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노무현 정권 둘 다 친다
  • 조해수·엄민우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7.1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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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청와대 보고용 ‘원전 비리’ 문건 단독 입수 과거 정권 비리 상세 적시…‘원전 게이트’ 곧 터질 듯

‘국정원 선거 개입’ ‘CJ 이재현 회장 비자금’ 수사에 이은 또 하나의 대형 비리 수사가 정국을 뒤흔들 조짐이다. 이른바 ‘원전 비리’ 수사다. 여의도와 서초동 주변에서는 “곧 ‘원전 게이트’가 터질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원전 비리 수사의 타깃은 이전 정권이다. 7월7일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사장이 전격 구속되면서 이명박(MB)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MB 정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인 노무현(노) 정권에도 원전 비리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국정원 국정조사’와 ‘NLL 대화록’ 파문으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정부 입장에서 원전 비리 수사는 호재임에 틀림없다. 과거 정권과의 차별화는 물론 새로운 이슈 띄우기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이런 정황을 더욱 뒷받침할 수 있는 문건을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했다. 청와대에 보고된 원전 비리 관련 문건으로 ‘원전 비리 사항에 관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A4용지 7장 분량이다. 본지는 취재 과정에서 “(문건의) 작성자를 밝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청와대에 보고된 것은 맞다”는 증언과 함께 관련 문건을 입수했다. 여기에는 원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및 원전 계측 제어 쪽 민간 업체의 설립·소멸까지 노 정권과 MB 정권의 핵심이 깊숙이 개입해 이권을 챙긴 정황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보고서 형식의 이 문건이 실제 청와대를 통해 사정 당국에까지 전달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문건 관계자는 “사정 당국에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 문건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확인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원전 비리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원전 비리가 여의도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으로의 수사 확대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A4 7장 분량 문건에 과거 정권 비리 빼곡

문건의 첫머리에는 원전 비리 수사의 당위성이 강조되고 있다. ‘원전 비리가 케이블 등 단순 부품 비리 선에서 그칠 우려가 있음’이라면서 ‘원전 정비·보수 분야는 연간 8000억원이 넘는 알짜배기 사업임. 이 때문에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정권 핵심들의 눈에 들기 시작함.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와 MB 정부 시절에 한국수력원자력이 굳이 외주를 주지 않아도 될 법한 사업을 인증업체 형식의 민영화를 진행한 것에 대해 인증 및 사업비 지원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감사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적시돼 있다. 이어 ‘원전 방사성 폐기물 용기, 처리, 정비, 제어계측 등에 해당하는 정비·보수 예산에도 권력형 비리가 깊이 개입한 것으로 보임’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 문건에서 실명으로 언급되고 있는 인사와 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확인 취재 및 주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원전 마피아의 실체를 추적했다.


검찰의 원전 비리 수사에서 ‘태풍의 눈’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업체는 한국정수공업이다. 이 회사의 이 아무개 회장은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에게 1억원에 이르는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송 아무개 한수원 부장의 자택과 지인의 집에서 발견된 5만원권 지폐 다발로 된 6억원의 출처도 한국정수공업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에도 한국정수공업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여기서 노 정권 및 MB 정권과 검은 유착 관계를 맺어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환경설비업체에서 원전 용수처리업체로 탈바꿈한 한국정수공업은 한국에 있는 8기의 원전(신고리 1·2·3·4호기, 신월성 1·2호기, 신울진 1·2호기)의 ‘용수처리 설비 입찰’을 모두 낙찰받아 시공과 사후 관리를 독점했다. 독점 낙찰 시기는 2004~11년으로 노 정권과 MB 정권에 걸쳐 있다. 최근에는 UAE(아랍에미리트연합) 브라카 원전 1~4호기에 용수처리 설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을 정도로 원전 건설에서 독보적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의 친동생도 한 공기업 부사장을 지냈다고 한다. 그는 “이 회장은 로비력이 대단한 사람이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라인’을 유지해왔고, MB 정권 때는 SD(이상득)계의 실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노 정권에서 MB 정권으로 계속 갈아탔듯이 박근혜정부에도 줄을 대기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다. 골프 핸디가 ‘0’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또 다른 증언도 확보되고 있다. 검찰 수사 등 사정 당국의 수사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인사는 “얼마 전 검찰이 한국정수공업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로비를 입증할 만한 중요 서류를 확보한 것으로 안다. 여기에는 MB 정권 실세 이름이 등장하면서 실제 로비 정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관련 내용이 기술돼 있다고 한다. 검찰의 (정치권) 확대 수사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09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해 사용 후 연료 저장소를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압수수색에서 MB 정권 실세 등장 문서 나와”

문건에는 ‘4대강 특혜 의혹’을 받았던 태아건설의 이름도 등장하고 있다. 태아건설은 MB 정부 시절에 경인 아라뱃길 공사와 4대강 공사 등으로 5000억원이 넘는 수주 금액을 따냈다. 민주당에서는 “특수 공법이 아닌 토목공사의 수주액이 5년간 5000억원이 넘는 것은 배후에서의 특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전 대통령과 태아건설 간 유착설을 주장하고 있다.

