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일본’에 빨려드는 열도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07.3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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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 일방적 지지…‘잃어버린 20년’ 되찾아주길 기대

지난해 12월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자민당의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일본의 분위기는 바뀌었다. 이런 정책의 중심에는 ‘국가의 자세’에 관한 담론이 자리 잡고 있다. 헌법 96조의 개정, 자위대의 국방군화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새로운 일본 만들기를 위한 여러 구상이 제시됐다. 장관과 일부 국회의원은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한 발언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으면서 논란을 불러왔고 주변국을 자극했다. 이른바 강한 일본에 호응하는 강경파 정치인들이 속속 등장한 셈이다. 이에 호응해 지식인과 문화인 중에서도 이런 담론 생산에 동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강한 일본’이라는 주제는 일본 사회에서 민감한 것으로 인식되었는데도 여기에 발을 담그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 것부터가 일본 사회가 보이고 있는 큰 변화다.

일본 참의원 투표일 전날인 7월20일 아베 신조 총리의 선거 유세에 모인 지지자들이 ‘필승’ 부채를 흔들고 있다. ⓒ EPA연합
“민주당에 대한 절망이 ‘강한 정치’ 낳아”

마이니치신문은 7월21일 참의원 선거 직후 시민들에게 “왜 자민당을 지지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오사카의 한 직장인은 “자민당이 좋은 것보다 민주당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민당 집권 이후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주류판매점을 운영하는 한 시민은 “주가가 오르고 배당이 늘어났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노력해주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지지하는 공통 키워드는 ‘경제’다. 경제로 생긴 자신감이 자민당 지지로 연결되고 있다. 모리나가 다쿠로 도쿄 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민주당에 대한 절망이 ‘강한 정치’에 대한 갈망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아베 이전 일본의 장기 침체기 중 경기가 회복된 시점은 2000년대 초·중반 고이즈미 내각 때가 유일했다. 이때도 회복의 동력은 금융 완화 정책이었다. 고이즈미 정권 당시 일본의 투자 증가율은 1년 3개월 만에 40% 이상 상승했는데, 이를 통해 엔화 약세를 이끌어내면서 디플레이션을 완화했고 경기 부양에 성공했다. 엔화를 찍어내는 아베노믹스와 방법만 다를 뿐 원리는 같다.

하지만 고이즈미 내각 이후 그 노선을 계승한 1차 아베 내각, 후쿠다 내각, 아소 내각을 거치면서 일본 사회의 경제적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격차 확대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소득의 재분배를 중시하는 민주당 정권이 기대 속에 탄생했다. 2009년 민주당은 고속도로 무료화, 아동수당 신설, 농가의 소득 보상, 고등학교 수업료 실질 무상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결국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고 “실천할 의지조차 없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모리나가 교수는 “민주당의 실정 때문에 국민은 ‘강한 정치’ ‘실천할 수 있는 정치’ ‘알기 쉬운 정치’를 내세우는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고이즈미를 연상케 하는 아베와 같은 강한 지도자를 향한 대망론이 한층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진보적인 학자들 중 일부는 지금의 아베와 자민당에 보내고 있는 지지 분위기에 대해 대공황에 휩쓸린 1930년대 유럽 등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강한 지도자’가 속속 등장했다. 난국을 타개하는 형태로 지도자들은 강렬한 리더십을 내세웠다. 그들은 민주적인 토론을 부정했고 때로는 폭력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그때도 경기 부양 효과는 폭력적인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을 약화시켰는데, 지금 일본의 모습이 그것과 닮았다는 주장이다.

“우익 여론 너무 크게 부각” 우려 목소리도

물론 이런 우려들이 너무 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공산당의 약진을 눈여겨보자는 것이다. 일본 공산당은 도쿄, 오사카, 교토에서 지역구 3석과 비례대표 5석을 얻었다. 종전에 가지고 있던 3석을 합하면 모두 11석을 차지했는데 이것은 공산당이 원내교섭단체(10석 이상)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화된 일본 사회에서는 역설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익 여론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너무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교토통신이 참의원 선거 직후인 7월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6.2%로 지난 6월 조사의 68.0%보다 11.8% 떨어졌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1.7%로 6월(16.3%)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지율은 급락했는데 자민당은 참의원 의석을 휩쓸었다. 아사히신문의 단토 야스히루 기자는 “국민의 의식을 선거 결과에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의 틀이 무너져버리고 있는 현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치 시스템이 여론을 제대로 못 읽는다는 뜻이다. 


일본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온라인 선거운동을 허용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자민당이었다. 자민당의 페이스북 이용률은 전체 평균 50.6%에 비해 20% 이상 높은 75.6%로 전체 정당 중 가장 높았다. 아베 총리부터가 37만여 명의 페이스북 팬을 이끄는 파워 사용자다.

NHK 조사에 따르면, 참의원 선거 투표 이전에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선거 강령, 활동 일정, 과거 연설 동영상, 자신의 메시지를 게시한 후보자가 91%에 달했다. 그렇다면 그 효과는 어땠을까. 전 세계에서 SNS의 선거 효과에 주목하고 있지만 일본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로 투표 대상을 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86.5%에 달해 효과가 미미했음을 알 수 있다.

후보자의 SNS 이해도도 떨어졌다. 온라인 선거운동으로 후보자들이 노린 유권자는 대부분 부동층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후보자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식의 메시지만 남발했다. 선거 유세차에서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부동층에게 먹혔을 리 없다.

심지어 한 후보자는 공식 선거운동 직전에 페이스북에 가입한 후 불특정 다수에게 친구 신청을 계속 보낸 탓에 페이스북측이 계정을 차단해버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페이스북이 후보자의 친구 신청을 스팸 메시지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SNS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파악하지 못했던 후보자의 실수. 일본 정치인들의 SNS 이해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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