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vs 녹십자 “1위 고지 내가 먼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7.3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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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같은 길, 김윤섭-조순태 사장 자존심 대결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과 조순태 녹십자 사장의 행보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를 연상케 한다. 김 사장은 공격적으로 외형을 늘리는 정책을 펴고, 조 사장은 내실을 다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들은 세계적 기업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같은 꿈을 향해 달리는 두 사장은 지금 출발선에 서 있다.

1967년부터 업계 정상을 차지해온 동아제약은 역대 최대 리베이트(뒷돈) 사건과 지주회사 전환 등으로 제약업계 1위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를 놓고 지난해 업계 2위 녹십자와 3위 유한양행이 신경전을 펴는 형국이다.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해도 어부지리로 되는 모양새여서 두 회사는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다.

그래서 유한양행 김 사장은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겉으로 밝힌 올해 매출 목표는 9200억원이지만 내부적으로 잡은 고지는 ‘1조원 클럽’ 가입이다. 김 사장과 임직원은 이 목표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역사가 100년을 넘는 국내 제약업계는 1조원 매출 제약사를 배출하지 못했다. 민간 경제연구원의 제약 담당 분석가는 “제약사의 1조원 매출은 의미가 남다르다”며 “자체 신약 개발이 가능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녹십자 제공, ⓒ 유한양행 제공
녹십자의 조 사장은 국내 제약업계에서 첫 세계적 기업을 탄생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2020년 매출 4조원을 목표로 세웠다. 조 사장은 최근 “국내 영업으로 누가 먼저 매출 1조원 회사를 만드느냐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국내 제약업계에서 첫 세계적 기업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표현은 다르지만 ‘국내 업계 최초의 국제적 제약사’라는 기록을 남기고 싶은 속내는 같다. 이 목표만큼 양사의 사장은 닮은 점이 많다. 모두 중앙대 동문이면서 인문사회 계열을 전공했다. 김 사장은 경영학과 출신이고 조 사장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30년 이상 근무했다. 이들이 사장이 된 해도 2009년으로 같다.

유한양행 매출 27%가 수입산에서 나와

두 수장의 현재 상황이나 목표는 비슷하지만 방법은 크게 다르다. 유한양행의 김 사장은 최근까지 외형을 키워왔고 앞으로도 그 기조를 이어갈 생각이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고혈압 약(베링거인겔하임), 당뇨병 약(릴리, 베링거인겔하임), 에이즈 약(길리어드), 폐렴구균 백신(화이자), 간 질환 약(길리어드), 항응고제(베링거인겔하임) 등을 도입해 판매했다.

한마디로 돈 되는 외국산 약을 국내 시장에 팔면서 매년 10~20%의 매출 신장을 올렸다. 올해도 약 2500억원 상당의 다국적 제약사 약을 팔 예정이다. 이는 전체 목표 매출(9200억원)의 27%에 해당한다. 

녹십자의 조 사장이 사장직에 오른 2009년은 세계가 인플루엔자(신종플루) 창궐로 몸살을 앓던 해다. 녹십자는 신종플루 백신 공급으로 업계 5위권에서 2010년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후 성장세는 지지부진해서 유한양행에 추월당했다. 올 1분기 매출에서 유한양행은 녹십자를 앞질렀다.

그러는 사이 조 사장은 장기전에 대비해왔다. 혈액제제(혈액 성분을 원료로 만든 의약품)와 백신을 국산화했다. 백신은 보험 약값과 상관이 없고, 혈액제제는 약값 인하 대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이런 전략으로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이 회사가 1983년 국내 최초로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했을 당시 국내에 수입되던 B형 간염 백신 가격은 47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쌌다. 녹십자가 국산 백신을 내놓자 다국적 제약사는 백신 가격을 7달러로 낮출 수밖에 없었다.

차별화된 의약품 개발로 경쟁력을 갖춘 조 사장은 수출 길을 열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남미보건기구(PAHO)에 독감 백신을 수출하고 있고 태국 적십자에 혈액제제를 생산할 공장을 건설하는 데 기술을 팔았다. 녹십자 관계자는 “계절 독감 백신 수출이 올해에만 1200만 달러 계획돼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녹십자의 수출 비중은 매출의 14%(970억원)다. 조 사장은 앞으로 그 비중을 늘려갈 생각이다. 2020년 매출 목표액 4조원 의 절반을 수출로 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신약 개발에서 앞서나가는 녹십자

이런 배경으로 녹십자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9.3%로 유한양행의 두 배를 넘었다. 유한양행은 다국적 제약사의 잘 팔리는 약을 판매하므로 매출은 높지만 이윤이 3~4%로 박한 편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4%대에 불과하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 약 판매 비중이 높아진 것이지 그 약에만 의존하는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에도 매출의 6%를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7월 현재 유한양행은 소화기 질환, 대사 질환, 호흡기 질환, 면역 질환, 항암제 등에서 19건의 신약을 개발 중이다. 그중에 임상시험 마무리 단계(3상)인 것은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품 두 가지뿐이다.

녹십자의 조 사장은 당장 많이 팔리는 약보다 경쟁력이 있는 의약품 개발에 집중했다. 예컨대 면역향상제와 혈우병 약은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마쳤거나 막바지 단계여서 곧 세계 시장에 시판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경쟁 의약품이 적다 보니 비싼 값에 팔 수 있다. 30억 달러 규모인 미국 면역향상제 시장에서 연간 7000억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 승인을 받으면 녹십자는 세계적 기업으로 진입할 수 있는 엔진을 얻게 된다. 그 외에도 헌터증후군(유전성 질환) 치료제를 세계 두 번째로 개발하는 등 희귀병 치료제로 경쟁력을 쌓고 있다.

그러나 녹십자의 주력 제품군은 혈액제제와 백신뿐이어서 위태롭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제품군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 녹십자의 약점”이라며 “독감이 유행하면 백신 판매가 늘어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백신을 모두 폐기해야 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얼추 15조원대인 국내 제약업계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2020년 7대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제약 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골자는 복제약·내수 시장 성장에서 신약 개발을 통한 해외 수출로 전략을 전환한 것이다. 이 정책이 유한양행 김 사장의 ‘토끼 정책’과 녹십자 조 사장의 ‘거북이 전략’에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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