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해외 괴자금’ 의심스럽다
  • 안성모·이규대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7.2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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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둘째아들 소유 '웨어밸리' 압수수색 / 시사저널 미국 법인 실체 단독 보도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이 29일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운영했던 데이터베이스 보안업체 웨어밸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 회사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된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그동안 웨어밸리를 둘러싼 ‘전두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다각도로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재용씨가 이 회사를 통해 미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려고 한 정황을 포착했다. 2000년대 초부터 미국 진출에 집착해온 재용씨의 수상한 행적을 집중 취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1672억원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을 이번에는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러한 국민 정서를 등에 업은 검찰의 발걸음도 어느 때보다 바빠졌다.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은 물론, 친인척 및 측근들의 집과 관련 회사 3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해 대여금고를 찾아내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 내외와 일가, 측근들의 보험 가입 현황과 계약 내용도 조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이를 통해 ‘전두환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상당수 물품을 찾아냈다. 우선 400여 점에 이르는 미술품과 골동품을 압수했다.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대여금고 7개에 들어 있는 예금통장 수십여 개와 다이아몬드 등 귀금속도 발견했다. 부인 이순자씨 명의의 30억원짜리 개인 연금보험과 함께 6월 말까지 차남 재용씨의 ‘가족 회사’인 비엘에셋 소유였던 고급 빌라 3채를 압류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10월까지 성과를 내라”며 특별환수팀을 독려하고 있다.

ⓒ 일러스트 김성재

  
국내 압수수색은 한계, 해외 은닉 재산 찾아야

검찰이 대대적인 ‘추징 전쟁’을 펼치는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의 ‘해외 은닉 자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친인척 및 측근들의 국내 재산은 금액이 크지 않은 데다 ‘전두환 비자금’임을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감정이 필요하지만 현재까지 압수된 미술품과 골동품의 경우 예상보다 가격이 낮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순자씨는 압류된 연금보험은 상속받은 재산이라며 압류 해제 요청을 한 상태다. 정보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검찰 수사는 용두사미가 될 것이다. 전두환 비자금을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기억해낼 사람도 없다. 20년이 지난 일을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을 제대로 환수하기 위해서는 해외에 있는 ‘비자금 금고’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2000년대 초 재용씨가 미국으로 자금을 빼돌리려고 했던 정황을 포착했다. 단초는 2003년 불거진 ‘167억원 괴자금’ 수사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현대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재용씨에게 흘러들어간 출처 불명의 뭉칫돈이 발견됐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재용씨는 구속 기소돼 법정에 섰다. 검찰은 괴자금 167억원 중 73억550만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임을 밝혀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재용씨의 수상한 행적이 드러났다. 의혹의 중심에는 당시 재용씨가 소유한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웨어밸리’가 있다. 웨어밸리는 2001년 업계의 젊은 기술자 10여 명이 모여 만든 회사다. 처음에는 재용씨가 순수한 투자자로 참여한 것으로 보였다. 투자 규모는 7억원 상당으로 알려졌다. 대주주이긴 하나 지분이 30%에 못 미쳐 회사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재용씨도 설립 후 2년여 동안 회사 운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업계에서 뛰어난 기술을 갖췄다고 알려진 젊은 인력이 대거 참여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컨설팅 업무를 중심으로 회사의 내실을 갖춘 후 양질의 데이터베이스 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발표했다. 2001년 25억원이던 매출액이 이듬해인 2002년 12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웨어밸리는 2002년 말 새롭게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무기로 미국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미 2002년 9월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무소를 개설한 바 있었다. 당시 회사 사장이었던 박 아무개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본격적으로 독립 사무소를 개설하고 이를 법인 설립으로까지 이어가겠다는 계획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2003년 1월 재용씨가 돌연 미국 사업 본부장을 맡겠다고 나섰다. 2002년 10월 경영에 참여하고 싶다며 이사를 맡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회사 운영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박씨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고 한다. 박씨는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사업의 특수성을 잘 아는 인물, 미국 시장의 인프라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사업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재용씨는 전략을 바꿨다. 주변 이사들을 포섭해 박씨를 밀어낸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대표이사 자리에 앉았다.

