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이 돈·권력 독점 시민의 몫은 없다
  • 이집트 카이로=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7.3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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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고위 관료가 독식…‘빈부 격차’ ‘기회 불평등’ 모순 심화

서민은 가난했다. 청년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2011년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근본 배경에는 극심한 빈곤 및 실업 문제가 있다. 그로 인해 축적된 불만이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체제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후 개선된 것은 거의 없다. 첫 민선 대통령인 무르시의 집권 이후 1년 동안 각종 경제지표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2년 전 혁명의 ‘근본 요인’ 격이었던 민생 문제는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경제의 문제는 오랜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탄생한 역사적·구조적 결과물이다. 하지만 혁명 이후, 시민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체제 자체에 대한 논의는 시민 내부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이집트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여전히 어둡다. 대다수 서민에게 ‘희망’이란 아직 요원한 단어다.

이집트 시민의 40%는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 절대 빈곤층이다. 7월9일 카이로의 한 시장 풍경. ⓒ 시사저널 이규대
평범한 임금 노동자는 자수성가 불가능

그는 ‘장군’이었다. 이집트 권력의 핵심 기관으로 꼽히는 군부에서 고위직을 역임하고 전역했다. 예비역 준장 헤르드 후세인 아흐마드(52). 그는 군부가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인 이집트 사회에서 상층부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가 퇴임하기 전까지 받았던 준장 급여는 월 4800LE(LE: 이집트 파운드, 약 76만원 상당)였다. 이집트의 평균 임금이 2500~3000LE(약 40만~48만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지만, 사회적으로 최상위 수준의 경제력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이집트에서는 경제력 상위 10%의 연간 소득 평균이 1만5000달러(약 1670만원) 수준이다.

헤르드는 이집트의 사회적 신분이 크게 네 계급으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사회의 부를 독점하는 소수의 ‘부자’(군부·정부 최고위직, 사업가 등), 평균보다 여유로운 수준으로 사는 중산층(군인·회사원 등), 매일 벌어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인 ‘하루살이 일용직’,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최하층 천민’이다. 그는 중산층에 속한다. 장성을 지낸 그조차도 사회의 특권 계층이 못 된다. 권력의 핵심인 군부 내에서도 특권을 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계급 구조의 정점에 선 특권층과 기타 시민 사이의 거리는 멀다. 헤르드는 중산층 이하에 속해 있던 이의 특권층 진출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평범한 임금 노동자로 살며 자수성가하기란 아예 불가능하다. 급여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해보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관련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누구 아는 사람이 없다면 시작할 엄두도 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높은 학력도, 전문직 자격증도 이집트 사회에서는 힘이 없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연줄이다. 특권층에 속한 인물과 연을 갖지 않으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이라도 성공하기 힘들다. 특권층이 아니면 출세가 불가능하다. 중산층 이하의 시민들에게 계급 이동의 사다리는 없다. 갈수록 악화되는 저임금과 고실업의 경제 상황은 특히 젊은이들의 의욕을 꺾는다.

헤르드의 아들인 오마르(20)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해외 파견 근무 덕에 세계 곳곳을 다닐 기회가 있었다. 그는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중산층 가정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다. 지금 그는 이집트 국공립대 중 최고의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카이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다. 그럼에도 그의 장래는 밝지 않다. 아버지가 특권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줄이 없으면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오마르는 “지금 졸업하는 학과 선배들 중 절반 이상이 취직에 실패할 정도”라고 밝혔다.

이집트의 실업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체 실업률만 봐도 2013년 1분기 현재 13.2%로 매우 높은 수준이며 특히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이집트의 경제월간지 <비즈니스 투데이 이집트> 7월호에 따르면, 이집트 전체 노동 인구 2720만명 중 360만명가량의 시민이 실직 상태인데 이 중 15세부터 29세 사이의 비율이 74%에 육박한다. 이 수치는 이집트 정부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른 것이다. 실제 실업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실질 실업률을 30% 이상으로 추정할 정도다.

오마르는 불투명한 장래 앞에서 고민 중이다. 대학을 마쳐도 취직하리란 보장이 없다. 지금 다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같은 군인은 자신이 원하는 길이 아니다. 군인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삶과 연결되지도 않는다. 일단 오마르는 대학 시절 동안 열심히 준비해 일반 기업에 취직한 후, 어떻게든 밑천을 모아 자신의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배경에 ‘특권’이 없는 그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산층 아흐마드 부자의 모습은 현재 이집트 경제가 지닌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저임금’ ‘고실업’으로 요약되는 민생고의 배경에는 소수의 권력층이 부를 독점하는 특권 구조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수십 년간 이집트 사회를 지배해온 권위주의 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현대 이집트의 역사는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의 군사 쿠데타로 시작된다. 이때 왕정이 무너지고 들어선 공화정은 군부 및 정부 관료 중심의 사회주의 성향을 갖게 됐다. 정부가 주요 산업을 주도해 여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바탕으로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이 국가 운영의 철학으로 굳어졌다. 초기에는 성공적이었다. 나세르 전 대통령이 현재까지도 이집트 시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다.

