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주를 흔들어라?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3.07.1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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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보고서 한 장에 추락한 삼성전자 주가

1993년 6월7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했다. 그리고 20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반도체 생산에서 글로벌 1등 브랜드로 도약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국내 시가총액의 약 20%를 차지하는 ‘황제주’ 삼성전자 주가가 하루 동안 6% 넘게 떨어진 것이다. 원인은 신경영 선언 20주년 당일 한 외국계 증권사가 발표한 17쪽짜리 보고서였다.

JP모건은 “올해 갤럭시S4의 판매량이 당초 계획만큼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며 목표 주가를 종전 주당 210만원에서 190만원으로 낮췄다. 창사 이후 최대 호황기를 구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목표가를 낮춘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외국인들은 즉각 반응했다. 시장에서 매물 폭탄을 쏟아냈다. JP모건이 신경영 20주년 기념일을 디데이로 삼아 ‘삼성전자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JP모건 보고서는 하루 만에 삼성전자 시가총액을 약 14조원 날려버렸다. 삼성전자의 주력 수익원인 휴대전화 판매량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부각돼서다. JP모건 창구에서만 17만여 주의 매물이 쏟아졌다.

JP모건은 족집게인가, 음모론 진원지인가

JP모건은 갤럭시S4의 올해 판매 추정치를 종전 7900만대에서 5900만대로 낮췄다. 지난 4월 말 출시된 이후 한 달 만에 세계에서 1000만대를 팔아치웠지만 판매 둔화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JP모건은 삼성전자에 스마트폰용 카메라 부품 등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를 통해 확인해보니, 월 주문량이 종전 1000만대 수준에서 최근 700만~800만대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한 시중 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 센터장은 “삼성전자 주식은 거액 자산가의 투자 대상 1호인 데다 각종 주식형 펀드에도 빠지지 않고 편입돼 있어 시장에 미친 충격이 매우 컸다”고 말했다.

JP모건을 필두로 한 외국계와 달리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삼성전자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주당 130만원을 밑돌 때마다 추가 매수로 대응했다. 삼성전자 임원도 “갤럭시S4의 수요 증가에 대비해 베트남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있을 정도인데 휴대전화 주문량이 급감했다는 지적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삼성전자의 고민은 3~5년 이후의 먹거리에 대한 것일 뿐,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JP모건과 국내 기관 간 대결은 JP모건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가 7월 초 발표한 2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매출은 57조원, 영업이익은 9조5000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7% 급증한 사상 최고 실적이지만, 증권사의 예상 영업이익에는 못 미쳤다. 금융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가 증권사 26곳이 추정한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을 평균해보니 10조1869억원으로 집계됐다. 오히려 JP모건의 전망치(9조7250억원)가 맞아떨어졌다. JP모건의 분석력이 힘을 받자 삼성전자 주가는 실적 발표일에 4% 추락한 데 이어 이튿날에도 3% 넘게 빠졌다.

지난 6월 초만 해도 주당 160만원을 넘보던 삼성전자가 한 달여 만에 120만원대까지 떨어지자, 시장에선 다양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우선 JP모건의 ‘족집게’ 같은 분석력이 놀라웠다는 찬사가 들렸다. 이와 함께 미국 대표 기업인 애플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삼성전자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음모론, JP모건 등 외국계의 매도 보고서가 공매도 세력과 연계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매도는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했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차익을 얻는 금융 기법이다.

삼성전자에 대해 호평 일색이던 국내 증권사 중에서도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목표가를 연쇄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동양증권은 삼성전자 목표가를 기존 20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낮췄다. 박현 연구원은 “삼성전자 주가가 과도한 우려로 선제적으로 하락한 건 맞지만 상승 반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종전 190만원에서 175만원으로, 하이투자증권은 19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각각 내렸다. SK증권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부문에서 수익성 저하가 예상된다”며 목표가를 20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조정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도 43조원에서 39조원으로 10%가량 낮췄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SK증권과 같은 폭만큼 목표가를 내렸다. 도현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 사업의 성장성 둔화와 위험 증가로 목표 주가 순자산비율(PBR)을 2.2배에서 2.1배로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마케팅 비용이 늘어나면서 실적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며 “진실과는 상관없이 스마트폰 산업에 대한 기대도 낮아졌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내부에선 자성론도 터져 나오고 있다. JP모건이 삼성전자에 대해 ‘제3자적 시각’을 견지할 때 국내 증권사는 지나치게 ‘장밋빛’ 평가 일색이었다는 것이다. 낙관적인 실적 전망으로 시장 기대치를 한껏 높였던 게 주가 급락 사태로 이어졌다는 반성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는데도 주가가 급락한 것은 증권사가 너무 높게 추정했던 실적 전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회사 임원은 “국내 애널리스트는 투자자 항의를 의식해 매도 의견을 내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며 “오죽하면 증권사들이 ‘중립’ 의견을 낼 때 투자자가 이를 매도로 받아들이겠느냐”고 말했다.

‘외국인 놀이터’로 전락한 한국 증시

삼성전자의 상장 주식 1억4729만여 주 중 외국인 보유 비중은 47.6% 선이다. 지난 3월6일 50.5%로 올해 최고점을 찍었다. 국내 글로벌 대표 기업의 외국인 비중이 이처럼 높다 보니 외국인이 ‘팔자’ 분위기로 돌아서면 증시 전체가 출렁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외국인은 외국계 보고서를 신뢰하고 있어 이번 ‘JP모건 보고서 사태’와 같은 일은 언제든 다시 생길 수 있다. 외국계 보고서가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뒤 호황기를 맞고 있던 1994년, 메릴린치는 ‘반도체 공급이 과잉 상태여서 삼성전자 주가에 부정적’이란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당시 주당 13만원을 넘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 한 장의 보고서 때문에 8만원대로 추락했다.

삼성전자는 이 보고서가 틀리다는 사실을 실적으로 증명했다. 더 많은 이익을 실현해 1995년엔 17만원대까지 주가를 끌어올렸다. 

JP모건 역시 2009년 잘못된 추정을 내놓은 적이 있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손실이 788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11조5776억원의 이익을 기록해 시장 혼란만 부추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2011년엔 삼성전자 목표가를 82만원으로 유지했지만 주가는 100만원대를 넘나들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결국 국내 증권사가 객관적인 기업 평가를 통해 투자자 신뢰를 쌓고 국내 증시도 다양한 연·기금 투자 확대로 ‘외풍’에 견딜 수 있는 방어막을 충분히 구축하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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