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된 딸이 엄마를 그리는데, 그 엄마는 곁에 없고…”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7.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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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앓다 간 어머니 이야기 펴낸 심재명 명필름 대표

명필름이 제작한 최근 영화를 가만히 보면 가족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당을 나온 암탉>은 눈물 훔치며 공감하게 만드는 소소한 가족 간의 갈등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그 영화를 만든 데는 심재명 대표(50)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심 대표가 ‘엄마 생각’으로 힘들었던 시절 만든 영화라서 더욱 그렇다.

심 대표는 남들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7년 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과 아버지, 남매, 딸을 등장시킨 에세이집 <엄마 에필로그>를 펴냈다. 심 대표의 가족 이야기다.

7월10일 서울 종로구 명필름 사무실에서 심재명 대표가 제작한 영화 장면이 담긴 액자 옆에 섰다. ⓒ 시사저널 전영기
남의 집안 이야기를 듣는데, 남 일 같지 않을 때가 있다. 영화를 보며 공감하듯 마음이 짠해지는 것이다. 심 대표의 어머니 이야기가 그랬다. 루게릭병을 앓다가 몸무게 30kg, 키 150cm로 쪼그라들어 세상을 떠났다니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다. 심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엄마의 말, 내 엄마의 상처, 내 엄마가 누린 소소한 행복, 내 엄마의 체온, 내 엄마의 손길이 거기 있기에’(신경숙 작가 서평 중) 공감하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필름의 영화를 보면서 울컥했던 경험이 있다면 아마 심 대표의 속 깊은 생각이 영화에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개봉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엔딩 타이틀에 올리는 도움 주신 분들 이름 사이에 어머니 이름을 올린 일도 털어놨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서울시 종로 서촌으로 이사한 후 유난히 많이 걸어 다닌다. 통인시장에도 자주 간다. 얼마 전 그의 어머니가 열다섯 살 때 통인동에서 혼자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고 미소를 지었을 어느 골목에서 ‘외할아버지의 지인 집에 혼자 머물며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면서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었겠지’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는 어머니의 신발이 밟았을 그 길 위로 매일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다.

<접속>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거쳐 최근 <건축학개론>에 이르기까지 제작하는 영화마다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찬사를 받는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서울시 필운동 사옥에서 그를 만나 힘겨운 반성의 시간을 거치며 반추해낸 ‘엄마와 나,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들어봤다.

 

ⓒ 마음산책 제공
왜 갑자기 7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꺼냈나.

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지나던 시기, 갱년기 여성과 사춘기 여성이 한 집안에서 날을 세워가며 갈등했다. 그 당시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는데, 오십이 된 딸이 여든 살 먹은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 엄마가 지금 없다. 오랫동안 아쉬워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며 엄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책을 내고 상실감 같은 것이 얼마간 치유됐나.

거울이나 우물을 바라보듯이,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치유가 됐다기보다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내 안에 헝클어져 있던 생각들이 정리돼서 좀 홀가분해졌다고 할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남들한테 잘 하는 타입이 아닌데, 내 어린 시절부터 낱낱이 이야기해버리는 바람에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봐줄지 쑥스럽고 고민도 많았다. 그런데 책을 읽은 분들이 나란 사람하고 친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말들을 해 와서 다행이다.

성장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영화사 대표가 책을 냈으니 혹시 영화를 염두에 둔 건 아닌가.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그런 제안이 들어와도 그럴 생각은 없다. 엄마가 루게릭병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아파하는 동안 가족 또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걸 잊을 수 없어서 다른 환자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책의 인세 전액을 루게릭병 환자 가족을 위해 기부하기로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숨겨뒀던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공개한 것이 뜻밖이다. 이를테면 어머니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도 그대로 밝혔다.

처음엔 그런 얘기를 쓴다는 것부터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숨기면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엄마에 대한 기억들도 생생하게 남기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어머니를 잔소리꾼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생활습관을 좀 고치려 했나.

정말 심하게 잔소리를 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무슨 말을 할지 알 정도가 되었다. 자존감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에 대들기도 했다. 나는 문제가 있어, 나는 안 될 거야, 나는 집안의 원수 등 그런 생각만 들었으니까. 고집 세고 말 안 듣는 큰딸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잔소리 들었다고 생활습관을 고치지는 않았다. 다 커서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면서 엄마와 단짝이라고 할 만큼 친해졌다. 요즘 사육하듯 또는 이해타산적으로 강요하며 키우는 것보다 엄마가 그렇게 한 것이 나았다고 본다.

그 엄마의 손녀가 커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는데, 어떤 잔소리인가.

할머니 모습 보면서 자라서 그런가? 딸은 나와 반대로 무던한 편이다. 사춘기도 심하게 겪지 않았고, 나로선 좋은 아이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참는 스타일로 사려 깊은 아이다. 오랫동안 할머니와 지낸 탓인지 어쩌다 나와 마트에 갈 때면 “엄마, 꼭 필요한 것만 사요. 돈 좀 아껴 써요”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젊었을 때 영화사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을 시작했다던데.

