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찬이도 없고, 상정이도 없고~”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7.3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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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선 대표 체제 출범한 정의당…‘진보’ 빼고 새로운 실험

“솔직히 좀 불안하다. 천호선 대표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진보 진영에서도 본격적인 세대교체와 청·장년층 간 조화가 이뤄질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분위기로 봐서 쉽지는 않아 보인다.”

7월21일 닻을 올린 정의당 천호선 대표 체제에 대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의 평가다. 그간 진보 진영의 대표 정치인으로 꼽혀온 심상정·노회찬 두 사람의 빈자리를 천호선 대표가 메울 수 있을지에 대해 그는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정의당 내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핵심 당직자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며 “진보 정당이 정말로 새로운 실험에 나선 것으로 봐달라”고 했다.

2012년 9월13일 당시 통합진보당 소속이던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보 정치 스타’ 노회찬·심상정의 후퇴

많은 국민은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 입성 이후 진보 정당 혹은 진보 진영의 대표 정치인으로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전 의원을 떠올린다. 물론 2002년 대선 당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으로 유권자들에게 진보 정치의 가능성을 선보였던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하며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했던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도 있었다. 한때 ‘진보의 아이콘’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진보 정당이 제도권에 발을 디딘 후 일관되게 국민적 관심을 끌어왔고, 또 지금까지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진보의 가치를 지켜내며 진보 정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사람이 심상정·노회찬 두 사람임은 부정할 수 없다”(민주당 박완주 의원)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런 두 사람이 사실상 진보 정치의 전면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심 의원이야 여전히 ‘원내대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지금껏 지켜온 대표 선수의 자리는 아니다. 노 전 의원은 이제 여의도에서도 당분간은 얼굴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신 그 빈자리를 천호선 대표가 채우겠다고 나섰다.

“아직 천호선 대표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진보 정당의 기반이 더 취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보기에 따라선 세대교체를 위한 재도약의 시작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의당 소속 한 의원의 말이다. 얼핏 들어선 자신감 없는 말투였지만 천 대표에 대한 믿음은 커 보였다. 이 의원은 “현역 의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대표로 내세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며 “많은 국민이 우리처럼 천 대표를 평가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안 정의당 부대변인은 기자가 “심 의원과 노 전 의원이 ‘뒷방 노인네’가 되는 거냐”는 농을 건네자 “정계 은퇴를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며 웃었다. 심 의원은 앞으로 원내대표 역할에 주력하며 ‘실력’을 키울 생각이라고 한다. 노 전 의원은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에서 ‘마들연구소’ 활동에 주력하며 유권자들과 부대낄 계획이라고 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개인적인 역량이 워낙 뛰어난 정치인들이니 단정적으로 얘기할 순 없지만, 앞으로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권 내에선 다른 얘기들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노동운동 판에서 잔뼈가 굵은 한 민주당 의원은 “두 사람의 정치 이력이나 내공으로 볼 때 뭔가 계기만 마련되면 언제든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도 “지금 진보 정당이 순탄하게 가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머지않아 두 사람에 대한 ‘수요’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정의당 내부에서도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심상정·노회찬 두 사람의 ‘복귀’를 점치는 의견이 있다. 한 당직자는 “진보 진영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내년 지방선거는 진보 정당들에게 무덤이 될 수도 있다”며 “천호선 대표 체제로 정면 승부를 벌여야겠지만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선 두 사람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 주변의 생각은 다르다. 심 의원의 한 측근은 “진보정의당에서 ‘진보’라는 두 글자를 떼어낸 건 변화하고 혁신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실력 있는 진보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미”라며 “제도권에 들어온 이상 표를 더 얻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이 때문에 꼭 필요한 다른 일을 뒷전으로 미루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을 깨고 나오면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진보의 재구성’에 매진하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노 전 의원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도 “며칠 전에 만났는데 공동대표라는 짐을 내려놓은 뒤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지만 꽤 고민이 크더라”고 말했다. 그가 전해준 얘기들 역시 노 전 의원이 ‘진보의 재구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7월21일 천호선 정의당 대표(가운데)가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당원대회에서 대표 수락 후 맞잡은 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여전히 갈 길 먼 ‘진보의 재구성’

진보 진영 정치인들이 ‘진보의 재구성’을 얘기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다.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민주노동당 주류 세력과 진보신당 탈당파, ‘친노’ 계열의 국민참여당이 통합 정당으로 출범했지만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에서 이른바 자주파(NL) 세력의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급기야 종북주의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진보 진영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후 심상정·노회찬 두 사람이 중심이 된 진보신당 탈당파와 유시민 전 대표를 정점으로 한 국민참여당 계열, 강기갑 전 의원이 속한 자주파 내 인천연합 등 세 세력이 통합진보당을 탈당해 진보정의당을 만들면서 명분으로 삼은 것이 바로 ‘진보의 재구성’이다. 이를 위해 노동 현장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환경·여성·장애인 등 그동안 진보 정당들이 힘을 쏟지 못했던 어젠다에 주목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창당하면서 이례적으로 올해 7월 재창당을 예고한 건 1년 안에 이들 과제를 일정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정의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약속을 지킨 게 거의 없다”며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되고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진보 정치의 상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진보 진영의 분열상을 극복하지도 못했고, 민생 현장과 적극 결합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당직자는 “천호선 체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제시한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소장은 “국민은 더는 3선 의원 심상정, 3선 의원 노회찬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천호선 대표가 진보 진영의 세대·세력 교체를 끌어내고 심상정·노회찬 두 사람이 ‘진보 정치의 상과 미래는 이런 것이다’ 하는 걸 보여줄 수 있어야 국민이 다시 진보 정당에 눈길을 줄 것”이라며 “심상정·노회찬 두 사람이 태산 같은 인고를 견뎌내고 해답을 내올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결국 두 사람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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