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금으로 쓰고 없다? 교활한 장사꾼 같은 셈법”
  • 안성모 기자·조유빈 인턴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7.2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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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 내란·뇌물죄 수사 총지휘한 최환 변호사 인터뷰

원로 법조인 최환 변호사(71)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1672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추징금을 미납한 채 호의호식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돈을) 빼돌리기에 급급하냐”며 “실망스럽다”고 호통을 쳤다. 최근 검찰이 압류한 30억원짜리 개인 연금보험이 상속받은 재산이라며 압류를 풀어달라고 요청한 이순자씨에 대해서는 “남편 덕에 영부인으로서 온갖 호사를 누렸다”며 “남편이 저렇게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어디서 나온 돈이든 추징금으로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최 변호사는 1995년 9월~1997년 1월 서울지검장으로 근무하면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내란죄 및 뇌물죄 수사를 총지휘한 주인공이다. 당시 그는 3개 수사팀을 총괄하는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았다. 최 변호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두 가지를 아쉬워했다. 하나는 1997년 4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기 3개월 전에 서울지검장에서 물러나야 했던 점이다. 이로 인해 뇌물 사용처를 밝혀내 추징금 납부에 대비할 2단계 수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97년 12월 두 전직 대통령이 사면·복권됐다는 점이다. 이들이 감옥에서 풀려나면서 결과적으로 추징금 징수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7월2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그의 사무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당시 검찰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이 어느 정도라고 파악했나.

뇌물을 준 당사자는 재벌이나 대기업이었다. 각자 얼마씩 내기로 하고 돈을 모아 준 것이다. 수천억 원은 됐다. 항간에 떠돌던 1조원은 안 됐다. 당시 우리 경제 규모로 봤을 때 그 정도는 힘들었다. 그래도 두 전직 대통령을 합치면 1조원이 넘었을 것이다.

전 전 대통령측에서는 기업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액수를 부풀렸다고 주장하는데.

말만 들은 게 아니다. 나중에 (증언을) 뒤집으면 어떻게 하겠나. 그래서 돈 100억원을 줬다면 그 돈이 어떻게 나왔는지 장부를 가져와서 설명하게 했다. 그렇게 맞춰가면서 수사했다. 그것을 가지고 얘기하면 전·노 전 대통령도 ‘그렇다면 더 말할 게 없겠다, 다툴 게 없겠다’는 반응이었다. 어쩌면 재벌들이 (뇌물 액수를) 더 줄여서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민정당 살림으로 쓰고 대선 자금으로 제공하고 해서 남은 게 없다는 주장도 했다.

물론 당시에는 대통령에게 통치 자금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추징금 2205억원은 통치 자금으로 쓴 것은 빼고 나온 금액이다. 이 정도는 추징금으로 낼 수 있고, 또 이후 가족 생활도 충분할 것으로 판단했다. 통치 자금은 다 얘기를 해서 빼줬는데도 2205억원 중에 또 통치 자금 얘기를 한다면 그 사람들은 정말 나쁜 것이다. 이중으로 지출한 것처럼 해서 (추징금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지 않나. 교활한 장사꾼 같은 셈법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전 전 대통령 측근들의 충성심이 강하다 보니까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재벌들이 다 얘기를 했고 또 회계장부도 압수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말로 해서 들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랬다면 큰소리칠 수가 없었다. 다만 전 전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은 수백 명이었고,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 아무리 큰돈이라도 수백 명 이름으로 쪼개져 있으면 액수도 작아지고 숨기기도 쉬워진다. 이에 비해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열 명 안팎에 불과해 수십억 원씩 액수가 크다 보니 금방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그해 추징금은 312억원 정도밖에 징수하지 못했는데.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기 석 달 전인 1997년 1월에 서울지검을 떠났다. 그래서 2단계 수사를 못 했다. 당시 세 가지 사건(12·12 군사 반란, 5·18 내란, 뇌물 수수)의 공소 제기 중심으로 진행한 1단계 수사는 마무리가 됐고, 2단계로 뇌물 수수 총액이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수사할 계획이었다. 이후 추징금 징수에 대비해 돈이 어디에 들어가 있는지 파악을 해놓으려고 한 것이다. 그때는 (전 전 대통령에게) 돈이 많이 있었고, 감추고 할 틈도 별로 없었다. 외국에 (돈을) 빼돌린다는 생각도 안 할 때다. 미리 압류해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용처에 대한 수사를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지 않나. 그런데 출구를 살펴보지 못한 것이다. 그때 명확하게 조사하고 추적했다면 추징금 문제뿐 아니라 정경유착의 뿌리를 뽑는 계기가 됐을 텐데 안타깝다. 어쨌든 후임에게 당장 급한 건 추징금 확보라고 얘기해줬다.

서울지검을 떠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상식적인 인사는 아니었다. 대법원 판결을 몇 달 앞두고 인사가 난 것부터 그렇다. 그것도 서울지검장을 대검 총무부 부장검사로 보냈다.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 실세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대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이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단행한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이던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협의됐으니 사면하라는 건데, 이로 인해서 추징금 징수에 큰 차질이 발생했다. 사면은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지만 국민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를 받으려면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하고 추징금도 다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사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는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사면을 빨리할 줄은 몰랐다.

사면하지 않았다면 추징금을 다 받아낼 수 있었다는 것인가.

