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권력 5년 막후] #1. 드디어 피바람이…“당신 주변엔 빨갱이가 왜 이리 많아”
  • 소종섭│편집위원 ()
  • 승인 2013.07.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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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박영준 등 TK의 권력 장악 시나리오…허망하게 무너진 정두언 ‘한 달 천하’

권력의 무상함을 빗댈 때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고 한다. 아무리 붉고 탐스러운 꽃이라도 열흘을 넘기기 어렵고,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가라도 그 권세가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요즘에는 이것도 길다. 권불십년이 아닌 ‘권불오년(權不五年)’이다. 지금의 박근혜정부는 이전 이명박(MB) 정권에 대해 선 긋기에 나서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 MB 정권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사저널>은 MB 정부 시절 정치 현장을 지켜봤던 본지 편집국장 출신 소종섭 편집위원이 그때의 취재수첩을 정리하는 ‘이명박 권력 5년 막후’를 연재한다. 권력 이면에서 벌어졌던 암투와 갈등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균열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나눌 만한 권력의 파이가 무엇이고, 얼마인지 채 파악도 되지 않았는데 피바람이 불었다. 집권 5년을 하루로 친다면 막 자정이 지난 시점이었다. 권력은 태동되는 순간부터 비틀거렸다. 이명박 정권 5년의 시작이 그랬다.

정두언-이상득 권력투쟁은 단순한 힘의 쟁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에서 어떤 세력이 향후 권력의 축을 장악할 것인가 하는 세력 투쟁, 정권이 어떤 이념적 기초 위에서 권력을 운영할 것인가 하는 노선 투쟁, 나아가 보수 세력의 핵심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미래 비전을 가르는 분수령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정두언 그룹’이 이명박 정권의 핵심을 이루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2008년 6월16일 정두언 의원이 한나라당 의원총회를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당시 정 의원은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다. ⓒ 연합뉴스
‘인수위 실세’ 보도 이후 정두언 집중 견제

17대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후보를 움직였던 실무 핵심 인사들은 이른바 ‘실무회의팀’으로 불렸다. 매일 오후 2시, 캠프 회의실에 모여 회의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응 방향은 물론 그날 나오는 대변인 논평까지 이 자리에서 대부분 결정됐다. 사실상 대선전을 움직였던 핵심 그룹이다. 당시 팀원은 정두언 의원, 박형준 의원, 신재민 후보 특보, 이태규 전략기획팀장, 김해수 후보 비서실 부실장, 박재성 후보 특보, 이동관 캠프 공보실장 등이었다. 박영준 전 보좌관(이후 기재부 제2차관)도 두 번 정도 참석했다. 이 모임의 한 구성원은 “박 전 차관은 지역 조직 활동에 전념하겠다며 두 번 정도 모임에 나온 후 지방을 돌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권력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고 밤을 낮 삼아 살았다. 박재성 특보가 상징적이다. 그는 이명박 후보의 ‘BBK 동영상’을 넘기는 대가로 30억원을 요구한 여 아무개씨 등을 첩보 작전을 펼치듯 비밀리에 유인해 경찰에 넘기는 등 궂은일을 했다. 각자 역할이 있었다. 기획은 이태규, 감찰은 박재성, 정무는 박형준·김해수 식이었다. 각자가 아이디어와 논리, 전략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팀의 정점에 정두언 의원이 있었다.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MB는 정두언 의원을 불렀다. “인수위를 어떻게 운영하면 좋은지, 인수위원들은 누가 좋은지 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동안의 일처리 체계에서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정 의원은 박형준 의원, 곽승준 고려대 교수,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 등으로 인선 팀을 짰다. MB는 정 의원이 짠 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 당연히 ‘실무회의 팀원’들 모두 인수위에 진출했다. 바야흐로 ‘정두언 천하’가 열리는 듯싶었다. “실세는 정두언이다”라는 소문은 관가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여기저기서 줄을 대려는 움직임이 바빠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정두언 천하’는.

