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잉 치료·검사 없어질 것” 의료계 “저질 진료 늘어날 것”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7.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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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질환군 포괄수가제 적용 싸고 논란…건강보험·국민 부담 줄어들 듯

정부가 1997년부터 일부 병·의원에 적용해오던 포괄수가제를 7월1일부터 대학병원까지 확대 적용했다. 포괄수가제는 한마디로 의료비 정찰제다. 7가지 수술(백내장·편도·맹장·항문·탈장·제왕절개·자궁)의 의료비를 동일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병원은 진료 횟수와 양만큼 진료비를 책정했다(행위별 수가제). 그로 인해 불필요한 검사나 비싼 약을 사용하는 등 과잉 진료 논란이 있었다.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고, 이를 없애기 위해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도입했다.

7월9일 서울 아산병원에 포괄수가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환자 부담 연 100억 경감 기대

꼭 필요한 진료를 함으로써 건강보험 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방사선 촬영, 항생제 사용량 등 과잉 진료가 줄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일부 진료는 건강보험 테두리 안에 들어가면서 환자 부담도 다소 줄어들게 됐다. 환자 부담금은 입원 건당 38만원에서 30만원으로 평균 21% 감소했다. 보건복지부는 7개 질환에 대한 포괄수가제 적용으로 환자 부담이 연간 100억원 경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비 정찰제라고는 하지만, 같은 수술이라도 환자 상태와 병원 규모에 따라 진료비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큰 병원에 있는 선택진료비나 상급 병원 이용료 등은 여전히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환자가 동네 의원 대신 큰 병원을 이용하면 실제 병원비는 늘어날 수 있다.

이 제도로 정부는 건강보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환자도 자신의 진료비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생각이 다르다. 병원은 정해진 의료비 안에서 진료해야 하므로 인력·재료·약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입원 환자도 되도록 빨리 퇴원시켜야 하고, 기존보다 수익이 줄어든 만큼 의학기술 발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즉,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의료계의 우려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예컨대 ‘자궁수술은 얼마’ 하는 식으로 진료비를 정해두면 고급 재료와 약을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정부가 획일적인 저질 의료를 의료계에 강요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계의 주장대로 일부 고가 진료나 당장 급하지 않은 선택 진료가 제한되면 의사나 환자의 선택권이 줄어들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고가 진료가 항상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비용 대비 효과가 없는 진료도 상당수 있다. 또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선진국에서 의료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의료기관 사이의 경쟁 때문이다. 의료의 질이 떨어져 평판이 나빠지면 환자들이 그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즉, 의료의 질을 터무니없이 떨어뜨리는 병원은 생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일부 비양심적인 병원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에 따라 보건 당국은 의료의 질을 감시해 병원의 비양심적인 의료 행위를 막을 예정이다.

국민들 “포괄수가제 잘 모른다”

포괄수가제의 확대 시행을 반대해온 의료계는 6월 수술 거부라는 강수를 뒀다. 그러자 의료 관련 시민단체는 대한의사협회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대한의사협회가 겉으로는 의료의 질 저하를 내세우지만 속내는 병원 수익을 더 챙기려는 꼼수라는 것이다. 정부도 진료를 거부한 의사의 명단을 공개하거나 행정처분을 할 것이라고 맞섰다. 이후 의료계는 수술 거부를 거둬들였다.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 포괄수가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의료계 내부에서 나온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사실 병원에서 불필요한 검사와 수술이 많다. 없는 병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간단한 수술도 로봇 수술로 유도하거나 X선 촬영을 해도 될 것을 CT(컴퓨터 단층 촬영)로 검사하려 든다”며 “이는 의료비를 올려 건강보험과 환자에게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큰 틀에서 건강보험과 환자의 부담을 줄이는 정책에 찬성한다. 핵심은 진료비를 어느 선에 맞춰야 병원 경영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특히 의료계는 국민 건강을 담보로 의료의 질 저하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정부는 지속적으로 의료 현장을 살펴서 개선할 점을 찾아야 한다. 환자도 무턱대고 큰 병원을 찾는 행태를 바꿔야 한다. 이번에 포괄수가제 적용을 받는 7가지 수술은 치료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고 병원마다 큰 차이가 없다.