헤르드의 아들인 대학생 오마르. 왼쪽 뒤로 무바라크 정권 시절 여당이었던 NDP 당사가 불탄 채 남아 있다. ⓒ 시사저널 이규대
권위주의 체제 산물인 ‘특권 구조’

그러나 지나친 국가 주도형 경제는 후임인 사다트 전 대통령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비효율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는 “나세르 정권 당시에는 상당한 수준의 교육 및 의료 복지가 실현됐다. 그러나 점차 인구가 증가하면서 안와르 사다트 정권 시절부터 국가 재정이 국민의 복지를 떠받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어 갔다”고 분석했다. 국가의 부는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군부를 중심으로 한 독재 집권 세력 및 거기에 유착한 소수 사업가 등 특권 계층 사이에서만 맴돌게 됐다. 이들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 육성에는 소홀했다. 대신 관광 수입, 오일머니, 수에즈 운하 통관료, 대외 원조 등 직접적인 현금 수입이 가능한 분야에 의존했다.

독재 정권은 그에 대한 불만을 철권통치와 보조금 지급으로 무마해왔다.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체제에 대한 저항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한 보조금 프로그램은 빈곤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날로 어려워지는 민생을 고려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나라 빚은 쌓여만 갔다. 이집트의 칼럼니스트 모하메드 포아드는 “나세르 전 대통령 이후, 정부는 보조금 정책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반발이 두려워 전혀 검토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보조금 정책은 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 ‘커다란 흰 코끼리’가 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일부러 무시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활력을 잃은 경제, 소수의 특권층이 부를 독점하는 경제는 시민들의 희망을 앗아간다. 공무원 모하르 유네스(43)는 직업이 2개다. 그는 정부 소속 한 기관에서 공문서의 오류를 검토하고 교정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그가 받는 돈은 한 달에 1000LE(한화 15만원 상당) 남짓이다. 이 돈으로는 도저히 생활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남는 시간에 택시기사 일을 한다. 이집트 공무원 중에는 이런 ‘투잡’족이 상당수다. 임금은 턱없이 낮지만 물가는 계속 상승해 점차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는 탓이다.

종식되지 않은 권위주의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이집트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변호사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특권 구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공무원과 택시기사 노릇을 병행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유네스는 “1년 전 치른 선거가 43년 평생에 처음으로 투표장에 나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민혁명과 민주 정부의 출범을 거치며 생활이 나아지기를 기대했지만, 유네스의 생활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 시민들에게서 이집트 사회의 근본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한 시민들 중에는 군부가 지금의 혼란한 상황을 수습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군부가 오랫동안 권위주의 체제의 중심에 있던 집단이었음에도 그렇다. ‘군부는 시민의 편’이라는 믿음이 매우 공고하다. 심지어 이번 군부 쿠데타를 비판하는 무르시 지지 시민들조차 기자에게 “군부는 꼭 있어야 하고, 시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대상”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말을 이어갈 정도다. 이집트 사회의 특수성이다.

2011년 이집트의 ‘피플 파워’는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러나 당시의 저항은 시민들의 생활고를 초래한 체제 전반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무르시 축출에서 드러나듯, 불합리한 체제로 인해 누적된 불만을 국가 지도자에게 집중시키는 것이 이집트 ‘피플 파워’의 현주소다. 그 뒤에 숨은 소수가 쥔 ‘특권’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집트 문제와 아랍권 역학 관계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이 세속주의 성향의 시민들로부터 빠르게 신임을 잃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 중심에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권이 있다. 하마스는 과거 무슬림형제단으로부터 분리돼 창설된 반(反)이스라엘 무장단체로, 현재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통치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을 공유하는 양자의 연대는 매우 공고하다고 알려져 있다.

반무르시 시민들은 무르시 정부가 이집트의 식량·기름·가스 등 핵심 물자를 하마스에 지원했다는 데 큰 불만을 가졌다. 이집트 경제의 여력이 없는데도 이슬람주의 세력을 무리하게 지원했다는 것이다. 한 시민은 “병원에서 인큐베이터 가동이 중단돼 신생아가 죽어나갈 정도로 에너지 문제가 심각했다. 그런데도 무르시 정부는 팔레스타인 지원에만 열을 올렸다”고 투덜댔다. 다수 시민은 무르시가 물러난 이후 하루에 3~4차례 이상 있었던 정전이 없어지고, 각종 물자 공급이 원활해졌다고 증언했다.

이집트 문제에는 아랍권 전반의 종교 문제, 국가 간 이해관계 등이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집트가 중동에서 정치·문화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춘 국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산유국들은 이집트에 대한 원조를 바탕으로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 무슬림형제단 집권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 등의 지원이 끊긴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반대로 카타르는 이집트 등지의 무슬림형제단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아랍권 내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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