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기대 기우뚱거리며 걷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7.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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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CEO스코어 공동 조사…한국 경제, 삼성 의존 심화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삼성그룹이 대한민국 최고의 파워를 가졌다는 뜻이다. 삼성이 경제 측면을 넘어 정치·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힘의 원천은 돈이다. 지난 몇 년간 삼성전자가 올린 기록적인 실적은 ‘단군 이래’라는 수식어를 계속 경신해왔다. 단군 이래 최고의 단일 기업 매출, 순이익 등.

최근 발표된 삼성전자의 2분기 매출은 57조원, 영업이익은 9조5000억원이다. 이 기록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에서는 사상 초유, 전인미답의 세계를 계속 개척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인 JP모건이 ‘삼성의 3분기 전망이 불확실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자 삼성전자 주가가 폭락하고 코스피가 주저앉았다.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한국 증시가 휘청거리고, 다음엔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는 허약한 구조가 다시 한번 드러난 것이다.

ⓒ 일러스트 김세중
그동안 시장에서는 줄기차게 ‘삼성 착시’에 대해 경고해왔다.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기업들이 말라가는데 유독 삼성의 실적만 좋아서 전체 생태계가 처한 상황을 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시사저널>은 기업정보 제공업체인 CEO스코어에 의뢰해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실상을 알아봤다.

이번 조사에서는 삼성그룹이 영위하는 업종 중 매출액 비중이 큰 IT 전기전자, 보험·여신금융·증권, 석유화학, 조선중공업, 건설 등 의 업종만 골라 해당 업종 전체의 데이터와 비교했다. 식음료 판매업이나 의류 제조·판매, 놀이공원 운영, 숙박업, 사설 경비 제공 같은 서비스업도 삼성이 하고 있지만 이런 분야는 개별 업종 실적 비교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삼성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303조원이다. 지난해 국내 총생산액(GDP)은 1272조원이다. 삼성의 매출액이 GDP의 23.8%에 달하는 셈이다. 삼성의 매출액은 해외 생산·판매도 포함한 것이라 GDP와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삼성의 한 해 살림 규모가 대한민국의 4분의 1쯤 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삼성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1263조원. 이 중 삼성그룹의 상장사 시가총액은 338조원으로 26.76%를 차지한다. 2005년에는 삼성그룹의 시가총액 비중이 전체의 19.76%를 차지했다. 2005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이 기간 동안 137.8%가 늘어났지만 전체 시가총액은 75.7% 성장하는 데 그쳤다. 삼성 계열사의 시가총액 증가율이 두 배 가까이 높다는 점은 삼성이 다른 국내 기업보다 경영을 잘했고, 그 결과 기업 가치가 두 배 가까이 올랐다는 의미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한국 경제의 삼성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일본·독일 등 다른 선진 국가에서 시가총액 1위 기업이 전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 안팎이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현실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올 만한 대목이다.

삼성그룹 시가총액, 전체의 27% 차지

개별 산업군에서도 삼성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특히 IT 전기전자, 조선·중공업, 보험·증권 분야에서는 삼성의 지배력이 확실하다. IT 전기전자 분야는 삼성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업종 전체 영업이익의 90.5%를 차지했고, 삼성전자의 당기순이익이 업종 전체의 97.9%에 달한다.