태아건설은 2006년 7월 신고리 원전 1·2호기, 2007년 7월 신고리 원전 3·4호기 착공에 참여했다. 2007년 8월에는 ‘경주 방폐장’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의 제1단계 주설비 착공을 맡았다. 나아가 2011년 3월엔 한국전력공사(KEPCO)가 수주한 UAE 브라카 원전의 워프 구조물 공사 하도급까지 맡게 된다. 김태원 태아건설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이자 현대건설에서 함께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MB 정권 때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쳤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고려대 부산교우회 회장을 지냈다. 2009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지역회의 부의장을 맡기도 했다. 2010년에는 부산전문건설협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MB 정권 때 눈부시게 성장했던 태아건설은 지난 4월 싱가포르 공사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이유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문건에서는 이에 대해 ‘고의 부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고의 부도를 통해 회사를 없애면서 자연스럽게 비자금 조성도 숨기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 운반 사업 분야에서 최초의 민간 참여 기업인 K기업은 노무현 정권 출신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보인다. K기업은 지난 2010년께 77억원 규모의 방사성 폐기물 용기 관련 사업을 수주했고, 현재까지도 정부 사업을 꾸준히 맡아오고 있다. 노 정권에 이어 MB 정권에서도 정부와 함께 여러 가지 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원전업계의 거물 로비스트 윤 아무개씨의 힘이 컸다고 한다. 문건에서는 K기업에 대해 ‘대구 대륜고등학교 동문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요 인물은 조○○ 고문, 윤○○ 로비스트, 김○○ 사장, ○○○ 감사’라고 되어 있다. 또 ‘윤○○ 로비스트는 로비 전문 거물 브로커로 MB 정부 시절 ○○○ 전 차관을 한수원 김종신 사장에게 연결하며 계속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음’이라고 적시하고 있고, K기업이 ‘사정 당국의 타깃이 될 때마다 이 둘이 나서서 해결하였음’이라고 적혀 있다.

S기업은 원전 산업이 정권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S기업 전 임원 ㄱ씨의 전언에 따르면, S기업은 원래 계장공사 전문이었다. 계장공사란 전력계기 등을 다루는 것을 말하는데, 이른바 갑·을·병 관계에서 을도 아닌 ‘병’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갑·을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사업 전반이 요동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S기업은 노 정권 때 호시절을 보냈다. 오너의 아들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고, 핵심 실세의 친인척을 영입하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한때 한전KPS를 제외하고 업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기업의 오너는 노 정권 시절 기획된 한 대학의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대학은 출범 초부터 원자력 쪽으로 특화돼 만들어진 첫 국립대학이다.

S기업에 종사했던 ㄱ씨는 “S기업의 오너는 로비의 귀재이며 DJ(김대중) 정권 시절부터 정치권과 활발히 교류했다. 오너의 아들이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MB 정권이 출범하면서 S기업은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된다. 표면상의 이유는 무리한 해외 진출에 따른 수백억 원대의 손실이었다. 그러나 ㄱ씨는 “MB 정권 관련자들이 S기업 인수에 여러 번 눈독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K업체가 외국 출신 박사를 몇 명 영입해, 본격적으로 인수를 타진한 적도 있다. 정권이 바뀌자 잘나가던 기업의 운명도 바뀌어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김종신 전 사장, 원전 관련 업체 실소유 의혹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김종신 전 사장이 원전 부품 납품 및 관리 용역을 담당한 한 업체를 비밀리에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문건에 따르면 “김종신측 ○○○은 러시아측 원전 관련자들을 국회로 불러 ○○○(MB 정권 실세), ○○○(원전업계 대부) 등이 자신의 사람이라 이 분야를 잡고 있다며 협조 압박’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원전 비리를 추적하고 있는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도 “한수원 관계자를 통해 김 전 사장이 이 업체에 근무한 적이 있으며,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해당 업체에 지분 구조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검찰의 원전 비리 수사에서는 특수통으로 유명한 김기동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이 수사단장을 맡고 고리·월성·영광 원전 비리 수사 경험을 가진 검사 7명과 수사관 12명이 투입됐다. 이들의 칼날이 어디를 향할지에 따라 정국은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 전 관계자는 “정권과의 유착 관계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원전 비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특히 2009년 MB 정부가 400억 달러 규모의 UAE 원전 수출 사업을 결정했을 당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때 참여했던 정책 결정 부처들, 운영 기관, 수주 업체를 살펴보면 원전 비리의 단면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안 친한 사장 본 적이 없다” 


전력 사업 부문은 말 그대로 ‘앉아서 돈 버는’ 분야다. 대한민국에 전기를 안 쓰고 사는 사람은 없다. 산업 규모도 가스의 3배에 달하고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수많은 업체를 옆에 끼고 있다. 그래서일까. 전력과 관련한 공기업 사장을 지낸 인사들은 유난히 청와대 실세로 지목받는 일이 많았다. 과거 한국전력공사(한전)에 몸담았던 김 아무개씨는 “내가 한전에 30년 있으면서 청와대랑 친하지 않은 사장이 오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정권이 바뀌면 내부 인사들도 ‘친(親)청와대’ 코드로 싹 바뀐다”고 전했다.

김중겸 전 한전 사장은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함께 대표적 MB맨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다. 현대건설에서 16년을 함께 일했던 사이이기도 하다. 그는 정권이 바뀐 이후 4대강 담합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된 곽진업 한전 감사는 경남 김해 출신으로 노 전 대통령과 고향이 같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가 ‘국세청장감’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으로 유명한 대표적 ‘친청와대’ 인사였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정권 실세가 요직을 차지하게 되는 것에 대해 일부에선 조용히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군사 정권 시절인 1970~80년대 한전에서는 직원들끼리 ‘힘센 군인 출신이 사장으로 와서 월급 좀 올려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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