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도청은 ‘은밀하고 위대하다’
  • 최정민│파리 통신원 ()
  • 승인 2013.07.1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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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싫어하지만 정보부 활동은 지지하는 프랑스인의 이중성

프랑스의 영화감독 뤽 베송이 연출한 영화 <니키타>는 사형 언도를 받은 죄수가 정보국의 제안으로 요원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개봉 당시 ‘국가의 폭력’이라는 주제 때문에 주목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끈 부분은 냉혹하고 은밀한 프랑스 정보부의 모습이다. <니키타>에서 살짝 속살을 드러낸 프랑스 정보부는 좀처럼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그들이 최근 프랑스판 ‘프리즘’ 보도로 세계 언론의 표적이 되었다.

7월4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일곱 개의 프랑스 정보기관이 미국과 유사한 형태로 전자통신 정보를 감시·도청해 자료를 보관했고, 이를 각 정보기관이 열람했다”고 보도했다. 르몽드의 보도 직후 프랑스 시사주간지인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저널리스트 벵상 죠베르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지난 2001년 에셜론(Echelon) 사건 때 자신이 썼던 기사를 다시 올렸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의 조직적인 도청과 감청은 이미 30년 전부터 시작됐다. 현재의 대외정보국인 ‘SDECE’는 1974년 프랑스의 남부 도시 돔(Domme)에 직경 25m의 위성안테나를 설치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국제전화가 보편화된 뒤 프랑스의 첩보 능력은 미국·영국·독일 등 다른 선진국들의 조롱을 받는 수준이었는데 당시 해군 제독이었던 피에르 라코스트 장군이 미테랑 대통령을 종용해 감청 시설을 증설했다. 걸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국제 첩보 체계를 증설할 수 있도록 해준 ‘파란불’이 됐고 독일의 연방정보국(BND)과의 연계도 이뤄졌다.

프랑스에서도 정보 당국이 민간인들의 데이터를 수집해 감시·도청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 EPA 연합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프랑스인들이 이번 사태를 보는 반응은 어떨까. 르몽드는 “민간인을 도청한다는 점에서 파장을 불러왔지만, 이런 업무가 대테러 목적으로 필요하다는 부분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정보기관은 5개에서 7개로 분류될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하며 또한 은밀하다. 대테러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DGSE(대외안보총국)와 내무부 산하의 대내정보총국(DRSI)을 비롯해 국방부 산하의 DRM과 DPSD, 세관과 연계된 DNRED,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금융 거래와 관련된 Trafin 등 분야와 소속이 다양하고 요원 및 규모 또한 베일에 싸여 있다. 경찰청 정보국의 전신인 RG의 뿌리는 나폴레옹 시대인 18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RG의 강령은 ‘황제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였다.

“민간인 도청도 대테러 목적이라 믿는다”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인들이 태생적으로 감시받는 것을 싫어하는 국민이라는 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감시 카메라’다. 프랑스는 세계적으로 감시 카메라를 가장 적게 설치한 나라 중 하나다. 국민 14명당 한 대꼴로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이웃나라 영국은 수도 런던 광장을 수백 개의 거미줄처럼 얽힌 시선으로 지켜본다. 반면 프랑스는 일반 감시 카메라는 물론 도로의 과속 감시 카메라 설치에도 예민하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전국 도로에 설치된 이동식 카메라는 933개, 교차로의 신호 위반 단속 카메라는 659개에 불과하다. 그것도 지난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 때 교통사고율을 줄이려고 가까스로 증설에 성공해서 이 정도가 된 것이다.

감시를 싫어하는 프랑스인들이 정보기관의 존재에 대해 동의하는 점은 역설적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닉 얍은 “국가의 간섭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프랑스인들의 이중적인 정서 때문”이라며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잔 다르크의 신앙심에 버금간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믿음이 깔려 있다. 국가 정보기관은 국익을 대변하며 정보기관들의 행동과 임무는 철저히 프랑스 공화국의 이익을 위한 행위인 만큼 명예롭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첩보 임무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경우라도 임무 당사자보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치인들이 비난의 화살을 맞는다.

2009년 8월8일 스파이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클로틸드 레이스. 프랑스 정보부는 레이스의 석방에 관여했다. ⓒ EPA 연합
자국 정보기관의 첩보 행위 명예롭게 여겨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 대선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클리어스트림 스캔들’이다. 당시 프랑스 정보국의 베테랑 롱도 장군은 타이완 프리깃함에 대한 커미션으로 지목된 비밀 계좌를 추적했다. 이것은 정치적 목적이 아닌 첩보 업무였다. 그런데 대선이 조기에 과열되면서 2004년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를 다투던 사르코지와 도미니크 드 빌팽 사이에 갈등이 커졌고 드 빌팽이 롱도 장군의 첩보 정보를 사르코지 제거용으로 사용해버렸다. 롱도가 보고한 성과가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모든 자료가 압수수색되자 롱도 장군측은 “명예를 더럽혔다”며 크게 분노했고 여론도 그의 분노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실제로 롱도는 프랑스 정보부에서 전설적인 존재였다. ‘자칼’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던 세계적인 테러리스트 카를로스를 1994년 수단에서 체포한 이도 그였다.

복잡하고 세분화된 프랑스 정보부는 독재를 매우 조심하는 프랑스인들의 정서가 반영된 시스템이다. 정보기관들이 기관별로 나뉘어져 권력의 독점을 막는다. 이것은 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에 차이를 둬 다수당과 대통령의 출신 당을 다르게 하는 프랑스의 복잡한 정치 구조와 같다. 지난 2008년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정보기관을 통폐합하고 자신이 직접 보고를 받겠다고 선언하며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와 같은 형태의 ‘국가정보국’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보기관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일 뿐, 여전히 모두 안갯속일 뿐이다.

이번 르몽드 보도 이후에도 프랑스의 대외정보국은 계속 침묵 중이다. 지난 정부에서 일어났던 ‘불가리아 간호사 납치 사건’이나 콜롬비아의 ‘잉그리드 베탕쿠르의 석방’, 이란에서 시위 영상을 인터넷으로 전송한 혐의를 받고 억류됐던 프랑스 학생 클로틸드 레이스의 석방 과정에서 제기된 거액의 보상금 지급설 및 테러리스트와의 맞교환설 등 정보부가 언급해야 할 예민한 사안들에 대해 입장을 밝힌 쪽은 ‘깨 독세(quai d’Orsay, 프랑스 외교부가 위치한 오르세 강변로를 지칭)’라고 불리는 외교부였다. 정보부는 언제나 외교 커튼 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국가정보원처럼 정보부의 수장이 정치적인 이유로 외교 문건을 공개하는 행동은 프랑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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