2007년 12월30일 한겨레의 기사가 회오리바람의 단초가 됐다. 해가 바뀌기도 전, 대선이 끝난 지 불과 10여 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두언, 인수위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이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2월30일 발표된 부처 파견 인수위 전문위원 인선을 두고 이명박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정두언 의원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 의원은 현재 이 당선인 비서실 보좌역으로 있다. 이날 발표된 각 인수위 파견 부처 공무원 34명 가운데 5명이 정 의원과 고교·대학 동기동창이었다.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으로 발표된 조원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정 의원과 경기고, 서울대를 같이 다닌 막역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경제2분과의 윤수영 산업자원부 국장도 정 의원과 경기고, 행정고시 동기다. 김준경 전 KDI 부원장(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과 이용준 전 북핵담당대사(외교통일안보분과 전문위원), 최중경 재정경제부 세계은행 상임이사(경제1분과 전문위원)도 정 의원의 경기고 동기들이다. (중략)

반론도 적지 않다. 이 당선인의 한 측근은 “이번에 발표된 각 부처 전문위원들은 각 부처의 수석국장급으로 해당 부처를 파악하는 데 최적임자들”이라며 “누가 뽑아도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의 선대위 전략기획팀에서 정 의원과 함께 일했던 한 인사도 “안팎의 견제가 많아 애초 정 의원이 짠 인사 안에서 많이 수정된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논란 자체가 정 의원의 힘을 방증하는 만큼 인수위 안에서 앞으로 권력투쟁 양상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 이 당선인의 다른 핵심 측근들이 정 의원을 본격적으로 견제해 마찰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수위, K고-S대 동문 잔치…정두언은 인수위 실세?’ 같은 제목의 기사가 몇 군데 언론에 더 보도됐다. 정 의원은 필자와 만났을 때 이에 대해 “부처에서 에이스들을 뽑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의도적으로 내가 사람을 챙긴 것이 아니다. 나는 능력을 보지, 출신을 보지 않는다. 당시 부처에서 추천하는 사람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오른쪽)은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정두언 의원 등 소장파와 갈등을 빚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정두언이 차기 대권 노리고 자기 사람 심어”

정 의원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 기사들은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는 낙엽과 같았다. 2008년 1월 초부터 인수위 주변에서 정 의원을 견제하는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출처는 모호했지만 대략 세 갈래였다.

우선 ‘색깔이 이상하다’는 말이었다. ‘정두언 그룹’에 대한 견제구였다. 항공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태규 인수위 전문위원,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정태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부산시의원을 지낸 박재성 특보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당사자들은 복장 터질 일이었지만 단순한 소문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대선 전 MB가 정두언 의원에게 “왜 당신 주변에는 빨갱이들이 많냐”라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이상득 의원도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농담일지라도 이런 언급은 당시 MB와 이상득 의원 등이 ‘정두언 그룹’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의 일단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호남’ 얘기였다. “정두언은 호남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은 전라남도 광주 출신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정가에는 이런 말이 나돌기도 했다. “정 의원 지역구의 호남 인사들이 정 의원을 적극 돕기로 했다. 그가 이번 2008년 4월 총선에서 전국 최고 득표를 해 대권에 나서도록 돕는 대신 정 의원은 호남을 돕기로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런 내용은 단순한 소문에 그쳤던 것이 아니다. 여의도 일대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는 사정기관 관계자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진위 여부를 알아봤을 정도다. 세 번째는 ‘정두언 대통령’ 소문이다. “정두언이 차기 대통령을 노리고 벌써부터 자기 사람을 심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소문이 정치권 물밑에서 꿈틀대던 2008년 1월11일 정 의원은 예고 없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 나타났다. 일주일 넘게 기자들의 전화를 일절 받지 않던 그는 이날 인사와 관련해 기자들과 문답을 나눴다.

기자 지난 정권에서 차관 이상 지낸 사람 중 장관 후보가 있는가?

정 의원 없는 것 같다.

기자  국무총리 인선 작업을 끝냈나?

정 의원 지난주 후보자군을 당선인에게 보고했다.

이때만 해도 정 의원은 당선인 비서실에서 인사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다.

기자들이 다시 인수위에서 정 의원을 만난 것은 보름 후인 1월25일이었다. 2주 만이었지만 분위기는 완전 달랐다. “(인사 관련해) 제대로 검증하려면 보름 정도는 걸린다. 빨리하면 리스크가 크다. 교수들의 경우 논문을 다 본다는 것인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느냐?” “국회의원들 가운데 배지를 던질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기자들이 전화를 많이 하는데 사실 나는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고백하러 왔다.”

