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넘어 대륙으로 가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7.2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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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 <정글만리> 펴낸 소설가 조정래

“나는 ‘컴맹’, 21세기 원시인이다. 컴퓨터에 손댄 일이 없어서 이번 작품도 200자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썼다.”

원고지에만 글을 쓰는 몇 안 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조정래 작가(70)가 최근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장편소설 <정글만리> 연재를 마치는 소감 첫 구절을 이렇게 열었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 독자까지 가세하는 등 세계 각지의 독자들이 올린 댓글에 힘입어 108일간 연재를 이어갔다. 이 소설이 1200만 뷰를 넘어서는 인기를 끌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귀 아프게 들어온 ‘글로벌 시대’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됐다. 인터넷이 지배하는 그 동시성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정글만리>는 인터넷 연재 성공 덕분에 연재가 끝난 후 곧바로 종이책으로도 묶여 나왔다. 7월16일 이를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 작가는 작품을 낸 동기와 작품이 지니는 두 가지 의미를 설명했다. 책을 낸 동기가 특히 이목을 끈다. “우리는 분단 현실 때문에 작가들의 의식에도 울타리가 쳐져 휴전선 이남을 벗어나 다른 곳을 소설 무대로 삼아본 적이 거의 없다.”

ⓒ 시사저널 최준필
소설 무대를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확장

‘20세기 한국 현대사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쓴 작가로서, 스스로 반문하듯 이 책을 쓰기로 작정했었나 보다. 그런데 그 시작 지점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오른다. 개방한 중국에 처음 방문한 조 작가는 소련이 갑작스럽게 몰락했는데 중국은 왜 건재한지가 궁금해졌다.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20여 년을 보냈다. 그동안 중국은 무섭게 변했다. 10억 인구가 14억에 이르면서 중국은 G2가 됐다.

조 작가가 설명한 <정글만리> 출간의 두 가지 의미는 이렇다.

첫째, 인터넷 세상만큼 세계 경제 상황이 변하고 있는데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조 작가는 “2016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G1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은 21세기의 전 지구적인 문제인 동시에 수천 년 동안 국경을 맞대온 우리 한반도와 직결된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중국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한국·중국·일본·미국·프랑스 등 다섯 나라 비즈니스맨들이 숨 막히는 경제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그렸다. 제목에서 ‘정글’은 경제 전쟁을 뜻하고, ‘만리’는 만리장성에서 따온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시(關係)’ 없이는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그곳에서 성공을 좇는 이들의 욕망과 암투를 그렸다.

둘째, 그런 중국의 성장 밑바닥엔 무엇이 있는 건지 짚었다. 조 작가는 “중국인들이 오늘을 이뤄내는 동안 겪은 삶의 애환과 고달픔도 우리의 경험과 다를 게 뭐 있겠나. 그 이야기를 두루 엮어 보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조 작가가 평생 화두로 삼아온 사회적 모순 등의 주제 또한 놓지 않은 것이다. 중국을 무대로 하면서 한국을 돌아보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급속한 개발이 빚어낸 공해 문제, 중국 특유의 ‘런타이둬(人太多)’ 이면에서 벌어지는 인명 경시 세태, 대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저소득 농민공들의 모습 등으로 과속 성장의 폐해도 살펴봤다. 과거사 문제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 대 일본, 일본 대 중국, 중국 대 한국이라는 거대 비즈니스 경쟁 현장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과거사와 그 저변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까지 치밀하게 표현해냈다.

“중국 급성장하는데 ‘남북’은 뭐하고 있나”

조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경색된 남북 관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을 취재하면서 만주에 20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 공장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개성공단 같은 것을 네 개 만들 수 있는 숫자다. 그런데 그런 건 못 하고 개성공단마저 파행으로 가는 이런 한심한 꼴이 어디 있나.”

조 작가는 <정글만리>를 인터넷에 연재하면서 젊은 세대에게도 작품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전체 페이지뷰의 34.8%가 모바일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집계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이를 책으로 출간한 출판사는 작품 속 등장인물처럼 중국에 체류 중인 상사원에게는 공감을, 실제 대중국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비즈니스 노하우를, 한일 관계나 한중 관계에 관심이 적었던 학생들에게는 역사적 자각을, 중년 이상 독자에게는 향수를, 생동하는 소설을 읽는 기쁨을 원하는 대중에게는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준 것으로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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