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의 오프라 윈프리’ 워싱턴을 노리나
  • 김원식│ 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7.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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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리, 공교육 로비단체 ‘스튜던트퍼스트’로 주목

“한국은 교육에 미친 나라다.”

미국 워싱턴 D.C. 교육감을 지낸 미셸 리(한국명 이양희, 43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모국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미친’은 긍정의 표현이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미국의 공교육 개혁을 끌고 갈 수 있었던 힘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비록 지금은 교육감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자신이 말한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그는 여전히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학생을 우선시하라(put students first)’는 그의 철학은 2010년 워싱턴 교육감을 사퇴한 후 ‘스튜던트퍼스트’를 설립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스튜던트퍼스트는 공교육을 위한 로비단체다. 이 단체를 설립한 후 미셸 리는 “1년에 10억 달러에 달하는 후원 기금을 모을 수 있는 단체로 키울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아직 포부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을 모으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튜던트퍼스트는 신생 단체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7월2일 미국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미셸 리를 다뤘다. 스튜던트퍼스트가 2012년 7월까지 1년간 2850만 달러(약 320억원)를 모금한 성과를 부각한 것이다. 2010년 설립된 후 9개월 동안 모은 760만 달러와 비교하면 1년간을 기준으로 할 때 약 3배나 급증한 금액이다.

미셸 리가 워싱턴 D.C. 교육감 시절이던 2009년 11월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 REUTERS
공교육 개혁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스튜던트퍼스트는 미국 전역에 뻗어 있다. 18개 주에 지부를 설립했는데 캘리포니아·뉴저지 등 각 주의 교육단체는 물론이거니와 민주당이나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에게도 거액의 정치 후원금을 기부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로비단체로 자리 잡았다. 로비의 성과는 곧 드러났다. 이 단체는 공교육 개혁과 관련한 110개의 새로운 정책과 법률들이 통과되는 데 힘을 발휘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는 105명의 공직 후보자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했는데 이들 가운데 80% 이상이 당선되면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미셸 리는 미국 공교육 개혁의 아이콘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제는 교육계를 넘어 미국 정치권에서도 그를 거물로 인정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일단은 명분을 쥐고 있다. 공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는 그의 명분에 아무도 반대하지 못한다. 워싱턴의 공립학교는 재학생의 85%가 흑인 학생이고 따라서 인종적 정체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는 “어른들의 이익을 어린이들의 이익보다 우선하는 교육 제도를 고치고 교사들의 일자리 보호를 학생들의 학업 능력보다 중시하는 교육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과감하게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다.

당시 워싱턴의 공교육은 미국에서 최하위권으로 평가받고 있었는데 미셸 리는 개혁을 위해 25개 학교를 폐쇄하고 교사 4000명 가운데 3분의 1을 ‘경쟁력 부족’을 이유로 해고했다. 교장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전체 교장의 35%에 해당하는 36명을 해고하는 등 자신의 밑그림을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이는 매우 혁명적인 개혁 정책으로, 미셸 리는 2008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의해 ‘올해 주목되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타임>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미국 공교육의 신화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햇빛이 비추면 그늘이 있는 법이다. 그의 공교육 개혁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집단은 교사 단체인 전미교사연맹(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이었다. 미셸 리는 “무능한 교사만 골라내 해고하고, 유능한 교사들은 진급시켜 연봉을 10만 달러 이상을 주어야 한다”며 공교육 교사들의 처우 개선을 약속했지만, 당장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교사들은 미셸 리의 정책에 강력히 반대했다. 미셸 리의 재임 동안 워싱턴의 교육 개혁을 둘러싸고 학부모의 열렬한 환영과 교원노조의 격렬한 반대가 계속됐다. 대립은 표로 결정됐다. 2010년 선거에서 미셸 리를 임명했던 에이드리언 펜티 당시 워싱턴 시장이 교원노조의 반대로 재선에 실패하면서 미셸 리 역시 함께 교육감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0년 8월 워싱턴 D.C. 교육감 시절의 미셸 리가 한 공립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 AP연합
오프라 윈프리·루퍼트 머독도 적극 지지

미셸 리가 공교육 개혁을 위해 실시한 ‘학교와 교사 및 학생 평가제’도 부작용이 많았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100여 곳 넘는 워싱턴 내 학교가 학생들의 성적을 상향 조작했다는 의혹을 보도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올해 1월에도 미국 PBS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프론트라인>이 워싱턴 공립학교의 시험 성적 조작 의혹을 보도하면서 지금까지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3월에는 LA타임스가 가세했다. “공립학교 개혁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미셸 리 전 워싱턴D.C. 교육감이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고 있으면서도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명해졌지만 그에 따른 시련도 톡톡히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미셸 리는 중앙 무대에서도 파워를 얻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뒤 교육장관 후보로 거론됐다. ‘타협할 줄 모르는 독재자’라는 반대론자들의 비판에 대해서도 단호히 맞서고 있다. 올해 2월에 가진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도 “사람들은 내가 한 일이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지만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본다”며 “비판론자들은 내가 민주당 지지자라는 이유로 나의 공교육 개혁 정책을 이분법적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 소속인 뉴저지 주의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는 물론 네바다 주의 브라이언 샌도벌 주지사 또한 우리 단체의 강력한 지지자”라며 자신의 공교육 개혁이 정치색을 떠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미셸 리의 공교육 개혁 정책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주요 인사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가 2010년 워싱턴 교육감직을 사퇴하자 민주당 지지자인 오프라 윈프리는 미셸 리를 뉴저지 주 뉴어크 시 교육감으로 적극 추천했다. 언론 재벌이자 보수 인사인 루퍼트 머독은 “미셸 리가 미국의 교육 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치켜세울 정도였다. 그가 이끄는 스튜던트퍼스트의 성공에는 워싱턴 교육감 재직 시절의 공교육 개혁 정책의 흔적이 남아 있는 셈이다. 교육을 넘어 정치의 영역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미셸 리의 최종 도착점은 어디일까. 그가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라고 말한 대한민국도 좀 더 관심을 가질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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