1월11일에서 1월25일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정두언 의원은 하루아침에 무장해제당하고 권력 핵심에서 빠르게 추락한 것일까.

정 의원은 필자에게 “MB에게 불려가 박영준 등이 있는 자리에서 1시간 이상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이후 인사 작업에서 배제되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의 추락은 겉으로는 국세청과 관련이 있다. 정 의원은 당시 국정원과 국세청에, 대선 전에 진행했던 ‘이명박 뒷조사’ 자료를 인수위원회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국정원은 대강의 자료를 정 의원측에 제출했으나 국세청은 줄 수 없다며 버텼다. ‘국정원은 내는데 국세청은 왜 안 내느냐’고 압박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상득 의원(왼쪽)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등 TK 세력이 MB 정부의 권력을 장악했다. ⓒ 연합뉴스
“‘국세청 자료 요구’ MB도 알고 있었다”

박재성 전 특보가 필자에게 한 말이다. “내가 한상률 청장을 직접 만나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한 청장은 ‘문건이 있는 것 같다.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나는 (정 의원이) 또 음해당할까 봐 만남을 주선하지 않았다. 이런 활동 내용은 모두 정 의원을 통해 MB에게 사전에 보고했던 사항이다. 그런데 며칠 뒤 MB가 정 의원을 불러 ‘왜 뒷조사하느냐’며 야단을 쳤다. 우리가 MB와 가족의 뒷조사를 한다고 의심했다. 분명히 보고하고 한 일인데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갔다. 생각해봐라. 우리가 당선시킨 사람을 왜 우리가 뒷조사를 하나.”

MB에게 사전에 보고한 일이라면 정 의원은 왜 MB가 꾸지람을 할 때 반박하지 못했던 것일까. 박 전 특보는 “정 의원은 경기고-서울대를 나와 고시에 합격한 엘리트다. 똑똑하지만 의외로 약한 면도 있다. 그때 정 의원이 MB에게 할 말은 하고 세게 나갔어야 했는데 꾸지람만 듣고 왔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이 일은 정 의원이 추락하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이후 ‘류우익·박영준 팀’에서 인선과 검증을 동시에 진행했다. 그러면서 박영준 전 차관이 조직한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이 대거 청와대에 포진했다. 선진국민연대와 관계돼 청와대 행정관급으로 포진한 인사만 20여 명이 넘었다. 부처에서 파견된 인사들을 뺀 순수 정무직 개념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인사들 가운데 이 정도 세력을 갖고 있는 곳은 없었다. 그야말로 ‘박영준 천하’ ‘선진국민연대 천하’였다. 불과 10여 일 만에 일어난 권력 내부의 변화였다.

이때부터 인사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부 인사들은 청와대에 근무한다는 것만 알 뿐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직급을 받는지 등도 모른 채 청와대에 출근했다. 직급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 인사가 청와대를 뛰쳐나오는 일도 벌어졌다. 인사와 검증을 같은 인물이 진행하다 보니 제대로 검증이 될 리 없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총체적인 인사 난맥이었다. 그것은 ‘촛불 시위’로 이어질 민심 이반을 잉태시키고 있었다.

정두언의 실각은 앞에서 거론한 이런저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전부일까? 어쩌면 그런 이유들은 표면에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MB 정권 핵심에서 ‘권력은 대구·경북(TK) 것’임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두언의 실각 과정은 TK 세력이 권력 내 이른바 ‘호남·소장파 연합 세력’을 쳐내는 과정이었다. 실제 정 의원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TK 쪽은 거의 없었다. 반면 정 의원이 밀려난 후 이상득·최시중·박영준 등 TK 핵심들은 권력을 완전 장악하고 ‘영포회’ 시대를 열었다. 정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정 의원이 밀려난 과정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TK의 권력 장악 과정이었다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두언 그룹의 몰락은 MB 정권의 이념적 기반을 허물고 권력 운영의 실무 능력을 대폭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전은 사라지고 이권을 쫓는 음습한 문화가 움텄다. 집권 초에 불거진 균열로 MB 정권은 5년 내내 실세들 간 갈등을 일으키며 결국 모두가 패배하는 결말을 맞게 된다. 그것은 승자가 없는 불행한 싸움이었다.  

