신(1974년)이 내부 승진을 통해 최초로 수장까지 올랐다는 점이 반영된 것도 있지만, 워낙 스킨십이 좋고 업무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만복이 성’은 믿고 따를 수 있는 원장이라는 신뢰감이 반영된 친근한 별명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만복이 성’으로 불리며 국정원 내부의 두터운 신망을 받던 김만복 전 원장의 위상은 퇴임 이후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더욱이 그의 과거 행적은 여야의 정쟁거리가 되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과 관련해 김 전 원장의 갈지자 언행이 드러나면서 이른바 ‘김만복 미스터리’라는 미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노) 정권 말기와 이명박(MB) 정권 초기를 넘나들며 보여줬던 김 전 원장의 정치적 행보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국정원 제공
김만복의 ‘잠수’ , 자초한 건가 당한 건가

김 전 원장은 2007년 12월19일 대선 직전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비밀 대화를 담은 ‘방북 대화록’을 특정 언론사에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 2008년 1월 원장직을 사임했다. 그의 돌출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전 원장은 2011년 초,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한 서해평화지대 협상 과정의 일화를 일본 월간지에 기고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치명적인 사고는 근래에 발생했다. 김 전 원장은 국정원이 지난 6월24일 무단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당시 원장이었던 자신의 허가 없이 작성돼 “항명죄에 해당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그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정원이 회의록 작성을 지시한 김 전 원장의 서명 존재를 공개하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그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며 이후 입을 닫아버렸다. NLL 논란으로 여야와 국정원 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이, 김 전 원장은 자신의 정치적 친정인 민주당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민주당 내부에서 “김 전 원장의 언행이 미심쩍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다.

국정원 공개 회의록 작성 지시를 극렬히 부인했던 김 전 원장이 ‘강공 모드’에서 ‘잠수 모드’로 갈아탄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김 전 원장이 입을 다물었지만, 민주당은 특별히 김 전 원장의 입장이 바뀐 게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당 국정원국정조사특위 소속 한 위원은 “김 전 원장이 애초 했던 말을 번복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본인이 직접 입장을 밝히지 않는 이상 (자신은 정상회담 회의록 작성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처음 발언이 유효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이 당초 밝힌 대로 2007년 당시 기억이 정확하다고 전제한다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연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전 원장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의록 작성 지시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새누리당 정보위 소속 한 의원은 “국정원이 정확하지 않은 허위 자료를 근거로 ‘김 전 원장이 (회의록 작성을) 지시했다’고 주장하면 곧바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알지 않겠느냐”며 “김 전 원장의 기억이 불명확해 생긴 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왼쪽)은 2007년 대선 직전 방북 당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오른쪽)과의 비밀 대화록을 유출해 구설을 샀다. 사진은 2007년 11월 부산 해운대 누리마우APEC하우스에서 만난 두 사람. ⓒ 연합뉴스
김 전 원장, 과도한 정치 행보가 화근?

국정원이 밝힌 대로 김 전 원장의 정상회담 회의록 작성 지시가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그의 기억이 애초 잘못됐을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이 작성된 시기는 2008년 1월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이 훨씬 지난 사안이라는 점에서 기억에 착오는 있을 수 있다. 특히 국정원이 “김 전 원장 지시로 작성했다”며 관련 정황을 드러내기 직전까지, 김 전 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회의록 작성 지시를 거듭 부인한 게 착오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그는 국정원이 자신의 서명 존재를 밝히기 불과 이틀 전인 7월3일까지도 “나는 분명히 (청와대 지시에 따라) 2007년 10월에 작성해 청와대와 국정원에 각각 1부씩 보관하도록 하고 담당 국정원 간부에게 ‘1부만 보관하고 나머지가 있다면 전부 파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관련 서류만 공개하면 간단히 뒤집힐 수 있는 사안임을 알고도 부득불 이를 부인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다.

단순한 착오라고 보기에는 김 전 원장의 평소 일처리 스타일과 배치되는 점도 있다. 국정원 전 직원 ㄴ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국정원이 대통령을 상대로 업무보고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기조실장이던 김 전 원장은 행사장의 플래카드가 당초 계획했던 모양과 다르다면서 행사 직전 새로운 플래카드로 교체하라고 했을 정도로 꼼꼼했다”고 말했다. 권력 교체기라는 예민한 시기, 국정원장을 지낸 그가 사안의 중대성을 알고 있다면,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기억을 했다는 점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만복 미스터리’가 증폭되자 일각에서는 “김 전 원장에게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정원 회의록 진위 여부를 떠나 노 정권 말기에서 MB 정권으로 넘어가는 권력 교체기라는 미묘한 시점에서의 그의 정치적 행보를 둘러싼 의혹이다. 정확히 말하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17대 대선 이후인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지는 약 100일간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김 전 원장의 정치적 행보 조짐은 정상회담 이전부터 엿보였다. 그는 2007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샘물교회 교인들에 대한 석방 협상을 주도할 때부터 정치적 야심을 드러냈다. 당시 인질 19명이 석방된 직후, 귀국길에 오르는 과정에서 김 전 원장은 국정원 요원인 이른바 ‘선글라스 맨’을 대동한 채 언론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구설에 올랐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대선 하루 전인 2007년 12월18일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비밀 회담을 가졌고, 거기서 한 발언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비밀 회담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당선이 확실시된다”며 “(MB 정부가) 남한 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현 정부보다 더 과감한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화 내용은 2008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에 대한 김 전 원장의 업무보고를 통해 MB에게 전달됐고, 이후 특정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김 전 원장, 총선 출마 위해 일부러 노출”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김 전 원장이 국정원 본연의 임무보다는 정치적인 입지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는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국대사관의 비밀 전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미국대사관 쪽에 “청와대는 김만복 국정원장에게 아프가니스탄 인질 석방 과정에서 그림자처럼 행동할 것을 지시했지만, 김 원장은 국정원의 이미지 개선과 2008년 총선 출마를 희망했기 때문에 (일부러) 언론에 노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 전 원장은 김양건 부장과의 대화록을 유출한 것과 관련해 “방북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이른바 ‘북풍 공작’ 의혹이 강하게 제기됨에 따라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국정원의 정치 개입 논란을 촉발한 남재준 국정원장의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는 말과 궤를 같이하는 정치적인 발언이다.

국정원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다는 명분이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포석이든, 김 전 원장이 2008년 1월 정상회담 회의록 작성을 지시했을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의원은 6월2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대화록은 2008년 1월에 생산된 것으로 돼 있는데, 국정원의 누군가가 인수위 또는 MB 정부에 갖다 주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그 대화록이 누구에 의해, 언제,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내용의 왜곡이나 조작이 없는지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의 회의록 작성 지시 진위 여부에 따라 김 전 원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공적(公敵)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입을 다물고 있는 김 전 원장이 답을 내놓을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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