대학 졸업하고 출판사에 넉 달 정도 다녔다. 그 뒤 영화 일을 하고 싶었던 차에 서울극장 겸 합동영화사라는 곳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응시했다. 영화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카피도 쓰고 홍보도 하는 등 전반적인 영화 마케팅 일을 했다. 극동스크린이라는 곳까지 합쳐 영화사 마케터 실무를 4년 정도 하고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다가 영화사를 차리게 됐다.

광고 카피를 쓴 사람이라면 글에 포장을 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서평들을 보면 담백한 글에 인상이 깊었다고들 한다.

투병하면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세상에 꺼내면서 거짓말하거나 과시한다는 것은 못할 짓이다. 나의 내밀한 기억,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것인데 담담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고통을 과장하거나 슬픔을 과장하거나 그런 것은 이 책의 의도와 맞지 않다.

영화 제작자인데, 직접 기획해서 만든 영화는 어떤 것들인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실제 경기를 보고 나서 이걸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영화로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기획이나 제작이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고, 어떤 소재나 주제를 어떤 방식, 어떤 장르, 어떤 감독을 세워 만들 것인가 고민하면서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시나리오를 고르는 기준이나 철학 같은 것이 있지 않나.

굳이 기준을 말하자면 보편적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진심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야기의 완결성, 기승전결 같은 구성에 관한 것들을 본다.

<마당을 나온 암탉>도 엄마의 헌신을 담은 내용이다. 애니메이션인데도 실험하듯 명필름이 제작한다고 했을 때 우려 섞인 시선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왜 밀어붙였는지 이해가 좀 된다.

애니메이션이라 해도 소재나 주제가 좋았으니까 하려고 마음먹었다. 가족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딸과 손잡고 영화를 보고 만족할 만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이 외국 애니메이션만 봐야 하나 하면서 찾았던 결과물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에 대한 소망도 있었고, 안 해본 장르나 매체를 해보고 싶어서 시도한 측면도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심 대표 가족 이야기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그 작품을 제작할 때 엄마가 한창 투병하고 있었다. 모성이나 엄마의 존재,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할 때였는데 엄마가 힘들게 투병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 동화책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그랬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도 엄마 때문에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들 때도 어머니가 투병 중일 때였다.

그 영화도 여성끼리의 연대, 고단한 여자들의 신산한 삶을 다뤘다. 아줌마 선수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이야기가 남들보다 훨씬 더 깊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가족을 다룬 이야기를 많이 만들었다.

그렇다고 감독에게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가족 간의 아픔, 가족 내 여성의 이야기 등 이런 것들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한 진보 언론이 기획 기사를 쓰면서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20대 여성을 ‘진주녀’라고 칭한 것과 관련해 트위터에다 ‘빡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해서 화제가 됐다.

여성을 그런 식으로 분류한다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한국 여성들은 재능이나 사회성이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OECD와 비교해 남녀 간 임금 격차가 심하거나 취업에서 여전히 불리한 것은 문제다.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 재취업도 어렵다. 재취업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직업도 굉장히 제한적이고,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고 마초적이다. 그런 것들이 여성으로서,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걱정스럽다.

영화계에서는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지 않나.

성비로 보면 옛날보다야 괄목상대할 상황이 됐다. 감독 등 영향을 미치는 여성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지만 영화과에 여성이 50%를 차지하는데, 주류 영화계에서는 10%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여성들은 주로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영화 1억명 관객 시대인데, 영화계를 어떻게 보나.

불황일 때 거꾸로 영화가 잘된다는 말이 있는데, 한국이 아직도 경제적으로 불황이다 보니 영화가 잘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쉬운 건 문화의 다양성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양적 성장도 좋지만 독과점 문제나 빈익빈 부익부, 이런 것들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왜 다양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 쏠림 현상이 있는데, 그 반대편에서는 소외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옛날보다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고 처우도 좋아졌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덜 전문화되고, 개선되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문화재단을 만들고 전액 무상 영화학교를 개설하는 등 영화계 종사자들을 위한 복지 사업을 시작했나.

 예술가들은 보편적 복지, 사회적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본다. 한국 영화의 발전은 개인의 힘이 아니고 훌륭한 장인들, 좋은 인력과 같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고생하는 후배들을 위해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경험을 나누고 공유하자는 취지

ⓒ 시사저널 전영기
에서 시작한 것이다. 영화학교는 2015년 3월 파주영상단지에서 문을 열 예정이다.

어린 시절 책이 없는 집에 살면서 친구 집에서 책을 빌려 보았다는 일화는 여느 소설가의 회고담처럼 들린다.

풍족하면 잘 읽지 않게 되고, 부족하면 절실해지는 것 같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쓴 황선미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도 그렇다. 초등학교 5~6학년 때였단다. 워낙 가난하게 자라서 학교 문고를 이용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책을 다 읽고 갈 때까지 기다려줬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게 기특해 보였는지 언제부터는 책장 열쇠까지 줬고, 그분 덕에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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