* 다음 호에는 제2화 ‘정두언 그룹을 각개격파하라’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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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MB권력 막후 5년


#1.  드디어 피바람이…“당신 주변엔 빨갱이가 왜 이리 많아”
- 이상득·박영준 등 TK의 권력 장악 시나리오…허망하게 무너진 정두언 ‘한 달 천하’



#2. 함께 가자더니 하루아침에 배신을…”
- 이재오 향한 정두언의 분노…TK는 ‘55인의 반란’ 초기에 진압


#3. 읍참마속(泣斬馬謖) 후 노무현 세력 척결 나서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MB 집권 첫해 중심 못 잡고 허둥지둥


#4. 봉하마을 향하는 칼끝 최종 타깃은 노무현
- 진보 단체 돈줄 색출…‘박연차 게이트’ 광풍 몰아쳐


#5. MB 검찰, 지관 총무원장 계좌 뒤졌다
- 노발대발한 총무원장, 불교계 총동원령 내려


#6. 한상률의 배신, 노무현 등에 비수 꽂아
- TK 세력과 손잡고 ‘정치성 세무조사’…부하의 보복에 자신도 거꾸러져


#7. 이상득은 친인척 관리 대상 위에 있었다
- MB도 어쩌지 못하는 ‘궐 밖 권력’ 김윤옥 여사와 SD 부인 최신자씨 간 갈등도


#8. ‘대군’들의 밀약, 촛불에 한 줌 재로 사라져
- 전·현직 대통령 ‘형님’들 핫라인…2007년 대선 전후 가동


#9
. 검찰 수사 나서며 회장 퇴진 압박
- ‘왕차관’ 박영준, 핵심 인사들 면접 보듯이 일일이 접촉


#10. 웃음 뒤에 감춰둔 ‘비수’는 예리했다
-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불편했던 MB-박근혜 “실제 둘 관계 나쁘지 않다”는 얘기도


#11. 암호명 ‘동해 일출’ “VIP를 독도로 모셔라”
- 김효겸 전 청와대 비서관이 전하는 이명박 정권 뒷얘기


#12. 정권 실세들 떡고물 챙기려 ‘4대강’ 기웃기웃
- MB, 2008년 6월 ‘대운하 포기’ 언급 이후에도 논란 이어져


#13. 정권 끝날 때까지 “믿을 건 내 사람뿐”
- MB 정권, 사정·정보·인사 등 핵심 라인 ‘고대·영남’ 출신 독식


#14. ‘박근혜 대항마’, 날개도 못 펴고 스러지다
- 정운찬의 총리 취임 직전 즉흥적 ‘세종시 수정안’ 한마디로 권력 쟁투 가열


#15. 요란한 구호 속 한몫 챙기기 바빠
- 5년 내내 ‘동반 성장’ ‘녹색 성장’ ‘중도 실용’ ‘공정 사회’ 등 키워드만 난무


#16. 궐 밖에선 최고 권력자였지만…
- MB 정권 실세의 상징 ‘6인회’ 멤버, 잇따라 몰락의 길 걸어


#17. 실세들이 설친 자리엔 빚더미만 남아
- MB 정권 ‘자원 외교’, 공기업들에 수조 원대 부채 떠안겨


#18. KT·포스코는 정권의 전리품
- 민간 기업을 낙하산 집합소로 만들어…버티면 검찰권 동원해 압박


#19. 정운찬·김태호·오세훈 제 무덤 파거나 포격에 무너져
- 실패로 끝난 MB의 ‘후계 프로젝트’…‘박근혜 대항마’ 부각되기도 전 좌초


#20. 강남 ‘큰손’ 부동산업자에게 땅 비밀 거래 꼬리 잡히다
- 시사저널, ‘내곡동 사저 단독 공개’로 MB 정권 강타…특검도 의혹 해소 못해


#21. 거물들 모셔왔으나 성과 없이 내리막길
- ‘친기업주의’ 정책 펼치며 해외 유명인들 영입…권력 내부에서는 균열 조짐


#22. 잇단 북 도발에 ‘병역 면제 정권’ 조롱
- 천안함·연평도 사태로 ‘안보 무능’ 드러나…컨트롤타워 부재 따른 혼선에 지지율 뚝


#23. ‘MB맨’ CEO들 빚더미 안기고 퇴장하다
- 지난 정권 5년간 공기업 부채 244조원 증가…4대강 사업 등에 돈 쏟아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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