이미 사면되기 한 달 전부터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다 보니 추징금을 납부하라고 해도 준비된 게 없으니 다음에 보자는 식이 된 것이다. 전·노 전 대통령에게 핑계거리와 함께 빠져나갈 기회를 준 거나 다름없다. 작은 돈이든 큰돈이든 추징금을 실질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사정하듯이 매달릴 게 아니라 감옥에 몸을 묶어둬야 한다. 구속돼 있으면 돈을 다 내놓게 된다. 그런 만큼 추징금을 미리 납부해야 사면 대상이 된다고 했어야 한다. 추징금 정도는 떼먹어도 좋다는 생각을 절대 못 하도록 했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사면이 되면서 이후 추징금을 받는 일이 어렵게 됐다. 당시 우리가 믿었던 것은 전 전 대통령의 양심이 아니라 그가 구속 상태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잡아놨으면 이렇게 애먹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생색만 내고, 나중에 왜 추징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전 전 대통령은 지금도 추징금을 낼 돈이 없다고 하는데.

제일 실망스러운 것이 그것이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왜 빼돌리기에 급급한가. 이번에 압류된 이순자씨의 30억원도 그렇다. 친정에서 상속받은 돈인데 왜 손대느냐고 하지 않나. 남편 덕에 영부인으로서 온갖 호사를 누렸다. 원 없는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남편이 추징금을 못 내서 저렇게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어디서 나온 돈이든 추징금으로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생활비가 없어서 그런다고 하는데, 연금으로 나오는 1200만원은 단둘이 생활하기에 많은 돈이다. 웬만한 집에서는 200만~300만원으로 4인 가족이 생활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 생각은 안 하나. 나랏돈 떼먹고 추징금도 안 내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건가. 약 올리는 거 아니냐.

이순자씨는 2004년 둘째 아들 재용씨가 구속됐을 때 200억원을 대납한 적이 있다.

아들이 아버지한테 받은 돈이 걸렸다고 엄마가 책임질 일은 아닌데도 돈을 내놓았다. 아들 살리려고는 내놓으면서 왜 남편 살리려고는 내놓지 못하나.

이제는 ‘전두환’ 이름으로 된 재산은 없지 않겠나.

지금까지 발각되지 않은 걸로 봐서는 그럴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본인 이름으로 갖고 있겠나.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나?

소총에서 핵무기로 발전한 법률이다. 국민의 성원으로 국회에서 통과시켜 검찰에게 선물을 준 것이다. 이 정도면 이제는 법률 미비로 (추징) 못 했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인권 탄압이니 폭압 정치니 하는 모양인데 저렇게 막무가내인 사람들한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아내야 한다. 물론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 일부 변호사들이 나서서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위헌인지 합헌인지 여부는 처리하는 것을 보고서 해도 된다. 국회에서 통과돼 시행된 지 며칠 됐다고 위헌 소리를 하고 있나. 그리고 대형 로펌까지 나서서 전 전 대통령측 변호를 맡으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누가 전직 대통령에게 변호사가 없다고 홀대를 하거나 함부로 조사를 하겠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잘 지키며 점잖게 나오는 사람들한테 이런저런 딴소리하면서 애먹이지 말아야 한다.

검찰 수사에 조언을 한다면.

남은 추징금 1672억원을 충분히 납부할 수 있는 재산이 있다. 전 전 대통령이 자진해서 납부하도록 철저하게 해달라. 추징금 전액을 받아내도록 분발해주기를 바란다. 


(왼쪽)채동욱 검찰총장 ⓒ 시사저널 최준필 (오른쪽)안대희 전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장 ⓒ 시사저널 박은숙
검찰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첫 대결은 YS 정권 시절이던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은 내란죄 혐의로 고소·고발된 전 전 대통령을 1년 2개월여 동안 조사했다. 하지만 결과는 별 볼 일 없었다. 검찰은 1995년 7월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실상의 면죄부다. 당시 수사를 이끈 서울지검 공안1부 부장검사는 17대 국회에서부터 내리 3선을 한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이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1995년 12월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재개됐다. 당시 수사를 총지휘한 인사가 최환 변호사다. 최 변호사는 그해 9월 법무부 검찰국장에서 서울지검 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 내 요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지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게 된 것이다. 채동욱 검찰총장도 당시 수사팀 일원으로 활약했다. ‘특수통’으로 손꼽히는 그가 특별수사에 발을 들인 것이 이때였다고 한다. 최 변호사는 “당시 똑똑한 후배 검사들이 많았는데 평검사로 근무하던 채 총장도 그들 중 하나다. 의지가 강하고 열성적으로 일했다”고 평가했다. 김용철 광주시교육청 감사관도 비자금 수사 실무를 맡았다. 김 감사관은 대법원 확정 판결 직후인 1997년 8월 검찰을 떠났다. 삼성구조조정본부 법무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 폭로로 화제가 됐다. 2004년에는 전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재용씨가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03년 10월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사채 시장의 자금을 추적하던 중 괴자금이 발견된 것이다. 대검 중수부는 재용씨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167억원을 차명으로 관리하면서 71억여 원의 증여세를 포탈했다며 그를 구속했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안대희 전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장이다. 대검 중수1과장으로 실무 수사를 맡은 유재만 변호사도 정치권으로 뛰어들어 민주당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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