이후 재용씨의 행보에서는 단순히 사업을 목적으로 회사를 인수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우선 대표이사직까지 꿰찬 그가 미국 법인에만 지나치게 치중했다. 2003년 2월 대표이사가 되고 2개월이 지나 미국으로 떠난 후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대신 자신의 측근인 류창희씨를 공동 대표이사로 앉혔다. 재용씨의 관심은 회사 자체보다는 줄곧 미국에만 있었던 셈이다.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웨어밸리에서 근무해온 한 관계자는 “(미국 법인의) 운영에 대해 웨어밸리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당시 회사가 해외 투자를 한 기억이 없다. 전재용씨가 대표이사로 있을 때 설립된 미국 법인은 한국의 본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고 말했다. 재용씨가 한국의 사업과 무관한 해외 법인을 설립한 배경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재용씨가 미국에 설립한 법인의 실체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1개월이 지난 2003년 3월 애틀랜타에 법인을 설립한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씨가 2012년 공개한 조지아 주정부 법인등록 서류에 따르면, 한국계 미국인 L씨가 대표이사, 재용씨가 이사로 등재돼 있다. 그런데 이때 법인명은 ‘솔로라(Solora)’로 당시 한국의 법인명인 웨어밸리와는 관련이 없다. 당초 재용씨가 웨어밸리의 사장으로서 미국 진출을 추진했다면 왜 다른 이름으로 법인을 설립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솔로라는 2003년 7월11일 오알솔루션즈(OR Solutions)로 이름을 바꿨는데, 한국 법인 웨어밸리도 두 달 뒤에 오알솔루션즈코리아로 이름이 바뀐다. 미국 법인은 2005년 7월 등록이 취소됐고, 한국 법인은 2004년 3월 다시 이름이 웨어밸리로 바뀌었다.

재용씨는 왜 실리콘밸리에 있는 사무소를 폐쇄하고 멀리 떨어진 애틀랜타에 회사를 꾸렸을까. 재용씨에게 밀려나기 전까지 미국 진출을 추진했던 박씨는 “당시 IT 관련 벤처사업가들은 미국 진출 장소로 단연 실리콘밸리를 선호했다. 현지 전문 인력을 구하기도 수월하고, 관련 업종이 모여 있기에 미국 시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10월 말부터 재용씨의 괴자금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자 재용씨는 곧바로 오알솔루션즈코리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 불과 8개월 만에 회사 경영을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법인을 향한 재용씨의 집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04년까지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자신을 ‘오알솔루션즈 미국 현지법인 대표’로 소개했다.

당초 웨어밸리에 대한 투자는 ‘밸유매니지먼트’ 이름으로 이뤄졌는데, 이 회사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비엘에셋’의 전신이다. 2000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재용씨의 전처인 최정애씨가 대표이사를 맡았다가 한동안 휴면 상태로 방치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용씨가 검찰에 구속돼 수사를 받던 시점이다. 그러다가 2006년 9월 부인 박상아씨가 감사로 취임하면서 화제가 됐다. 당시 이사로 등재되었던 재용씨는 2008년 4월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박씨의 어머니 윤 아무개씨와 여동생 박 아무개씨도 2011년 4월까지 이사로 등재돼 있었다. 윤씨는 재용씨 부부의 미국 재산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로, 이번에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재용씨 가족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비엘에셋은 사실상 그의 자금 운용 회사나 다름없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자’로 지목받아온 외삼촌 이창석씨가 이 회사에 수백억 원대의 토지와 자금을 몰아줘 ‘재산 상속’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2007년 6월 전두환 전 대통령 차남 재용씨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를 받고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해외 법인 설립 후 자금 은폐 충분히 가능”

재용씨가 운영했던 회사의 주요 이사 중 미국에 거주하는 인물이 많았던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2009년 해산된 의료기기업체 ‘뮤앤바이오’의 대표이사 류 아무개씨, 이사로 등재된 그의 남편 한 아무개씨 등이 대표적이다. 한씨는 미국인이며 류씨는 당시 미국 메릴랜드 주에 거주했다. 류씨는 웨어밸리 공동대표였던 류창희씨의 누나다. 류씨 남매는 재용씨의 차명 재산 관리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2003년 당시 뮤엔바이오 관계자는 <시사저널>의 취재에 “실적은 없고 이름만 있는 회사”라고 밝힌 바 있다. 웨어밸리 미국 법인 대표인 L씨나 류씨가 재용씨의 자금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데 ‘관리책’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배경이다.

재용씨의 미국 법인 및 미국 거주 측근들의 자금 흐름에 대해서는 검찰이 본격적으로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2003년 당시 대검 중수부 2과장으로 수사를 진행했던 유재만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는 당시 수사 기록을 들춰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후, 재용씨의 해외 법인에 대한 자금 흐름을 면밀히 살펴본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검찰 재직 당시 ‘특수통’으로 꼽혔던 유 변호사는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볼 때 해외 법인을 설립하고 그 운영 자금 명목으로 자금을 은폐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재용씨가 대표이사직을 그만둔 후 웨어밸리가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손삼수씨에게 넘어간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5공 시절 청와대 재무관을 지낸 손씨는 2000년 경매에 나온 전 전 대통령의 벤츠 승용차를 낙찰받아 구설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재용씨가 검찰의 구속 수사를 받게 된 시점에 곧바로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손씨는 2003년 당시 <시사저널> 취재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는 없고, 재용씨와도 그냥 아는 사이일 뿐 친밀한 관계는 아니다. 이 회사는 비자금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회사로 연락했지만 관계자가 “개인적인 부분은 답변할 수 없다”며 연결시켜주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와 관련이 있는 측근들은 현재 ‘2004년 전재용씨 조세 포탈 사건 수사 기록’ 공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검찰에 밝힌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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