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군대’가 꿈틀대고 있다
  • 김회권 기자·임수택 편집위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07.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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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진격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자민당 정권이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한 뒤 그 기세를 몰아 7월21일 열린 참의원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강한 일본을 요구하는 일본인들은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기대하며 표를 몰아줬다. 그러나 주변국과 척을 지며 외교 관계에서 진통을 겪었던 게 얼마 전 일이다. 지금도 그는 불도저처럼 군국주의 부활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자마자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노골적으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중요한 축은 헌법 개정이다. 압승은 했지만 개헌 가능선인 3분의 2를 넘기지 못해 당장 단독으로 개헌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투표가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일본 내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개헌에 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2010년 참의원 선거에 비해 아베에게 유리한 형국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아베 총리는 애국주의적인 일본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보다 경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고 조언했는데, 아베는 참의원 선거 기간 중 이 충고를 받아들인 듯했다. 헌법 개정이나 집단적 자위권과 같은 주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줄곧 ‘아베노믹스’만 되풀이했다.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주가가 오르고 기업들의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의 수익이 이제 종업원 여러분에게 돌아갈 것이고 급여가 올라가면 소비가 늘어나게 된다. 일본 경제가 살아난다”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논리를 폈다.

ⓒ AP연합
‘세 개의 화살론’, 전통 옷 입은 개혁

지난 20여 년간 일본의 지도자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대해 이런저런 처방을 내렸지만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아베는 정치인에 대한 신뢰를 잃은 국민에게 활력을 주었다. 총리 취임 이후 주가는 55%나 상승했다. 개인 소비가 늘어나면서 올해 1~3분기 경제 성장률은 전년 동기에 비해 3% 이상 상승하는 쪽으로 잡았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물가를 반영한 국내총생산)은 1991년과 같은 수준에 불과하다. 니케이 평균 주가가 아베 정권에서 급상승했지만 과거 최고치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여전히 아베가 어필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떠받드는 금융·재정·성장에 관한 전략을 ‘3개의 화살’이라고 부른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이 용어는 혼슈 서쪽에서 유래한다. 전국시대 때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영주가 세 아들에게 1개의 화살을 “부러뜨려보라”고 하니 손쉽게 부러뜨렸다. 그러자 영주는 화살 3개를 건네며 아들들에게 꺾도록 명령했다. 아들들은 모두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힘을 합치는 방법에 대한 영주의 가르침을 뜻하는 ‘3개의 화살’로 자신의 경제 정책을 설명하는 아베는 이 지역 야마구치 현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이처럼 아베의 개혁은 전통의 옷을 입고 있다. 그 전통 중 빼어난 군사력과 강한 일본을 이어가야 한다는 심리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아베노믹스는 중간역이고 종착역은 헌법 개정인 셈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처럼 우익 성향 정치인들의 직·간접적인 지원, 그리고 아베 자신이 가진 우익 성향의 신념으로 개헌을 밀어붙였다. 이제는 참의원 선거에서의 승리를 아베노믹스에 대한 지지와 더불어 외교·안보·국방 분야에서 강력한 일본을 만들어달라는 본심으로 해석할 여지가 생겼다.

일본의 헌법은 개정하기가 가장 어려운 헌법 중 하나다. 현행법상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중·참의원 양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은 후 국민투표까지 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재정돈된 참의원만 봐도 개헌에 긍정적인 자민당·일본유신회·모두의당 의석수를 합치면 142석으로 개헌 가능선인 162석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연립 정권인 공명당의 20석을 합칠 경우 162석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공명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인 다카기 요스케 중의원은 “다음 중의원 선거까지 4년간 아베 정권의 최대 과제는 무엇보다도 경제 살리기다. 헌법을 개정하려고 해 일본을 멸망시키지 마라”고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로 공명당의 반발이 거세다. 공명당의 공식 입장은 헌법 개정 반대다.

2010년 11월13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반중 집회에 참가한 일본인 시위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센카쿠 열도 분쟁은 일본인들에게 ‘강한 일본’의 필요성을 심어주었다. ⓒ EPA연합
‘국방군’ 대신 ‘자위대’로 헌법 개정 우회 전략