정부와 의료계가 포괄수가제를 두고 왈가왈부하지만 정작 의료 서비스를 받는 국민은 포괄수가제에 대해 잘 모른다.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환자 이수진씨는 “포괄수가제라는 말부터 어려운데 그 내용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병원에 안내문이 있지만, 정부가 국민에게 포괄수가제를 알리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포괄수가제(의료비 정찰제)는 4대 중증 질환 보장과 함께 박근혜정부의 핵심 의료 정책이다. 과거 정부가 구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들을 실행하는 중이다. 예상되는 부작용도 있다. 정부는 포괄수가제가 10여 년 전부터 서서히 정착돼온 정책이므로 부작용은 적을 것으로 판단한다. 배경택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지속적인 점검과 예비 평가 결과, 의료의 질 저하나 병원의 진료 거부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포괄수가제는 의료 자원의 합리적인 활용, 의료 서비스의 효율화,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등을 고려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제도가 대학병원으로 확대된 첫날인 7월1일 보건복지부에서 그를 만나 구체적인 얘기를 들었다.


포괄수가제가 탄생한 배경은 무엇인가.

검사를 많이 하고 환자를 오래 입원시키면 병원 수입은 늘어난다. 이는 건강보험과 환자의 의료비 증가로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2002~12년 10년 동안 건강보험 진료비가 매년 11~12% 증가했다.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도 2002년 이후 연 8% 늘어났다. 2016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 이 진료비는 더 늘어날 게 뻔하다. 이를 차단하고자 포괄수가제가 나왔다.

7개 질환군을 포괄수가제에 넣은 기준은 무엇인가.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수술은 그 방법이나 난이도가 어느 병원에서나 동일하다. 암 수술처럼 환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는 수술은 포괄수가제를 일괄 적용하기 어렵겠지만 표준화된 수술법이 있는 질환군은 진료비를 정해둘 수 있다.

의료계는 의료비가 낮게 측정될 것을 우려하는데 그 수준을 어떻게 정하나.

동네 의원부터 대학병원까지 진료 행위와 비용을 계산해서 종합한 결과다. 낮지도 높지도 않다는 말이다. 대한병원협회를 통해 진료 행태를 조사했다. 비싼 검사와 저렴한 검사를 모두 고려했다. 대학병원에서 A라는 검사를 30% 하고, B라는 검사를 70% 한다면 이를 분석해서 평균값을 내는 식이다.

그럼에도 의료계가 이 제도의 문제점을 계속 지적하는 배경에는 정부와 의료계 간의 소통 부재가 있지 않았나.

의료계도 의료비 증가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다만 미세한 조정이 필요한 부분에서 논의 중이다. 정부는 2인3각 경기를 하는 셈이다. 정부·의료계·환자 모두가 만족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결코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국민은 보험료가 오르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급부터 상급까지 병원의 의료 행태를 고려해서 의료비를 책정했다. 해당 수술에 꼭 필요한 진료를 하면 되니까 보험료가 올라갈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큰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은 환자의 선택권이 줄어들지 않겠는가.

7가지 수술은 전문 병원급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술법이 표준화돼 있어서 큰 병원의 진료가 불필요하다. 전문 병원은 특정 수술에 한해서는 대학병원보다 노하우가 많다. 또 대학병원에서는 간단한 치료를 전공의가 하는데, 전문 병원에서는 모두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환자가 대학병원으로 가면 진료비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

환자 부담이 커진다. 맹장수술로 일주일간 입원한 A씨와 B씨가 있다. 입원 당시 환자 상태가 비슷했지만 A씨는 동네 의원에서, B씨는 종합병원에서 같은 수술을 받았다. 동네 의원에서 수술받은 A씨는 의료비 정찰제(55만9100원) 이외에 추가로 약 6만원을 냈다. 그러나 종합병원을 이용한 B씨는 의료비 정찰제 외에 66만7902원을 더 부담했다.

환자가 대학병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수술받다가 예상하지 못한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전문 병원에서 수술받다가 응급한 상황, 특히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할 정도라면, 그 병원과 연계된 협력 대학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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