조선·중공업과 보험·증권 분야에서도 삼성의 위상이 높지만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삼성그룹의 양대 축은 전자와 금융이다. 이 중 금융의 영업이익은 전체 동종업계의 25.9%에 그친 것. 삼성전자의 위상에는 한참 못 미친다. 반면 현대가의 아성으로 불리는 조선·중공업 분야에선 삼성이 전체 영업이익의 33.9%를 차지해 현대중공업그룹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별 힘을 쓰지 못하는 분야는 건설과 석유화학 업종이다. 건설은 삼성이 업종 전체의 영업이익에서 15.3%, 석유화학에선 5.7%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아파트 브랜드인 래미안, 제일모직의 빈폴, 세콤 같은 사설 경비 사업, 위락시설인 에버랜드 등은 모두 해당 업종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이렇게 각 분야에서 삼성 브랜드가 1위를 달리면서 자연스럽게 ‘삼성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늘의 삼성그룹을 만든 일등 공신은 삼성전자다. 문제는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의존도가 높고, 한국 증시와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때문에 외국계 보고서 한 장에 한국 증시가 휘청거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7일 JP모건이 ‘갤럭시S4의 판매량이 예상보다 못하다. 3분기 이후 영업이익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자 삼성전자 주가가 6% 넘게 빠지면서 시가총액 15조2000억원이 날아갔다.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를 흔드는 뇌관이 된 것이다.

문제가 된 JP모건의 보고서 파문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실적 그 자체보다는 미래에 대한 전망 때문”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는 “주가는 심리다. 보고서에 신성장 동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 사장단이 실리콘밸리에서 연수를 받았다.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삼성 내부에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불안할 것이다. 한국 대표 기업의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이 없다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2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쳐서가 아니라 ‘향후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기에 주가가 빠졌다는 진단이다.

휴대전화에 끌려다니는 한국 경제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가 삼성전자의 실적에 끌려다니고,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실적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삼성그룹 전체 고용 인원의 34.8%를 차지했다. 삼성전자 매출액이 그룹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6%에 달했다. 삼성그룹의 절반가량이 삼성전자에 쏠려 있는 것이다. 그 삼성전자의 생명줄은 스마트폰이다. 지난 2분기 실적 발표를 보면 IM(모바일 사업 부문 포함) 사업부가 34조원 매출에, 6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는 삼성전자 2분기 매출 57조원과 영업이익 9조5000억원에서 각각 60% 이상, 70% 이상을 차지한다. 삼성그룹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대기업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해당 산업이 호황일 때 대기업의 비중이 크면 클수록 시장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실적이 나쁠 때는 골칫거리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의 휴대전화 시장 라이벌이던 노키아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호령하던 1등이었지만 스마트폰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주도권을 삼성과 애플에 넘겨주고 침몰 직전에 몰려 있다. 임희정 실장은 “삼성과 노키아, 한국과 핀란드는 다르다. 경제 규모나 전체 산업계 포트폴리오도 달라서 참조는 할 수 있어도 삼성과 노키아를 맞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혔다.

타이완은 수많은 부품업체가 탄탄하게 버텨주고 있지만 반도체라는 큰 시장에서 삼성과 같은 기업을 배출하지 못했다. 큰 기업이 버텨줘서 얻는 이득도 있는 것이다. 또 세계 1등 기업일수록 시장 변동성에 강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삼성과 같은 특정 기업에 대한 편중 현상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 실장은 “기업·정부·국민의 관점이 같을 수 없다. 국가 경제라는 큰 틀에서 합의를 도출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역대 정권과 삼성 딜레마

올해 등장한 박근혜정부의 과제는 경제 측면에서 신성장 동력원을 찾아내는 것과 양극화로 대변되는 경제의 과점 현상을 완화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벤처·영화 등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반면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별다른 성장 동력을 발굴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앞세워 신성장 동력을 찾고 ‘갑의 횡포 근절’을 명분으로 과점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년간 삼성이 성장한 과정을 보면 정부 정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삼성은 노무현 정부 때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더 성장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삼성은 GDP 성장률의 두 배 넘는 자산 증가율을 기록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삼성은 GDP 성장률을 앞서는 자산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만큼은 아니었다. 삼성그룹의 매출액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내 GDP 대비 20%를 넘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내건 ‘친기업 정책’을 재벌그룹 중에서도 삼성이 제일 잘 활용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삼성 편중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문제 제기가 있었다. 김형태 한국자본시장 연구원장은 지난 4월 한 강연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기업들은 부채 비율, 유동성, 자기자본에 관해 추가적인 규제를 받고 있다. 삼성이 중요하면 그만큼의 규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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