하지만 우회 전략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황도 있다. <주간 아사히>에 따르면 정기국회 막바지였던 6월26일 아베의 한 측근이 자민당 간부들을 방문했는데, 현재 자민당의 개정 초안 9조에 명시된 ‘국방군’이라는 표현 대신 자위대로 명시해 개헌을 진행하고 싶다는 뜻을 알렸다고 한다. 국방군이라는 명칭에 부정적인 공명당과 민주당도 자위대를 헌법에 제대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것까지 반대할 리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자민당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는 “(전쟁 포기 등) 평화헌법 9조 1~2항은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자위대의 존재는 인정하고 있다. 헌법에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 면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토론을 거부할 입장은 아니라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다른 공명당 간부 역시 “처음부터 9조를 바꿔야 한다고 하면 상당히 거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당에서 초안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관계자도 “초안은 민주당 정권에 맞서 강하게 만든 것으로 깊은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방군이나 자위대나 나라를 지키는 부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베도 고집을 부리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아베는 7월21일 참의원 선거 직후 “아직 국민적 논의가 충분히 깊다고 할 수 없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자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아베의 발언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 개정은 아베 집권기의 마지막 장에 하는 것이 좋다. 국민에게 개정이 왜 필요한지 차분히 설명하며 분위기를 높여가는 것이 우선이다.”

아베의 개헌 목표가 즉각적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 총재 선거에서 이긴 뒤 2016년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며 개헌의 길을 여는 것이 목표라고 주변에서는 점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우경화로 치닫는 데는 국민적 정서도 한몫하고 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많은 일본인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일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자극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받았다.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에 경계심을 갖고 있던 일본인들은 센카쿠 열도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강함’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센카쿠 열도에서 비롯된 중일 관계 악화는 일본 내 강경 보수 세력에게 기회가 되었는데 아베 총리가 어디를 가서든 ‘강한 일본’을 주창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아베가 주창하는 강한 일본의 주 타깃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한반도의 미묘한 문제를 활용해 한국을 자극하겠다는 심산이 읽힌다. 아베 정권이 갑자기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 손길을 내미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한일과 중일 간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우회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에 순시선 10척을 공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초 반대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도 적극 나선 상황이다.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참의원 선거 직후 첫 해외 순방지로 잡은 곳도 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다.

물론 헌법 개정과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를 비롯한 강경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고가 마고토 의원 등 자민당 내 일부는 한국·중국 등 이웃 국가와의 갈등 관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적지 않은 국민은 헌법 개정이나 자위대의 국방군화에 반대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5월에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 반대’가 54%로 ‘개헌 찬성’(39%)보다 많았다.

미국과의 공조 튼튼하면 장기 집권 성공?

이런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확신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아베가 정치를 배웠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역시 수많은 반대에도 우정성 개혁을 강행했고 한국과 중국 등 주변 국가와 대립했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튼튼히 한 덕분에 4년 7개월이나 장기 집권을 했다는 점이다. 역대 자민당 정권에서 나카소네와 고이즈미 정권은 미국과의 유대 관계가 특히 공고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모두 롱런할 수 있었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했던 정권들은 단명했다는 뜻이다. 고이즈미 정권 이후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하나같이 고비를 넘지 못했다.

아베는 이를 잘 알고 있다. 아베뿐만 아니라 아소 다로 부총재 겸 금융상,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 등 당내 주요 핵심 인사들의 생각이 모두 비슷하다. 관방장관실에서 총리의 외교안보 특보로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야치 쇼타로 내각관방참여 역시 같은 생각이다. 외교관 출신인 야치 쇼타로는 전형적인 미국통으로 3등 서기관, 참사관, LA 총영사관을 미국에서 역임했으며 ‘미국 중심의 외교’를 주창하는 인물이다. 주변국의 아우성보다 워싱턴의 메시지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니퍼 린드 다트머스 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아베 내각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군국주의적 공약이 아니라 경제를 회생시키겠다는 공약 때문이었다”며 “아베가 일본과 주변국의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는 군국주의적 이념을 강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5월14일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한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참여(오른쪽). ⓒ AP연합
아베가 ‘강한 일본’을 부르짖는 그 상대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특히 우리의 외교 노선에 대해 예민하게 굴고 있다. 지난 5월14일 총리 관방장관실의 특명담당으로 위기관리·홍보·미디어에 관한 조언을 하고 있는 이지마 이사오는 갑자기 북한을 방문했다. 이지마는 과거 고이즈미 전 총리 시절에도 두 번이나 방북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특히 두 번째 방북에서는 납북된 일본인 5명을 데리고 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아베가 관심을 갖는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북했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남북 관계가 냉랭한 시점에서 우리와 전혀 상의 없이 방북한 것은 “북한을 지렛대로 우리 정부를 견제하려는 의미”로 해석한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간접적인 견제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참의원 선거 승리 이후 아베 정권은 좀 더 강한 제스처를 쓸 수 있게 됐다. 한국과의 관계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경우 북한과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할 개연성이 크다. 참의원 선거 기간 중 이지마는 “선거 이후에 북한과의 사이에서 무언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림자 권력으로 불리며 과묵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이지마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북한이 상당히 밀접해졌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일각에는 아베 총리의 방북을 조심스럽게 예견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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